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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 해당되는 글 529건
- 2017.06.02 그믐달
- 2017.05.19 봄날
- 2017.05.12 삼충사三忠祠의 문
- 2017.05.06 오월
- 2017.05.03 이팝꽃 핀 날 아침
- 2017.04.16 바람에게 2
- 2017.04.11 봄날의 오후
- 2017.04.05 붉은 모자를 쓴 부처님
- 2017.03.10 국민에게 考함
- 2017.02.14 오이풀꽃과 고추잠자리
글
그믐달
하늘은
은장도 하나 파랗게 날 세워
무얼 지키고 있나.
지킬 것 하나 없는
지상의 마을
부엉새만 어둠을 운다.
글
봄날
아파트 정원엔 봄꽃이 다 졌는데
태화산 골짜기에 와 보니
봄은 모두 거기에 모여 있었다.
사진에 담아 가 무얼 하려는가.
산은 붓으로 그리지 않아도
마음에 향기로 배어 있는 걸
새 소리 몇 소절에 꽃은 아직 피고 있어서
문득 내 인생의 봄날에
음각으로 도장 찍힌 사람을 생각하며
그냥 산이 되어 보았다.
기다림은
삶의 옷자락에 찍혀지는 무늬 같은 것
비웠다 생각하면 언제나 지우다 만
색연필자국처럼
초록으로 일어서는 당신,
신열처럼 세월의 갈피에
숨어 있다가
고향에 오면 끓어오르는 봄날이여!
글
삼충사三忠祠의 문
궁금하지도 않는가보다
뻐꾸기가 부르는데
굳게 잠겨있는 삼충사 문 밖에서
오월의 연초록 목소리로 두드려 본다.
사람은 바뀌어도 그 자리에 서면
모두가 의자왕이 되더라.
민중들의 목소리는 늘
허공에 흘러가는 바람이더라.
아프고 아픈 것들 철쭉꽃으로
피었다가 지는데
깨져버린 마음처럼
삼충사 문은 열릴 줄 모른다.
글
오월
아이들 웃음소리가
이팝꽃을 피우고 있다.
리모델링을 한 거리로
도솔산 뻐꾸기 소리
내려오면
주문呪文처럼 조롱조롱 피어나는
황홀한 예감
오래 닫혀있던 그 사람
마음의 창이 열릴까.
2017, 5, 6
『문학사랑』124호(2018년 여름호)
글
이팝꽃 핀 날 아침
이팝꽃 핀 날 아침엔
당신의 창가에 커튼이 내려져도
서러움이 덜할 것 같다.
가로등 일찍 꺼진 거리에
수많은 꽃잎들이 불을 밝히고
안개처럼 흐르는 향기
도솔산 뻐꾸기 소리 한 모금
커피에 타서 마신다.
온몸으로 번져가는 나른한 행복
하루 종일 바람이 불어
꽃이 다 지지 않는 한
닫혀 진 커튼 더 활짝 열리겠지.
아직 잠들었던 작은 봉오리마다
황홀한 예감들이 깨어나고 있다.
글
바람에게
잎이 피지 않는다고
말하지 말아라.
심어놓고 흔들어대는데
잎 필 겨를이 어디 있으랴.
꽃이 피지 않는다고
눈 흘기지 말아라.
뿌리가 다 말라가는데
꽃 피울 정신이 어디 있으랴.
열매 맺지 않는다고
소리치지 말아라.
꽃도 못 피웠는데
열매 맺을 사랑이 남아 있으랴.
글
봄날의 오후
지난가을 계족산 고갯길에
누군가 낙엽을 모아
큰 하트를 장식해 놓았다.
저마다 화려한 가을의 빛깔들이
사랑의 무늬로 반짝이고 있었다.
겨우내 사나운 바람 다녀간 후
산산이 깨어졌을 사랑의 파편을 생각하며
산길을 올랐다.
땅에 뿌리라도 박은 것일까
옷깃 하나 흩트리지 않은 하트의 품속에
종종종 안겨있는 조그마한 하트들
아, 큰 사랑이
또 다른 작은 사랑들을 낳는구나.
사랑으로 이어진 마음과 마음들이
긴 겨울을 이겨내었구나.
큰 하트를 만든 사람과
작은 새끼들을 안겨준 사람들의 사랑을
벚꽃들 환한 등불 켜고 지켜보는 봄날의 오후….
「대전문학」76호(2017년 여름호)
글
붉은 모자를 쓴 부처님
누군가 빨간 모자 하나
돌부처님 머리 위에 씌워놓고 갔다.
벚꽃이 활활 타오르던 날
나는 부처님과 어깨동무를 했다.
마음속으로 팔랑팔랑
꽃잎이 몇 개 떨어졌다.
견고한 어깨에서 전해지는
이 따스한 전율
목탁 소리도 끊어졌다.
불법을 덮어버린 삐딱한 빨간 모자
나는 부처님과 친구가 되었다.
되나 안 되나 불질러버린 봄 때문에
2017. 4. 5
글
국민에게 考함
고주배기는
도끼로 힘껏 찍어야
넘어지는 것이 아니다.
제 스스로 안으로 썩고 썩어
마침내 삶의 의욕마저 다 잃었을 때
어린아이의 툭 차는 발길질에도
힘없이 대지 위에 널브러지고 만다.
나라는
외적外敵이 강해서
쓰러지는 것이 아니다.
핏줄끼리 스스로 싸우고 싸워
증오와 갈등으로 곪고 곪았을 때
총 몇 자루만 들고 들어가도
모두 손들고 마는 것이다.
2017. 3. 10
글
사진 정연휘
오이풀꽃과 고추잠자리
네가 오이풀꽃으로 홍사초롱 밝혀든다면
나는 고추잠자리로
네 기다림 위에 날개를 쉬겠네.
우리들의 늦여름은 소리 없이 달려서
초록 사랑 빛바랠 날은 얼마 남지 않았네.
흔들어 봐요. 하늬바람아
때로는 오이풀꽃 도리도리해도
한 몸인 듯 돌이 되겠네.
2017. 2. 13
『심상 2017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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