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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 해당되는 글 523건
- 2020.02.07 꽃 한 송이의 기적
- 2019.12.30 은행나무에게
- 2019.12.03 12월의 장미
- 2019.11.22 평화
- 2019.11.05 도담삼봉
- 2019.11.03 나이의 빛깔
- 2019.10.25 슬픔의 법칙
- 2019.10.19 삼십 년만 함께 가자
- 2019.10.18 아름다운 이별을 하고 싶다
- 2019.10.10 대전역에서
글
꽃 한 송이의 기적
산수유 꽃이 피었습니다.
세상의 겨울이
말끔히 사라졌습니다.
기아飢餓에 허덕이는 마을에
당신이 보내준 작은 온정처럼
저 연약한 꽃 한 송이
무엇을 만든 것일까요.
눈보라로 덮여있던 사람들의 가슴은
더 이상 춥지 않을 것입니다.
집집마다 꽁꽁 닫혀있던 문들도
서로를 향해 활짝 열릴 것입니다.
그믐의 어둠인 듯 막막하던 뜨락에
편지에 담아 전한 당신의 미소처럼
산수유 꽃 한 송이
세상을 환하게 밝혔습니다.
2020. 2. 7
『충청예술문화』96호(2020년 3월호)
글
은행나무에게
외로움을 선택했구나.
그래서 열매도 맺지 않았구나.
싹트면 제 알아서 자라는 것들
아예 씨조차 뿌리지 않았구나.
근심을 거부하면서
네 집 문전엔 웃음 한 송이 필 날 없겠지.
커피 잔을 들어도 마주 대는 사람 하나 없고
네가 꺼놓고 나간 거실의 불은
어둠인 채로 너를 맞을 것이다.
채우면서 살아가라.
어치 두 마리 네 어깨에 앉아
고개를 갸웃대고 있다.
네 삶의 겨울에 네게서 끊어진 자리
여백으로 그냥 남기려느냐.
소소하게 반짝이는 근심을
즐겁게 마시면서 살아가라.
외롭게 외롭게 사라지기보다는
세상에 네 왔다간 점 하나 찍어놓아라.
2019. 12. 30
『대전문학』87호(2020년 봄호)
글
12월의 장미
한 철의 사랑만으론
목이 탔는가.
너무 뜨거워 서러운
내 사랑이
바람의 채찍을 맞고 있다.
사람들은 눈보라 속에 핀
장미를
불장난이라 탓하지만
어쩌겠는가.
참고 참아도 활화산처럼
터져버리고 마는 마음인데…
2019. 12. 3
『대전문학』90호(2020년 겨울호)
글
평화
평화는
나만 착하다고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굶는 이웃에게 밥을 주고
내 힘을 깎아내 어깨를 맞춰주고
나 혼자만 칼을 버린다고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아!
모두 잃은 후 목선을 타고
이 나라 저 나라로 목숨을 구걸하러 다니려느냐.
평화는 내가 약해져야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아주 강해야 비로소 얻을 수 있는 것이다.
2019. 11. 22
『충청예술문화』93호(2019년 12월호)
글
도담삼봉
신선의 마을이 바로 여기인가.
남한강 물새 울음에
세 개의 암봉巖峰이
그림같이 떠있고
장군봉에 터 잡은
육각 정자엔
한가로운 구름 그림자 걸려있다.
흰 두루미 한 마리
물에 잠긴 전설 건져 물고
삼봉 선생을 태우러 가는고.
강안江岸에 빈 배 홀로 누워
기다림이
적막으로 멋스럽다.
바위에 앉아 넋 놓고
삼봉에 취해있다 보니
해는 어느새 서산에 기울었더라.
2019. 11. 5
『문학사랑』130호(2019년 겨울호)
『대전PEN문학』38호(2021년 6월호)
글
나이의 빛깔
나이는 마음이다.
스물이라 생각하면 가슴에서
풀잎의 휘파람 소리가 나다가도
일흔이라 생각하면
은행잎 노란 가을이 내려앉는다.
일흔이라도
스물처럼 살자.
언제나 봄의 빛깔로 살아가자.
2019. 10. 3
『시문학』581호(2019년 12월호)
글
슬픔의 법칙
사람은 태어나는 날
누구나 다 슬픔도 예약 받지만
아직 오지 않은 날을 위하여
미리 슬퍼할 필요는 없다.
멀리 떨어진 슬픔을 마중 나가
조급하게 아파하다가
익기도 전에 떨어질 필요는 없다.
아직 오지 않은 아픔을
미리 아파하지 말자.
아직 오지 않은 슬픔을
미리 슬퍼하지 말자.
오늘의 작은 행복도 가꾸고 즐기면서
남은 햇살에 느긋하게 익어가자.
2019. 10. 25
글
삼십 년만 함께 가자
아내의 오른쪽 뇌가
휑해진 사진을 보고는
입만 떡 벌리고 있다가
이래서는 안 되지
다음날 새벽부터
견과류 찾아 먹이고
오메가 쓰리 먹이고
아침식사 후엔
아리셉트, 글라이티린
챙겨주고
침대 이불은
아내 쪽 머리 부분
구김이 안 가도록 잘 펴놓는다.
아내야!
이대로 삼십 년만 지금같이 가자.
잃은 것은
잃은 것대로 그냥 놓아두고
이대로 삼십 년만 지금같이 가자.
비오는 저녁에도
아내의 손을 끌고 유등천변을 걸으며
산, 물, 부처님, 십자가 안 가리고
어디나 고갤 숙이는 버릇이 생겼다.
2019. 10. 19
글
아름다운 이별을 하고 싶다
만나고 헤어지는 것이
구름 끼는 일처럼 무심해진
세월이지만
비오는 날엔 대전역에서
세상에서 제일 예쁜 이별을 하고 싶다.
눈물 보다는 웃음을 더 많이
보여주리.
미워하기보다는 행복을 빌어주면서
그리움으로 가꾸면
이별도 꽃이 된다는 것을 알려주리.
보내고 돌아서면 온 세상 빗물이 모여
내 가슴 온통 눈물바다가 될 지라도
꽃이 흔들리는 것처럼 손 흔드는
그런 이별을 하고 싶다.
2019. 10. 18
『시문학』581호(2019년 12월호)
글
대전역에서
보문산 뻐꾸기 노래처럼
들리다
안 들리다 하는 게 사랑이다.
울지 마라.
웃으면서 손 흔들고
돌아서서 눈물 흘리는 게 진짜
충청도 사랑이다.
작년 가을에
울면서 떨어지던 잎들도
말간 웃음으로 새롭게 등을 켜지 않느냐.
돌아서지 마라
아주 돌아서지만 않는다면
다시 돌아와 부둥켜안는 곳이
대전역이다
2019. 10. 10
『대전문학』91호 (2021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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