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리스트
시에 해당되는 글 540건
글
소금 꽃
흠이 있는 영혼들은
모두 염전으로 가 꽃이 되는 꿈을 꾼다.
입구가 열리길 기다려 화장을 하고
새 옷으로 갈아입고
기쁨인 듯 노래인 듯 가면을 쓰고 간다.
제염사製鹽師가 할 일은
세상을 살맛나게 간 맞춰 줄
가장 순수한 영혼을 가려내는 일
오뉴월 태양을 볼록렌즈처럼 쏟아 붓다가
배수구를 열어주면 제일 먼저
도망 나오는 건
불평 많은 불순물들
가장 짜릿한 순간을 위해
바람을 불러다 바다 비린내 말리고
우울증을 말리고
불순한 것들 모두 증발관으로 날려버리면
진흙 위에 비로소 몸을 세우는
바다의 사랑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영혼들만 살아남아
눈부시게 하얀 꽃을 피운다.
글
조개 집
바다가 그리울 땐
조개 집을 짓고 살리라.
내 방 안엔
파돗소리를 살게 하고
지붕은
갈매기 노래로 덮어
하루 종일 마음의 돌담 안에서
바다가 뛰어놀게 하리라.
텃밭에는
갯메꽃 몇 포기 웃음 짓게 하고
황혼이 피어날 때쯤
당신이 오면
가장 아끼던 술병을 열어
바다의 노래를 안주로
씹어가면서
바다에 취해 살리라.
글
총성
경매사 종소리에 유리처럼 깨어지는 적막
공동어시장의 새벽이 열린다.
부서진 적막에는 날이 서 있다.
모두의 눈동자가 반짝거린다.
세월이 박힌 모자를 쓰고
중도매인들은 전쟁을 시작한다.
신속하고 정확한 것이 경매의 생명이다.
오고 가는 손가락 수신호 따라
울려오는 총성
인생은
조이는 맛이 있어야 짜릿한 거야.
바다의 주인이 정해지는 동안
사람들의 소망이 덧없이 피었다 지고
공동어시장 새벽은
광기가 해일처럼 넘실거린다.
서편에 걸린 그믐달도 총소리에 중독되어
못 넘어가고 있다.
글
저녁 바다
외로운 사람은
저녁 바다에 나가
바다의 품에 안겨 보아라.
황혼을 걸치고
배들이 들어오는 풍경을 보고 있으면
세월 속에 까마득히 가라앉았던
어머니의 자장가를 들을 수 있다.
파도의 푸른 노래가
가슴 속에 흥겨운 춤으로 살아올라
어느 날 갑자기
바다가 속삭이는 말을 알아들으면
당신은
모든 시름을 풀고
오롯이 해국海菊으로 피어날 수 있을 게다.
글
삼월
바람이 바다를 건너고 있다.
바람의 뒤꿈치에서
풍겨오는
유채꽃 향기
스러질 듯 스러질 듯
은빛 물결에 젖어든다.
봄 몸살로
딸꾹질하는 바다
놀 젖은 구름 한 조각
리본처럼 나풀댄다.
글
무인도 등대
꿈이 있는 것들은
외로운 시간 속에서 더욱 단단해진다.
어둠보다 더 막막한 인종忍從의 삶을 살았다는
섬 바위들, 젖가슴으로 아랫도리로
세월의 손길들이 침범한 것도 모른 채
웃음도 잃고, 말도 잃은 그 옆의 별자리에
등대는 가까운 듯 먼 이웃으로 자리했다고 한다.
먼 바다에 불빛 한 점 숨 쉬면
와아아, 환호성으로 마중 나갔지만
그를 외면한 배들이 항구 쪽으로 고개를 돌릴 때
깊어지는 건 수심水深만이 아니다.
그의 수심愁心도 물이랑처럼 주름살로 덮이고
이끼만큼 표정도 바위를 닮아갔다.
그러나 그의 꿈은
멍이 들수록 더 단단해졌다.
이 먼 섬에
설 수밖에 없었던 인연因緣을 위하여
적막을 도포처럼 몸에 두르고 살 수밖에 없었던
운명運命을 위하여
오늘도 외로움을 태워 빛을 만든다.
글
조선소造船所에서
안벽岸壁에 계류된 미완성의 배들은
날마다 푸른 바다로 나가고 싶어
날개를 턴다.
밤이면 아무도 몰래
떨어진 몸체들을 서로 부르며
바다로 나가는 꿈을 꾼다.
꼼꼼한 손길들이 다듬고 또 다듬느라
조선소造船所의 시간은
초침이 늦게 돌지만
기적汽笛 소리 바다를 울리며
파도를 헤치고 나아가는 배
갈매기들 모국어母國語로
떠들며
배 뒤를 따르고 있다.
글
바다의 친구
산책할 때마다
몰티즈를 앞세우는 김 여사에게
진돗개도 셰퍼드도 다 쟤네들이듯
작은 동력선을 타고 바다로 나온
어부 엄 씨에게는
갈매기도 파도도 다 쟤네들이다.
바다에서 만나는 것들은
모두 자식이고 친구다.
평생을 괴롭혀온 폭풍도
못된 친구처럼 미워하다 정이 들어
한 몇 달 안 찾으면 궁금한데
이웃집에 마실가듯
불쑥불쑥 험한 길 찾아온다고
바다는 하루 종일 쫑알거린다.
사랑하는 것엔 죄가 없다.
바다와 어깨동무를 풀지 못하는
엄 씨는 피도 바다색이다.
글
바다는 나를 염장鹽藏시킨다
바다와 사랑에 빠지면서
나는 사랑을 얻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겨울 바다처럼 삭막하던 얼굴에
동백꽃 향기 부드러운
웃음을 하나 장착裝着하게 되었다.
뒷골목처럼 어둡고 좁아터진 흉금胸襟을
수평선만큼이나 넓혀 놓고
갈매기 노래 같이 달콤한 말과
파도의 근육보다 더 단단한 의지를
내 삶의 행보行步에 옮겨 심었다.
바다와의 사랑은 나를 염장鹽藏시켰다.
적당히 간이 배어
맛깔 나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다.
글
돌아온 저녁
뱃고동 울려라
내가 왔다.
어머니
된장국 냄새 같은
항구의 불빛
서둘러 마중 나온
초승달 웃음
대양 안을 만큼
가슴 찢어질 만큼
항구는 팔을 벌리고 있다.

RECENT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