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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 해당되는 글 512건
- 2021.08.10 그 여자의 뜰
- 2021.08.06 절망 앞에서
- 2021.08.04 고래를 조문弔問하다
- 2021.08.03 적조赤潮
- 2021.08.01 슬픈 바다
- 2021.05.05 내려가는 길
- 2021.04.24 고사古寺에서
- 2021.01.30 그리움을 아는 사람은
- 2021.01.20 수련睡蓮이 피는 아침
- 2020.12.27 나릿골 사랑
글
그 여자의 뜰
정이 많은 여자는
아랫도리에서 언제나 진물이 흐른다.
겨울보다는 봄이 많이 머무는
그 여자의 뜰엔
탱자나무처럼 가시를 감춘 꽃들이 먼저 피었다.
바닷바람이 불러서 갔다는
남편은 세월 속에 지워지고
그 여자의 뜰이 황폐해질 때쯤
돌담이 무너졌다.
너무도 허기져서
이것저것 안 가리고 다 받아들인 바다처럼
그녀의 배는 탱탱해졌다.
그 여자의 뜰에는
파도가 산다.
뒤척이면 그냥 출렁대는 신음이 산다.
2021. 4. 17
글
절망 앞에서
송 작가 거실 벽에는
죽어가는 바다가 걸려 있다.
조가비 딱지마다 한 몸인 양 기름이 엉겨 붙고, 갈매기 몇 마리는 타르의 밧줄에 묶여 박제剝製가 되었다. 한 쪽 눈만 겨우 자유를 지켜낸 갈매기 눈망울에 담긴 해안선, 바다의 온몸에는 버섯처럼 부스럼이 돋아났다. 바위도 나무도 온 세상이 겨울 빛으로 가라앉았다.
넓게 자리 잡은 바다의 절망에선
하루 종일 한숨처럼 수포水疱가 떠올랐다.
2021. 3. 15
글
고래를 조문弔問하다
해무海霧 접힌 후에야 알았네.
어젯밤 바다가 왜 그리 숨죽이고
흐느꼈는지.
9,5m 길이의 몸에
5,9kg 플라스틱을 채우고
허연 배를 드러낸 채
누워있는 향고래
어미는 심해의 어둠 속을 헤매며
목메어 부르고 있을게다.
울다 울다 눈물이 말라
피를 흘리고 있을 게다.
저녁노을 삼베옷처럼 차려입고
곡哭을 하는 바다
갈매기 목소리 빌려
나도 고래를 조문弔問하네.
글
적조赤潮
심한 멍 자국 짓물러
바다의 신음은
온통 열꽃 빛이다.
돌아누울 힘도 없어서
혼절한 채 끙끙대는
파도는 온통 앓는 소리다.
글
슬픈 바다
바다는 비가 와도 젖지 않는다.
세상의 눈물 나는 일들은
모두 바다에 모여 있다.
작년에 아프리카에서 반란군에 살해당한
어미의 슬픔과
플라스틱 병을 삼키고 허연 배를 드러낸
고래의 눈물이
소용돌이로 울고 있다.
더 이상 버리지 마라.
아침 해를 띄워 올리는
저 바다의 싱싱한 웃음 뒤에
한 그루씩 죽어가는
산호의 비명이 포말泡沫로 부서지고 있느니.
바다는 스스로 늘 제 몸을 닦고 있지만
이미 흠뻑 젖어
더 이상 젖을 곳이 없다.
세상이 버리는 아픔
모두 꽃으로 피울 수는 없다.
글
내려가는 길
인생길 내려가다가
길가 풀밭에 편하게 앉아
풀꽃들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서두를 일이 없어서 참 좋다.
올라가는 길에는 왜 못 들었을까
바람에 나부끼는
작은 생명들의 속삭임
올라가는 길에서는
왜 못 보았을까
반겨주는 것들의 저 반짝이는 눈웃음
아지랑이 봄날에는 투명한 게 없었지.
서둘러 올라가
하늘 곁에 서고 싶었지.
모든 걸 내려놓고 앉은 후에야
아름다운 것 아름답게 보고 듣는
눈귀가 열려
노을에 물들면 노을이 되고
가을에 물들면
가을이 된다.
2021. 5. 5
『대전문학』93호(2021년 가을호)
글
고사古寺에서
사랑은 저 대웅전 단청처럼
목탁소리 쌓여서
바래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염불하는 저 노승의 얼굴처럼
풍경소리에 쓸린다고
자글자글 주름만 파여지는 것이 아니다.
옅어지며 법당의 향내가 묻어
더욱 익숙해지고 정이 가는 것
갈피마다 세월이 익어
더욱 깊어지는 것
소나무 길로 둘이 손잡고 걸어가면
넘어가는 노을도
지나온 발자국을 식지 않게 덮어주는 것
『문학사랑』137호(2021년 가을호)
글
그리움을 아는 사람은
그리움은
그리운 채로 그냥 남겨두자.
밤하늘 별들이 언제나 아름다운 것은
멀리서 서로 그리워하기 때문이다.
볼 수 없어 신비로움이 살아있기에
반딧불처럼 반짝이는 사랑을
오래 간직할 수 있는 것이다.
정말로 그리움을 아는 사람은
만나자는 말을 참을 줄 아는 사람이다.
만나서 그리움이 깨어지는 순간
우리는 마음속의 보석 하나를 잃는 것이다.
2021. 1. 30
글
수련睡蓮이 피는 아침
당신의 웃음에서는 향기가 납니다.
당신의 향기는
물속에서도 씻겨가지 않습니다.
사랑이 가장 낮은 쪽에서
수줍은 미소로 피어
생우유 빛 살결과
밀어가 녹아있는 불타는 꽃술
아! 당신은
한 번 빨려들면 헤어 나올 수 없는
저 늪 같은 사람.
2021. 1. 20
『문학사랑』136호(2021년 여름호)
글
나릿골 사랑
아직 사랑하는 사람 만나지 못했으면
나릿골 감성마을
비탈진 언덕길 올라가 보아라.
골목이 끝나는 마지막 집에
요것조것 다 따지는 요즘 식 사랑 아니라
첫눈에 반하면 와락 안겨오는 옛날 식 사랑
한 사람 만날지 모르지.
러브레터로 떠오르는 달을 몰고 들어가
갈매기 목청을 빌려 진한 고백 한번 해 보아라.
해풍에 씻기고 씻긴 솔빛 사랑을
그 사람 가슴에 깊이깊이 심어놓아라.
촌스러워 더 정이 가는 알록달록한 지붕 아래
마지막 배가 들어오고
방파제 그늘 속으로 하루가 접히면
고단함도 때로는 낭만이 되기도 하지
소주 한 잔에 안주는 짭조름한 파돗소리
노래는 주인이 부르고
손님은 바다에 취하고
천 년을 해풍에 익은 해송의 춤 자락에 묻어
밤 내 사랑을 익히고 익히어라.
여명이 밝아오면 해당화로 피게
가슴을 들썩여 불을 지피거라.
실직국悉直國 사람들은 눈 감아도 알지.
순박한 눈빛에서 생선 비린내가 풍기는 걸
새벽으로 해를 씻어 안고 내려오는
정다운 계단마다
햇살처럼 고이는 헌화가獻花歌 가락…
2020. 12. 27
『시문학』598호(2021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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