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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 해당되는 글 529건
- 2020.07.04 사랑한다는 것은
- 2020.07.03 유성온천
- 2020.06.30 세한도歲寒圖에 사는 사내2
- 2020.06.21 스승의 날에
- 2020.06.11 연꽃 같은 사람 - 장덕천 시인을 보며
- 2020.05.30 장미 빛깔의 말
- 2020.05.21 둑길에서
- 2020.05.17 지워지지 않는 이름으로
- 2020.05.05 비밀
- 2020.05.01 안부
글
사랑한다는 것은
사랑을 한다는 것은
설렘의 등에 불 하나 켜는 것이다.
꽃잎 떨어지는 것도, 낙엽이 뒹구는 것도,
아! 무심히 눈 내리는 것마저 왜 이리 가슴
떨리게 하는 것이냐.
내 안에 너를 그려 넣는 붓질 한 번에
무채색 내 인생이
환희歡喜의 꽃밭으로 환하게 타오르는 것이 아니냐.
사랑을 한다는 것은
세상을 아름답게 보는 눈 하나 뜨는 것이다.
2020. 7. 4
『고마문학』창간호(2020년 가을호)
글
유성온천
나그네여
그대 삶의 발걸음 하루만 여기 멈추게.
오십 도가 넘는 라듐 온천에
때처럼 찌든 삶의 피로를 씻어내고
조금 남은 근심의 찌꺼기는
만년교 아래로 던져 버리게.
여기는
시생대 말기부터 지구의 심장에서 분출하던
뜨거운 피로
마음의 상처마저 치료해주던 곳
맛 집을 찾아 점심을 먹고
이팝꽃 마중 나온 거리
한 바퀴 돌고 와서 족욕足浴을 하면
그대의 인생 십 년은 젊어지리.
끓어오르는 알칼리성 열탕에서
섭섭함을 모두 풀어버리게.
사랑하는 사람과 밤새 정을 나누면
영원히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으리.
2020. 7. 3
『e-백문학』3호(2020년)
글
세한도歲寒圖에 사는 사내2
세상이 부르면 문이 없어도 나와야 한다. 네그루의 옛 솔과 옛 잣나무, 작은 집 하나, 선비는 적막으로 몸을 닦고 있다. 찾는 이 없어 눈길은 깨끗하다. 세상이 당신을 버릴 때에 당신도 세상을 버렸지만 둥근 창으로 넘어오는 바람 같은 소문, 세상은 갈등으로 타오르고 옳은 것과 그른 것이 뒤바뀌어 사막이 되어가고 있다.
선비는 귀를 막고 있다. 몇 겹의 창호지로 막아도 끊임없이 울려오는 천둥 같은 소리. 입으로 정의를 앞세우는 자는 불의로 망하리라. 세상은 먹장구름으로 덮여있다. 양심 있는 사람은 입을 열지 않고, 부자들은 돈을 쓰지 않고, 아이들은 더 이상 노인을 존중하지 않고, 젊은이들은 아이를 낳지 않는다, 세상이 너무 캄캄해서 씨를 뿌릴 수가 없다.
고도孤島의 저녁은 파도소리로 일어선다. 세상은 그믐인데 달로 떠 비춰줄 사람 보이지 않는구나. 선비는 더 꽁꽁 숨어 그림자도 비치지 않고 다향茶香만 높고 맑은 정신처럼 떠돌고 있다. 사람의 집에 사람은 오지 않고 봄비로 쓴 편지에 먼 데 있는 친구만 곡우穀雨의 향기를 덖어 마음을 보낸다. 뜨거운 차를 마셔도 선비의 가슴은 언제나 겨울이다. 학문과 경륜은 하늘에 닿았는데 선비의 마음 밭엔 언제나 눈이 내린다. 사람의 말을 잃고, 사람의 웃음을 잃고 등 돌린 마을의 그리움도 무채색으로 잦아들고 있다.
선비여, 이제 나와라. 나와서 세상을 갈아엎어라. 귀를 막아도 들려오는 하늘의 소리. 나와라. 어서 나와라. 인간의 마을이 무너지는데 마을 밖 작은 집에서 솔빛의 기상만 닦고 있을 참이냐? 가꾸던 겨울을 집어던지고 제일 먼저 와 동백으로 피는 제주의 봄을 숙성시켜 팔도에 옮겨 심어라. 그대의 겨울에 이제 덩굴장미를 심고, 소나무 잣나무 위에 새 몇 마리 불러와서 사람의 마을을 사람의 마을답게 가꿔야 한다.
『대전문학』89호(2020년 가을호)
2020. 6. 30
글
스승의 날에
이팝나무에
아이들 얼굴이 조롱조롱 피어난다.
그 사람 지금
어디서 무얼 할까.
그리워할 이름 많아서 좋다.
아이스크림 한번만 돌려도
세상을 다 가진 듯
좋아하던 아이들
체육대회에서 꼴찌를 해도
미친 듯이 응원하던
그 흥은 아직 남았을까.
보고 싶은 사람이 많다는 것은
미워할 사람이 많은 것보다
얼마나 고마운 삶인가.
날마다 드리는
간절한 나의 기도가
제자들의 앞길을
꽃길로 바꿔주었으면 좋겠다.
이팝 꽃으로 환하게 웃고 있는
얼굴들을 향해
뻐꾸기 노래로 박수를 보낸다.
2020. 5. 15
글
연꽃 같은 사람
장덕천 시인을 보며
당신은
새벽을 열고 피어난
연꽃 같은 사람
도시의 아픔은
그대 널따란 잎새에 앉았다가
아침 이슬로 걸러져
대청호 물빛이 되고
연향에 취해있던 호수의 바람은
향기의 지우개로
온 세상 그늘을 지워주러 간다.
영혼이 너무 따뜻해서
삶의 꽃술 하나하나가
시처럼 아름다운 사람
오늘도 대청호는
그대 한 송이 피어있어서
찰싹이는 물결소리에서도
향내가 난다.
2020. 6. 11
『문학사랑』133호(2020년 가을호)
글
장미 빛깔의 말
무슨 꽃이냐고
어제도
그제도 그끄제도 묻지만
환하게 웃으면서
장미꽃이라 대답합니다.
백 번 천 번을 물어도
지워진 백지에
다시 도장이 찍힐 때까지
장미 빛깔의 말로
대답할래요.
“사랑”이라고
2020. 5. 30
『시문학』2020년 8월호
글
둑길에서
반듯하게 걷지 않아도 좋다.
삶의 굽이만큼
구부러진 꼬부랑길
민들레꽃이 피었으면
한참을 쪼그려 앉아
함께 이야기하다 가도 좋고
풀벌레 노랫소리 들리면
나무로 서서 듣고 있다가
나비처럼 팔랑거려도 좋다.
달리지 않아도
재촉하는 사람 하나 없는 세상
내가 좋아하는 것들은
모두 둑길에 모여 있다.
2020. 5. 21
글
지워지지 않는 이름으로
고향 마을에 하천 공사를 한다고
포크레인 여러 대가 하천 바닥을 퍼내고 있다.
작은 새의 보금자리도 막 피어나는 풀꽃들도
사정없이 부서져서 트럭에 실려 가고 있다.
전두측두엽 치매를 앓고 있는 아내의 뇌 속처럼
수없이 깎여나가는 소중한 추억들
톱날 같은 삽날이 부릉거릴 때마다
아름다운 내 어린 날들이 수없이 파여져 나간다.
아내의 기억 속에서도 하루에 몇 십 조각씩
금가루들이 부서져 내린다.
지난 생일에 내가 사준
진주 반지의 영롱한 빛깔도 흐려지고
오랜 기다림 끝에 태어난
여섯 살 손자의 이름도 낯설어지고
가끔은 정말로 잊고 싶지 않아서
자다 말고 문득 일어나 내 얼굴만 뚫어지게 바라보는
아내의 저 간절한 주문呪文
망각의 날개는 왜 가장 아름다운 것부터 지워가는 것일까.
하천 정비가 끝나면
기억할 것들도 사랑할 것들도 모두 파여 나간 고향 냇가에는
머물 곳을 잃은 물들만 외면한 채 달려가겠지.
포크레인의 폭력에 아름다운 어린 날은 모두 깨어졌지만
힘겹게 혼자 남아 뒤뚱대는 배꼽바위 모양으로라도
아내의 수첩 속에 지워지지 않는 이름으로 남고 싶어서
오늘도 아리셉트를 챙겨주기 위해 아내의 잠을 깨운다.
『시문학』2020년 8월호
글
비밀
보고 싶다는 말을 삼키는 것이
만남보다 큰 기쁨일 줄을
이제야 알았습니다.
사랑한다는 말을 감추는 것이
사랑보다 큰 행복일 줄을
이제야 알았습니다.
당신에게 보낼 편지를
밤마다 적어놓고서
서랍에 차곡차곡 쌓아놓습니다.
당신을 생각만 해도
내 마음 양 볼엔
복사꽃이 피지만
혼자만 가슴 속에 사랑을 키우는 것은
몰래 사랑하는 것이
드러난 사랑보다 더 달콤한 까닭입니다.
비밀 하나 갖는 것이
설렘일 줄은
이제야 알았습니다.
2020. 5. 5
글
안부
시 몇 달 못 보면
“죽었나?”
또랑또랑 눈 뜬
시 한 편 보면
“음, 살았네.”
2020. 5.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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