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곰의 눈물

북극곰의 눈물

 

 

빙하가 녹으면서

북극곰의 평화도 얼음처럼 깨어졌다.

 

고리무늬물범을 잡으려고

하루 종일 설원을 헤매다가

어미는 바람만 가득 마시고 돌아왔다.

 

미역 쪼가리만 먹은 몸으로는

허기진 여름을 날 수가 없다.

마지막 숨을 몰아쉬는 새끼 옆에서

어미는 바다를 보고 크게 울었다.

 

온실가스로 덮인 세상

날마다 수척해지는 지구

오늘 북극곰은

멸종 위기 종 장부에 올랐다.

posted by 청라

일그러진 유화油畫

일그러진 유화油畫

 

 

새벽 갈매기 소리나 듣자고

손자 손 붙잡고 들어선 해수욕장엔

쓰레기가 산을 이루고 있었다.

 

덧없이 버리고 간

지난밤 젊은이들의 유희遊戲의 흔적

우리는 하나씩 비닐봉지에 주워 담았다.

 

씨팔놈들 씨팔놈들

파도가 이만큼 들어와

욕하고 물러났다.

 

일곱 살 아이의

해맑은 도화지 위에

오래 남아있을 일그러진 유화油畫

 

햇살처럼 반짝이는 갈매기 소리가

파편破片이 되어

가슴을 찌르고 있었다.

 

 

2021. 3. 20

 

posted by 청라

바다는 눈뜨고 자는가

바다는 눈뜨고 자는가

 

 

여수 앞바다가 빨갛게 각혈咯血하던 날

포구엔

바다로 나가지 못한

작은 배들만 옹기종기 모여 있고

가자미식혜를 잘 하는

이북할머니네 막걸리 집엔

바다 사내들만 푸념을 나누어 마시고 있다.

황토黃土를 실은 배들이

부지런히 항구를 드나들지만

뿌리고 또 뿌려봐야 새 발의 피

바다의 피부가 워낙 부스럼투성이라서

바람도 깨금발로 물을 건너고 있다.

김 서방네 양식장엔

벌써 우럭 새끼가 하얗게 떠올랐단다.

쑤시고 아픈 데가 너무 많아서

바다는 밤새도록 눈뜨고 자는가.

 

 

2021. 3. 16

 

posted by 청라

대양大洋이 뿔났다

대양大洋이 뿔났다

 

 

중앙 인도양을 달리다가 보면

대양大洋이 뿔났다.

 

칼스버그 해령海嶺이 로드리게스 섬에서

아덴만까지

섬 하나 없이 봉우리 문질러놓고

 

성질나는 밤이면 우르르 우르르

해저를 흔들며 으르렁댄다.

 

바다는 사막沙漠이다.

형형색색 빛나던 산호의 노래도

온난화溫暖化의 발톱에 찢기어 간다.

 

고국故國 남쪽 바다에 동백꽃이 핀 게 언젠데

뿔난 바다는

아직도 겨울을 벗지 못했다.

 

 

2021. 3. 6

posted by 청라

그 여자의 뜰

그 여자의 뜰

 

 

정이 많은 여자는

아랫도리에서 언제나 진물이 흐른다.

 

겨울보다는 봄이 많이 머무는

그 여자의 뜰엔

탱자나무처럼 가시를 감춘 꽃들이 먼저 피었다.

 

바닷바람이 불러서 갔다는

남편은 세월 속에 지워지고

그 여자의 뜰이 황폐해질 때쯤

 

돌담이 무너졌다.

 

너무도 허기져서

이것저것 안 가리고 다 받아들인 바다처럼

그녀의 배는 탱탱해졌다.

 

그 여자의 뜰에는

파도가 산다.

뒤척이면 그냥 출렁대는 신음이 산다.

 

 

2021. 4. 17

 

 

posted by 청라

절망 앞에서

절망 앞에서

 

 

 송 작가 거실 벽에는

 죽어가는 바다가 걸려 있다. 

 조가비 딱지마다 한 몸인 양 기름이 엉겨 붙고, 갈매기 몇 마리는 타르의 밧줄에 묶여 박제剝製가 되었다. 한 쪽 눈만 겨우 자유를 지켜낸 갈매기 눈망울에 담긴 해안선, 바다의 온몸에는 버섯처럼 부스럼이 돋아났다. 바위도 나무도 온 세상이 겨울 빛으로 가라앉았다. 

 넓게 자리 잡은 바다의 절망에선

 하루 종일 한숨처럼 수포水疱가 떠올랐다.

 

 

2021. 3. 15

 

posted by 청라

고래를 조문弔問하다

 

 

 

해무海霧 접힌 후에야 알았네.

어젯밤 바다가 왜 그리 숨죽이고

흐느꼈는지.

 

9,5m 길이의 몸에

5,9kg 플라스틱을 채우고

허연 배를 드러낸 채

누워있는 향고래

 

어미는 심해의 어둠 속을 헤매며

목메어 부르고 있을게다.

울다 울다 눈물이 말라

피를 흘리고 있을 게다.

 

저녁노을 삼베옷처럼 차려입고

을 하는 바다

갈매기 목소리 빌려

나도 고래를 조문弔問하네.

 

posted by 청라

적조赤潮

적조赤潮

 

 

심한 멍 자국 짓물러

바다의 신음은

온통 열꽃 빛이다.

 

돌아누울 힘도 없어서

혼절한 채 끙끙대는

파도는 온통 앓는 소리다.

 

 

posted by 청라

슬픈 바다

슬픈 바다

 

 

바다는 비가 와도 젖지 않는다.

세상의 눈물 나는 일들은

모두 바다에 모여 있다.

작년에 아프리카에서 반란군에 살해당한

어미의 슬픔과

플라스틱 병을 삼키고 허연 배를 드러낸

고래의 눈물이

소용돌이로 울고 있다.

더 이상 버리지 마라.

아침 해를 띄워 올리는

저 바다의 싱싱한 웃음 뒤에

한 그루씩 죽어가는

산호의 비명이 포말泡沫로 부서지고 있느니.

바다는 스스로 늘 제 몸을 닦고 있지만

이미 흠뻑 젖어

더 이상 젖을 곳이 없다.

세상이 버리는 아픔

모두 꽃으로 피울 수는 없다.

 

posted by 청라

내려가는 길

 

 

인생길 내려가다가

길가 풀밭에 편하게 앉아

풀꽃들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서두를 일이 없어서 참 좋다.

 

올라가는 길에는 왜 못 들었을까

바람에 나부끼는

작은 생명들의 속삭임

 

올라가는 길에서는

왜 못 보았을까

반겨주는 것들의 저 반짝이는 눈웃음

 

아지랑이 봄날에는 투명한 게 없었지.

서둘러 올라가

하늘 곁에 서고 싶었지.

 

모든 걸 내려놓고 앉은 후에야

아름다운 것 아름답게 보고 듣는

눈귀가 열려

 

노을에 물들면 노을이 되고

가을에 물들면

가을이 된다.

 

 

 

2021. 5. 5

대전문학93(2021년 가을호)

 

 

posted by 청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