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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 해당되는 글 523건
- 2017.04.11 봄날의 오후
- 2017.04.05 붉은 모자를 쓴 부처님
- 2017.03.10 국민에게 考함
- 2017.02.14 오이풀꽃과 고추잠자리
- 2017.02.03 제비꽃 편지
- 2017.01.17 유등천에서
- 2016.12.30 송신送信
- 2016.12.27 솔숲에서
- 2016.12.15 적색경보
- 2016.12.10 인연
글
봄날의 오후
지난가을 계족산 고갯길에
누군가 낙엽을 모아
큰 하트를 장식해 놓았다.
저마다 화려한 가을의 빛깔들이
사랑의 무늬로 반짝이고 있었다.
겨우내 사나운 바람 다녀간 후
산산이 깨어졌을 사랑의 파편을 생각하며
산길을 올랐다.
땅에 뿌리라도 박은 것일까
옷깃 하나 흩트리지 않은 하트의 품속에
종종종 안겨있는 조그마한 하트들
아, 큰 사랑이
또 다른 작은 사랑들을 낳는구나.
사랑으로 이어진 마음과 마음들이
긴 겨울을 이겨내었구나.
큰 하트를 만든 사람과
작은 새끼들을 안겨준 사람들의 사랑을
벚꽃들 환한 등불 켜고 지켜보는 봄날의 오후….
「대전문학」76호(2017년 여름호)
글
붉은 모자를 쓴 부처님
누군가 빨간 모자 하나
돌부처님 머리 위에 씌워놓고 갔다.
벚꽃이 활활 타오르던 날
나는 부처님과 어깨동무를 했다.
마음속으로 팔랑팔랑
꽃잎이 몇 개 떨어졌다.
견고한 어깨에서 전해지는
이 따스한 전율
목탁 소리도 끊어졌다.
불법을 덮어버린 삐딱한 빨간 모자
나는 부처님과 친구가 되었다.
되나 안 되나 불질러버린 봄 때문에
2017. 4. 5
글
국민에게 考함
고주배기는
도끼로 힘껏 찍어야
넘어지는 것이 아니다.
제 스스로 안으로 썩고 썩어
마침내 삶의 의욕마저 다 잃었을 때
어린아이의 툭 차는 발길질에도
힘없이 대지 위에 널브러지고 만다.
나라는
외적外敵이 강해서
쓰러지는 것이 아니다.
핏줄끼리 스스로 싸우고 싸워
증오와 갈등으로 곪고 곪았을 때
총 몇 자루만 들고 들어가도
모두 손들고 마는 것이다.
2017. 3. 10
글
사진 정연휘
오이풀꽃과 고추잠자리
네가 오이풀꽃으로 홍사초롱 밝혀든다면
나는 고추잠자리로
네 기다림 위에 날개를 쉬겠네.
우리들의 늦여름은 소리 없이 달려서
초록 사랑 빛바랠 날은 얼마 남지 않았네.
흔들어 봐요. 하늬바람아
때로는 오이풀꽃 도리도리해도
한 몸인 듯 돌이 되겠네.
2017. 2. 13
『심상 2017년 6월호』
글
제비꽃 편지
별을 따다가 뿌려놓은 듯
제비꽃 모여 피었습니다.
햇살은 꽃밭에만 흥건히 고여
등잔불 연기처럼
아지랑이를 피워 올립니다.
어느 날 갑자기
처마 밑에 제비 날아와 울 듯
그렇게 오셔요.
들불처럼 번져가는 자줏빛 함성.
2017. 2. 3
글
유등천에서
열병식 하듯 줄지어선
갈대들의 춤사위도 시들해지고 있었다.
해오라기 눈동자가
물비늘로 일렁이는 여름날 오후
스쳐가는 사람들은 모두 타인이었다.
내 그림자 혼자 따라와
반짝이는 외로움
저기 가장교 물아래로 달리는
트럭의 바큇살마다
비누거품으로 만든 구름이 피어나고
발을 다친 소음騷音들은
모두 유등천으로 내려와
뿌연 물이끼로 자라고 있었다.
일광의 화살들을 막고 서있는
버드나무 아래엔 손수건만한 그늘 하나
어딘가로 보내는 간절한 소식처럼
계룡산 쪽으로
새 한 마리 띄워보낸다.
2017. 1. 17
<대전문학>75호(2017년 봄호)
글
송신送信
눈 내리는 저녁 좋은 사람과
복 지느러미 정종 한 잔 마셨습니다.
가슴에 가득 찼던 겨울바람도
안에서부터 따뜻해졌습니다.
술 한 모금 속에 담긴 복 지느러미 싸한 향기가
말초신경 끝에서 반짝 등을 켜들 때
좋은 사람아
빛의 산란散亂 속에서 춤추며 쌓이는 눈은
당신을 좀 더 잡고 싶은 내 마음입니다.
2016. 12. 30
<대전문학>75호(2017년 봄호)
글
솔숲에서
한 나무 가지에 황혼이 오면
물색모르는 나무들은 박수를 친다.
햇살 향해 오르는 발걸음
가벼워진다고
나무들은 알고 있을까
한 나무가 아프면
모든 나무가 아프고
모든 나무가 아프면
곧 숲이 황폐해진다는 것을.
파란 속삭임으로
손잡고 서있던 나무가 넘어질 때
너털웃음 웃으며
송화를 더 많이 피워 올리는 나무들아
숲에 해가 기울기 시작했으니
너희들의 황혼도 멀지 않았다.
2016. 12. 27
「문학저널」163호(2017년 6월호)
글
적색경보
할머니 백발 위에 얹힌 호접 핀처럼
낮달이 하나 피뢰침에 꿰어
파르르 떨고 있는 늦가을 오후
바람을 타고 도시를 탈출하다
십자가에 목 잡힌 나의 비닐봉지는
비명처럼 검은 종소리를 토해내고 있다.
사방에서 찍어대는 카메라 소리에
은밀한 비밀들은 낯선 모니터에서
수십 번씩 재생되고
고층건물의 우람한 근육에 막힌 길들은
가닥가닥 끊어져 바람에 펄럭인다.
발자국마다 넘치는 자동차 소리 밟아가면서
으악새 소리로 마중 나온
산의 눈짓을 따라가다 보면
미친 듯 경련하는
플라타너스 마지막 잎새의 불안
내 마음의 신호등엔
반짝 하고 빨간 불이 켜진다.
2016. 12. 15
『심상 2017년 6월호』
글
인연
아내는 아침 저녁
당약을 꼭꼭 챙겨주면서도
아이들 입맛을 위해
반찬에 물엿과 매실 엑기스를 들이붓는다.
내 건강을 걱정하는 아내의 주름살이
진심임을 안다.
아주 자주 아이들에 대한 사랑 앞에
바람에 날려보내는 플라타너스 잎새라 해도….
하나의 인연은 동아줄이 아니다.
새로운 인연과 만나고 얽히면서
뒤로 밀리기도 하고 가끔은
끊어지기도 하지만
아내의 눈가에 내비치는 아름다운 근심 때문에
나는 오늘도 설탕 투성이의 음식을
불평 없이 먹을 수밖에 없다.
2016. 1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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