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바다

아침 바다

  

 

하얀 돛단배가

아침의 건반을 두드리며 지나간다.

파도에 몸을 던지고

잊었던 리듬을 생각하는 갈매기.

쾌적한 바람이 햇살 층층을 탄주한다.

미역 숲에서 멸치 떼들이

오선의 층계를 올라간다.

갈매기 노란 부리가

번득이는 가락을 줍고 있다.

 

밤 내 뒤척이던

허전한 어둠의 꿈 밭

소라껍질이 휘파람 불며

모래알 손뼉을 쳐 뿌리고 있다.

얼비친 하늘의 푸른 물살을 타는

갈매기 눈알에

잊었던 리듬이 내려앉는다.

하늘 속의 빛 이랑이 내려앉는다.

posted by 청라

수평선을 보며

수평선을 보며

 

 

길은 어디에나 있다.

소년의 발걸음은 바람처럼 자유롭게

고삐를 틀지 말아라.

사람들은 하늘과 손 한 번 잡아보려고

높은 곳으로만 올라가지만

나는 물처럼

낮은 곳으로 낮은 곳으로만 내려왔다.

유년의 계곡에서 새소리가 붙잡고

강둑의 풀꽃들이 쉬었다 가라고

수천의 손을 내밀었지만

오직 한 길로만 달려온 내 삶의 지향志向.

더 이상 낮아질 곳 없는

인생의 바다에서

하늘과 진하게 입맞춤하고 있구나.

 

posted by 청라

소금 꽃

소금 꽃

 

 

흠이 있는 영혼들은

모두 염전으로 가 꽃이 되는 꿈을 꾼다.

 

입구가 열리길 기다려 화장을 하고

새 옷으로 갈아입고

기쁨인 듯 노래인 듯 가면을 쓰고 간다.

 

제염사製鹽師가 할 일은

세상을 살맛나게 간 맞춰 줄

가장 순수한 영혼을 가려내는 일

 

오뉴월 태양을 볼록렌즈처럼 쏟아 붓다가

배수구를 열어주면 제일 먼저

도망 나오는 건

불평 많은 불순물들

 

가장 짜릿한 순간을 위해

바람을 불러다 바다 비린내 말리고

우울증을 말리고

불순한 것들 모두 증발관으로 날려버리면

 

진흙 위에 비로소 몸을 세우는

바다의 사랑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영혼들만 살아남아

눈부시게 하얀 꽃을 피운다.

 

 

 

 

 

posted by 청라

조개 집

조개 집

 

 

바다가 그리울 땐

조개 집을 짓고 살리라.

 

내 방 안엔

파돗소리를 살게 하고

 

지붕은

갈매기 노래로 덮어

 

하루 종일 마음의 돌담 안에서

바다가 뛰어놀게 하리라.

 

텃밭에는

갯메꽃 몇 포기 웃음 짓게 하고

 

황혼이 피어날 때쯤

당신이 오면

 

가장 아끼던 술병을 열어

바다의 노래를 안주로

씹어가면서

 

바다에 취해 살리라.

 

 

 

 

posted by 청라

총성

총성

 

 

경매사 종소리에 유리처럼 깨어지는 적막

공동어시장의 새벽이 열린다.

부서진 적막에는 날이 서 있다.

모두의 눈동자가 반짝거린다.

 

세월이 박힌 모자를 쓰고

중도매인들은 전쟁을 시작한다.

신속하고 정확한 것이 경매의 생명이다.

오고 가는 손가락 수신호 따라

울려오는 총성

 

인생은

조이는 맛이 있어야 짜릿한 거야.

바다의 주인이 정해지는 동안

사람들의 소망이 덧없이 피었다 지고

 

공동어시장 새벽은

광기가 해일처럼 넘실거린다.

서편에 걸린 그믐달도 총소리에 중독되어

못 넘어가고 있다.

 

 

posted by 청라

저녁 바다

저녁 바다

 

 

외로운 사람은

저녁 바다에 나가

바다의 품에 안겨 보아라.

 

황혼을 걸치고

배들이 들어오는 풍경을 보고 있으면

세월 속에 까마득히 가라앉았던

어머니의 자장가를 들을 수 있다.

 

파도의 푸른 노래가

가슴 속에 흥겨운 춤으로 살아올라

어느 날 갑자기

바다가 속삭이는 말을 알아들으면

 

당신은

모든 시름을 풀고

오롯이 해국海菊으로 피어날 수 있을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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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월

삼월

 

 

바람이 바다를 건너고 있다.

 

바람의 뒤꿈치에서

풍겨오는

유채꽃 향기

 

스러질 듯 스러질 듯

은빛 물결에 젖어든다.

 

봄 몸살로

딸꾹질하는 바다

 

놀 젖은 구름 한 조각

리본처럼 나풀댄다.

 

 

posted by 청라

무인도 등대

무인도 등대

 

 

꿈이 있는 것들은

외로운 시간 속에서 더욱 단단해진다.

 

어둠보다 더 막막한 인종忍從의 삶을 살았다는

섬 바위들, 젖가슴으로 아랫도리로

세월의 손길들이 침범한 것도 모른 채

 

웃음도 잃고, 말도 잃은 그 옆의 별자리에

등대는 가까운 듯 먼 이웃으로 자리했다고 한다.

 

먼 바다에 불빛 한 점 숨 쉬면

와아아, 환호성으로 마중 나갔지만

그를 외면한 배들이 항구 쪽으로 고개를 돌릴 때

 

깊어지는 건 수심水深만이 아니다.

그의 수심愁心도 물이랑처럼 주름살로 덮이고

이끼만큼 표정도 바위를 닮아갔다.

 

그러나 그의 꿈은

멍이 들수록 더 단단해졌다.

 

이 먼 섬에

설 수밖에 없었던 인연因緣을 위하여

적막을 도포처럼 몸에 두르고 살 수밖에 없었던

운명運命을 위하여

 

오늘도 외로움을 태워 빛을 만든다.

 

 

 

 

 

posted by 청라

조선소造船所에서

조선소造船所에서

 

 

안벽岸壁에 계류된 미완성의 배들은

날마다 푸른 바다로 나가고 싶어

날개를 턴다.

 

밤이면 아무도 몰래

떨어진 몸체들을 서로 부르며

바다로 나가는 꿈을 꾼다.

 

꼼꼼한 손길들이 다듬고 또 다듬느라

조선소造船所의 시간은

초침이 늦게 돌지만

 

기적汽笛 소리 바다를 울리며

파도를 헤치고 나아가는 배

 

갈매기들 모국어母國語

떠들며

배 뒤를 따르고 있다.

 

 

posted by 청라

바다의 친구

바다의 친구

 

 

산책할 때마다

몰티즈를 앞세우는 김 여사에게

진돗개도 셰퍼드도 다 쟤네들이듯

 

작은 동력선을 타고 바다로 나온

어부 엄 씨에게는

갈매기도 파도도 다 쟤네들이다.

 

바다에서 만나는 것들은

모두 자식이고 친구다.

 

평생을 괴롭혀온 폭풍도

못된 친구처럼 미워하다 정이 들어

한 몇 달 안 찾으면 궁금한데

 

이웃집에 마실가듯

불쑥불쑥 험한 길 찾아온다고

바다는 하루 종일 쫑알거린다.

 

사랑하는 것엔 죄가 없다.

바다와 어깨동무를 풀지 못하는

엄 씨는 피도 바다색이다.

 

 

 

 

 

 

 

 

posted by 청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