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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 해당되는 글 526건
- 2020.08.16 자화상
- 2020.08.04 내가 사랑하는 공주
- 2020.07.18 엑스포 과학공원
- 2020.07.17 식장산 자연생태림
- 2020.07.16 장태산 휴양림
- 2020.07.11 일식日蝕
- 2020.07.05 갈대와 나팔꽃
- 2020.07.04 사랑한다는 것은
- 2020.07.03 유성온천
- 2020.06.30 세한도歲寒圖에 사는 사내2
글
자화상
내 가슴엔 여백이 많아
채울 것도 많았지.
사하촌寺下村에 살면서
새벽에 떠내려 온 풍경소리 건지면서
부처님 미소를 마음에 심었네.
부처님과 가장 닮은
아이들과 살고 싶어서
나라 말을 공부했네.
평생을 아이들과 함께 살면서
세월 가는 줄도 몰랐네.
친구들은 나를 보고 부처라 하고
제자들은 나를 보고 스승이라 했지만
나는 부처도 스승도 되지 못했네.
세월의 바퀴에 감겨
이만큼 지나와서 생각해보니
삶의 폭풍 속에서도 나를 견디게 해준 건
반짝이는 몇 편의 시詩
나는 이제 사람들에게 기쁨이며
행복이 되려 하네.
서툴지만 진실한 마음을 담은
나의 노래로.
글
내가 사랑하는 공주
공산성에서 가을에 취해 있다가
금강으로 와서
얼굴을 비춰보면
내가 걸어온 발자국들도
코스모스 꽃씨만한 역사가 될까.
공주 거리를 걷다가 보면
은행잎처럼 밟히는 게 다 역사다.
석장리 유적지엔
못 다 이룬 구석기 시대의 사랑
무령왕릉에선 백제의 웃음소리
거리를 오가는 젊은이의 눈빛에서도
이끼처럼 푸르른
역사의 향기가 풍겨오고 있다.
금강교를 건너서
공주의 품에 안긴 사람들은
공주에 취해서 모두 공주 사람이 된다.
2020. 8. 4
글
엑스포 과학공원
제3경
한빛탑에 올라가면
한 줄기 빛
과거와 미래를 이어주는
길이 열리고
음과 양이 회전하는
태극 문양이
세계로 웅비하는 대한민국의
꿈과 잠재력을 보여주고 있다.
보라
여기는 구십삼 년
대전세계박람회가 치러졌던 곳
민족 전쟁의 잿더미 위에서
경제, 과학 강국으로 우뚝 선 것은
대전엑스포가 밀알이었지.
우리의 새로운 도약은
여기로부터 힘차게 태동하였는가.
청년들이여!
와서 꿈을 키워라.
세계의 주역이 되는 웅대한 꿈을.
2020. 7. 11
『e-백문학』3호(2020년)
글
식장산 자연생태림
산이 높아서
오르기 어렵다고 말하지 마라
대전에서 제일 먼저 해가 뜨는 곳
고란초
고라니 울음
품어 키우는 곳
길이 있어서
고요가 깨진다고 말하지 마라
산사의
목탁소리는
큰 소리로 울릴수록 골짜기가 숙연해진다.
주엽나무 속삭이는 바위에 앉아
녹음 차오르는 숲을 바라보면
아! 세상은
한 발자국만 돌아서도 피안인 것을
2020. 7. 17
『e-백문학』3호(2020년)
글
장태산 휴양림
반듯하게 살고 싶은 사람들은
와서
메타세콰이어 숲을 보면 알지
줄지어 도란도란 살아가는 것도
하늘만 보고
굽힘없이 살아가는 것도
그리 힘든 일이 아니라는 것을
스카이웨이 올라
출렁다리에서 몸을 흔들어 사념을 털고
녹음에 묻혀 세상을 보면
우리의 삶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근심 있는 사람들 와서
장태산 맑은 바람에 근심을 씻게.
비단처럼 고와진 마음의 결에
새 소리 별처럼 총총 심어가면
어제까지 등돌리던 사람에게도
웃는 얼굴로
살며시 손을 내밀게 되리.
2020년 8월
『e-백문학』3호(2020년)
글
일식日蝕
아이들 웃음소리
가득하던 운동장에
반달만큼 모인
아이들
느티나무에 앉은 까치들이
아이들과
수 싸움을 하고 있다.
달그림자 해를 가리면서
어둑해진 시골 학교
육십 년 만에 찾아왔더니
내년엔
폐교한단다.
2020. 8. 3
글
갈대와 나팔꽃
한 길 넘게 자란 갈대를 감아 올라가
나팔꽃이 방끗 피었습니다.
갈대는 압니다.
저 환한 웃음이
나팔꽃의 미안한 마음이라는 걸
갈대는 잎을 내밀어
나팔꽃이 쉽게 오를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바람이 붑니다.
모든 갈대들 휘청거릴 때
나팔꽃은 살며시 갈대를 안아줍니다.
흘러가는 물은 알까요.
아주 작은 것끼리도 서로 손을 잡아주면
큰 힘이 된다는 것을
2020. 7. 5
『고마문학』창간호(2020년 가을호)
글
사랑한다는 것은
사랑을 한다는 것은
설렘의 등에 불 하나 켜는 것이다.
꽃잎 떨어지는 것도, 낙엽이 뒹구는 것도,
아! 무심히 눈 내리는 것마저 왜 이리 가슴
떨리게 하는 것이냐.
내 안에 너를 그려 넣는 붓질 한 번에
무채색 내 인생이
환희歡喜의 꽃밭으로 환하게 타오르는 것이 아니냐.
사랑을 한다는 것은
세상을 아름답게 보는 눈 하나 뜨는 것이다.
2020. 7. 4
『고마문학』창간호(2020년 가을호)
글
유성온천
나그네여
그대 삶의 발걸음 하루만 여기 멈추게.
오십 도가 넘는 라듐 온천에
때처럼 찌든 삶의 피로를 씻어내고
조금 남은 근심의 찌꺼기는
만년교 아래로 던져 버리게.
여기는
시생대 말기부터 지구의 심장에서 분출하던
뜨거운 피로
마음의 상처마저 치료해주던 곳
맛 집을 찾아 점심을 먹고
이팝꽃 마중 나온 거리
한 바퀴 돌고 와서 족욕足浴을 하면
그대의 인생 십 년은 젊어지리.
끓어오르는 알칼리성 열탕에서
섭섭함을 모두 풀어버리게.
사랑하는 사람과 밤새 정을 나누면
영원히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으리.
2020. 7. 3
『e-백문학』3호(2020년)
글
세한도歲寒圖에 사는 사내2
세상이 부르면 문이 없어도 나와야 한다. 네그루의 옛 솔과 옛 잣나무, 작은 집 하나, 선비는 적막으로 몸을 닦고 있다. 찾는 이 없어 눈길은 깨끗하다. 세상이 당신을 버릴 때에 당신도 세상을 버렸지만 둥근 창으로 넘어오는 바람 같은 소문, 세상은 갈등으로 타오르고 옳은 것과 그른 것이 뒤바뀌어 사막이 되어가고 있다.
선비는 귀를 막고 있다. 몇 겹의 창호지로 막아도 끊임없이 울려오는 천둥 같은 소리. 입으로 정의를 앞세우는 자는 불의로 망하리라. 세상은 먹장구름으로 덮여있다. 양심 있는 사람은 입을 열지 않고, 부자들은 돈을 쓰지 않고, 아이들은 더 이상 노인을 존중하지 않고, 젊은이들은 아이를 낳지 않는다, 세상이 너무 캄캄해서 씨를 뿌릴 수가 없다.
고도孤島의 저녁은 파도소리로 일어선다. 세상은 그믐인데 달로 떠 비춰줄 사람 보이지 않는구나. 선비는 더 꽁꽁 숨어 그림자도 비치지 않고 다향茶香만 높고 맑은 정신처럼 떠돌고 있다. 사람의 집에 사람은 오지 않고 봄비로 쓴 편지에 먼 데 있는 친구만 곡우穀雨의 향기를 덖어 마음을 보낸다. 뜨거운 차를 마셔도 선비의 가슴은 언제나 겨울이다. 학문과 경륜은 하늘에 닿았는데 선비의 마음 밭엔 언제나 눈이 내린다. 사람의 말을 잃고, 사람의 웃음을 잃고 등 돌린 마을의 그리움도 무채색으로 잦아들고 있다.
선비여, 이제 나와라. 나와서 세상을 갈아엎어라. 귀를 막아도 들려오는 하늘의 소리. 나와라. 어서 나와라. 인간의 마을이 무너지는데 마을 밖 작은 집에서 솔빛의 기상만 닦고 있을 참이냐? 가꾸던 겨울을 집어던지고 제일 먼저 와 동백으로 피는 제주의 봄을 숙성시켜 팔도에 옮겨 심어라. 그대의 겨울에 이제 덩굴장미를 심고, 소나무 잣나무 위에 새 몇 마리 불러와서 사람의 마을을 사람의 마을답게 가꿔야 한다.
『대전문학』89호(2020년 가을호)
2020. 6.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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