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목이 다 쉬어빠져서

 

 

바다에는

노래가 산다.

 

피리처럼 수많은 구멍이 있고

바람만 불면

반짝이는 음계音階들이 물결 위에서 춤을 춘다.

 

절벽 머리 삼백 년 묵은 향나무의 귀는

갈매기가 씻어주었지.

 

갈매기는 새끼까지 불러와서

고막鼓膜의 신경들을 샅샅이 닦아내고 있다.

 

가는귀먹은 방파제 옆 바위에는

작은 소라새끼들이

다닥다닥 붙어서 나팔을 불고

 

달밤이면 수억 개의 물이랑마다

달빛이 바다를 끌어안고 덩실거렸는데

 

바다가 목이 쉬었다.

 

백사장을 기어오르는 물거품에는

피가 밴 가래침이 흥건하다.

 

밤새도록 기침을 하는 바다의

쉬어빠진 목소리에는

인간이 찌른 탐욕의 못 하나 박혀있다.

 

 

 

 

 

posted by 청라

항구의 가을

항구의 가을

 

 

전어 굽는 냄새로 온다.

항구의 가을

멀리 바다까지 마중 나와서

기어이 소주 몇 병 마시게 한다.

 

빈 배로 돌아온 어부들이

가을에 취해 목로주점에 모여들면

안주로 씹어대는 건 이상 기온

 

해수 온도가 올라가

오징어 보기가 임금님 보기보다

어렵단다.

 

밤새도록 허탕을 친 어부들이

어둔 밤바다에

소망을 묻으려할 때

 

마누라 잔소리 같이 정겨운 가을은

서릿발 돋친 마음마다

색동옷을 걸쳐준다.

 

 

posted by 청라

황해黃海

황해黃海

 

 

저 빛깔은

타이항산맥의 피부 빛을 닮았을 것이다.

 

신시도에서 고깃배를 타고 선유도로 가다가 느낀

고달픔의 질감

나는 노새를 타고 황토 고개를 오르는 사람들과

갯냄새로 염장鹽藏된 어민들의 오래 묵은 아픔을 생각했다.

 

삶이 이리 탁하고 막막한 것은

황하가 끊임없이 토해내는

각혈咯血 때문이다.

 

산둥성 해안가에 늘어선

공장들처럼

쉬지 않고 쏟아내는 대륙의 피고름

 

자정自淨의 시계소리 멈춘

황해黃海의 하늘

공동묘지처럼 적막하게 해가 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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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라가 된 바다

미라가 된 바다

 

방조제들이 쇠사슬처럼

바다의 자유를 결박結縛하고 있다.

폐경기의 달거리 빛으로

바다는 노을을 베고 잠들어 있다.

방조제 밖의 물들은 까치발 서서

안쪽의 물들을 보며

격려의 박수를 치고 있지만

먼 바다로 나가지 못하는 소망들이

조금씩 수척해지며

미라가 된 바다.

숨죽은 물결 소리 깨어진 칼날이 되어

새만금의 일몰日沒을 찢고 있었다.

 

 

 

posted by 청라

바다는 온몸이 아프다

바다는 온몸이 아프다

 

 

  바다의 웃음 속엔 가시가 있다. 

  수만 년 동안 사람과 함께 해온 어깨동무를 풀고 있다. 

  후쿠시마라던가, 방사능의 촉수들이 슬금슬금 기어 나와 바다에 멍에를 씌우고, 아프게 하고, 결국은 결별訣別의 손을 흔들게 만든 곳 

  산리쿠 앞바다는 지금도 죽고 있다. 

  갈매기들도 악을 쓰고 울지만 마음 놓고 울 힘이 없다. 

  허리 휜 물고기들이 정상定常으로 보이는 바다, 사람들을 믿었다가 불치의 병을 얻은 바다 

  바다는 지금 꿈틀거리며 우리 곁을 떠나고 있다.

 

 

 

posted by 청라

대왕거북이의 노래

대왕거북이의 노래

 

 

오래 산다는 것은

큰 산 하나 등에 지는 일이다,

 

세월의 무게만큼

더 무거워진 산은

등껍질에 굳은살을 옹이처럼 박아놓는다.

 

어제까지 학처럼 고고하게

춤추던 바다

어둠에서도 빛이 나던 심해深海의 평화여!

 

어떤 것은 싹을 틔워

노래가 되는 것이 있다.

어떤 것은 꽃을 피워 사랑이 되는 것도 있다.

 

노래도 사랑도 되지 못하고

단단한 물의 방어력을 허물고 들어와

상어처럼 억 년의 고요를 물어뜯는

인간의 붉은 손자국

 

비닐봉지는 투라치 되어

유유하게 선회하는 날개를 달고

플라스틱 병들은 뱀파이어 오징어처럼

파란 눈을 번득이며 자연의 균형을 허물고 있다.

 

대왕거북이 일생은 물거품처럼 부서지고

흥얼흥얼 입가에 꽃으로 피었던 노래

울음으로 시들었다.

 

천 년을 산다는 것은

우주만한 형벌 하나 가슴에 품는 일이다.

 

 

posted by 청라

북극곰의 눈물

북극곰의 눈물

 

 

빙하가 녹으면서

북극곰의 평화도 얼음처럼 깨어졌다.

 

고리무늬물범을 잡으려고

하루 종일 설원을 헤매다가

어미는 바람만 가득 마시고 돌아왔다.

 

미역 쪼가리만 먹은 몸으로는

허기진 여름을 날 수가 없다.

마지막 숨을 몰아쉬는 새끼 옆에서

어미는 바다를 보고 크게 울었다.

 

온실가스로 덮인 세상

날마다 수척해지는 지구

오늘 북극곰은

멸종 위기 종 장부에 올랐다.

posted by 청라

일그러진 유화油畫

일그러진 유화油畫

 

 

새벽 갈매기 소리나 듣자고

손자 손 붙잡고 들어선 해수욕장엔

쓰레기가 산을 이루고 있었다.

 

덧없이 버리고 간

지난밤 젊은이들의 유희遊戲의 흔적

우리는 하나씩 비닐봉지에 주워 담았다.

 

씨팔놈들 씨팔놈들

파도가 이만큼 들어와

욕하고 물러났다.

 

일곱 살 아이의

해맑은 도화지 위에

오래 남아있을 일그러진 유화油畫

 

햇살처럼 반짝이는 갈매기 소리가

파편破片이 되어

가슴을 찌르고 있었다.

 

 

2021. 3. 20

 

posted by 청라

바다는 눈뜨고 자는가

바다는 눈뜨고 자는가

 

 

여수 앞바다가 빨갛게 각혈咯血하던 날

포구엔

바다로 나가지 못한

작은 배들만 옹기종기 모여 있고

가자미식혜를 잘 하는

이북할머니네 막걸리 집엔

바다 사내들만 푸념을 나누어 마시고 있다.

황토黃土를 실은 배들이

부지런히 항구를 드나들지만

뿌리고 또 뿌려봐야 새 발의 피

바다의 피부가 워낙 부스럼투성이라서

바람도 깨금발로 물을 건너고 있다.

김 서방네 양식장엔

벌써 우럭 새끼가 하얗게 떠올랐단다.

쑤시고 아픈 데가 너무 많아서

바다는 밤새도록 눈뜨고 자는가.

 

 

2021. 3. 16

 

posted by 청라

대양大洋이 뿔났다

대양大洋이 뿔났다

 

 

중앙 인도양을 달리다가 보면

대양大洋이 뿔났다.

 

칼스버그 해령海嶺이 로드리게스 섬에서

아덴만까지

섬 하나 없이 봉우리 문질러놓고

 

성질나는 밤이면 우르르 우르르

해저를 흔들며 으르렁댄다.

 

바다는 사막沙漠이다.

형형색색 빛나던 산호의 노래도

온난화溫暖化의 발톱에 찢기어 간다.

 

고국故國 남쪽 바다에 동백꽃이 핀 게 언젠데

뿔난 바다는

아직도 겨울을 벗지 못했다.

 

 

2021. 3. 6

posted by 청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