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는 나를 염장鹽藏시킨다

 

 

바다와 사랑에 빠지면서

나는 사랑을 얻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겨울 바다처럼 삭막하던 얼굴에

동백꽃 향기 부드러운

웃음을 하나 장착裝着하게 되었다.

 

뒷골목처럼 어둡고 좁아터진 흉금胸襟

수평선만큼이나 넓혀 놓고

 

갈매기 노래 같이 달콤한 말과

파도의 근육보다 더 단단한 의지를

내 삶의 행보行步에 옮겨 심었다.

 

바다와의 사랑은 나를 염장鹽藏시켰다.

적당히 간이 배어

맛깔 나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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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저녁

돌아온 저녁

 

 

뱃고동 울려라

내가 왔다.

 

어머니

된장국 냄새 같은

항구의 불빛

 

서둘러 마중 나온

초승달 웃음

 

대양 안을 만큼

가슴 찢어질 만큼

항구는 팔을 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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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항

부산항

 

 

오륙도五六島가 보이면

부산항에 다 온 거다.

 

동백섬엔 꽃이 졌어도

동백꽃 향기는 남아

 

짭조름한 갯냄새 뚫고

취나물 향기처럼 마음 적셔오는

고국故國의 산들,

 

갈매기도 경상도 사투리로

울어

가슴 설렌다.

 

언제나 부산항을

엄마의 자장가처럼 감싸 안았던

영도와 조도가

두 팔을 벌려 나를 반겨준다.

 

배에서 내려

부둣가 선술집에서 막걸리 한 잔 마시면

황천항해의 아픈 기억도

꿈결처럼 가라앉겠지.

 

입에 담기만 해도 눈물이 나는

곁에 있어도 언제나

그립고 그리운 그 이름은

부산항이다.

 

 

 

 

 

 

posted by 청라

카리브 해의 사랑

카리브 해의 사랑

 

 

소녀는

마야의 벽화 속에서 걸어 나와

전통춤을 추었다.

 

대서양의 수평선이 모두

춤 속으로 빨려들었다.

 

베고니아 꽃 피면

입술을 준다고 했지.

 

눈부신 햇살과

카리브 해의 바람이 키운

마호가니 빛깔의 설렘

 

쿠마나의 바다가 떠오르면

투명해서 더 안 보이던

소녀의 마음이 보일 듯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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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브롤터 해협을 지나며

 

 

어제는 세비야에서

플라멩코의 불꽃같은 춤사위를 보고

오늘은 태극기 휘날리며

지브롤터 해협을 지난다.

스페인 함대들이 대서양으로 나가기 위해

나팔 불며 기세등등하게 지났을 이 해협을

우리 손으로 만든 배를 타고

허리 산맥처럼 펴고 지나간다.

가슴 저 깊은 곳에서 울려오는 북소리

우리는 이제

세계 어디에 굽히지 않아도 될 해양 강국

레반테 심술궂게 치고 지나가도

배 몇 대에 쩔쩔매는 약소국가가 아니다.

지브롤터의 바위산들이 험상궂게

근육을 드러내고 있다.

눈을 부릅뜨고 가슴을 펴고

유럽으로 아메리카로 세계를 헤집고 다니면서도

저 펄럭이는 태극기 아래서는

두려운 게 없다.

posted by 청라

몬순을 만나다

몬순을 만나다

 

 

아라비아해로 들어서자 몬순이 마중 나왔다.

배는 좌우로 거칠게 흔들리고

선속船速은 떨어져 4, 5 노트

갈 길은 까마득한데

 

인도양 몬순에는 도망갈 곳이 없다

몬순의 어금니가 배의 옆구리를

상어처럼 물어뜯어도

수마트라 섬을 지나면 아덴만까지 삼천 마일

바람을 막아줄 섬 하나 없다.

 

화물들은 좌우로 요동치며 비명을 지르고

어제 먹은 라면마저 모두 토해내는데

지옥이다.

이 황천항해는 도무지 정이 들지 않는다.

 

바람과 배의 방향이 수직에서 벗어나게

항로를 틀어보지만

헤비 웨더 속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다.

 

다 왔다. 다 왔다

선장은 주문呪文처럼 같은 말로 독려하지만

나는 무슨 영화榮華를 보려고

배를 타고 이 폭풍 속을 헤매고 있는가.

 

부서진 집기처럼 깨어진 소망들이

선상에 널려있는 풍경을 보며

멀리서 아덴만이 손을 흔든다.

 

천국으로 들어가는 관문처럼 바다에는

거대한 무지개가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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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태평양 항해일지

북태평양 항해일지

 

 

분노는 모이면 모일수록 거대해지는가.

 

몽니를 보아라.

풍파로 일어서는 저 남자의 거대한 주먹

 

위도선을 따라 서진하며 심통 부리는

폭풍의 왼쪽 가항반원可航半圓

배를 놓는다.

 

북태평양의 겨울은

바람의 나라다.

어린아이 달래듯 시속 사, 오 노트

 

0545시에

북위 3210, 서경 17021

변침점까지는 아직도 멀다.

 

세상은 뒤집어지더라도

방화, 방수 훈련 준비 이상 무

 

폭풍에 씻긴 달과 별이

아기 웃음처럼 해맑다.

 

 

posted by 청라

0시의 바다에서

0시의 바다에서

 

 

사랑하는 이여!

 

내가 바다의 수인囚人이 되어버린 것은

바다가 내 안에

울타리를 쳤기 때문이다.

 

0시의 바다엔 사랑이 철조망이다.

나는 절대로

바다를 뿌리치고 떠날 수가 없다.

 

단단한 껍질에 갇힌 밤벌레처럼

불빛 한 점 없는 고독의 사막에서

바다의 체취體臭만 파먹고 있다.

 

사랑하는 이여!

내가 바다를 떠나지 못하는 것은

내가 바다를 내 안에 들여놓았기 때문이다.

 

당신 곁으로는 갈 수가 없다.

출렁거리는 저 물결을

가슴에 담은 후로는

 

 

posted by 청라

근해近海를 나서며

근해近海를 나서며

 

 

살다가 싫증이 나면 배를 타는 거다.

오륙도가 한사코 나를 붙잡아도

그래, 대양大洋을 향해 나아가는 거다.

 

머리 감아 빗고 새색시처럼 다소곳한

섬들 하나씩 뒤로 밀려나고

사랑하는 사람들 얼굴조차 출렁이는 물결에

씻겨나갈 때

 

절대로 돌아서지 않으리라.

가족들과 단란히 조반을 먹고

차 한 잔 마시는 아침 그리워하지 않으리라.

 

그 많던 어선들 한 척씩 줄어들고

막걸리 맛처럼 외로움이 혼곤하게 배어들 때

내 의지 포세이돈의 근육처럼 굳세게 단련하여

해를 잡으러 해 뜨는 곳으로

끝없이 달리리라.

 

인생처럼 넘고 또 넘어도

끝없이 가로막는 파도

세월이 소용돌이치는 삶의 바다에서

이제 저 수평선만 훌쩍 넘으면

부상扶桑이 코앞에 다가오겠지.

 

 

 

posted by 청라

출항出港의 아침

출항出港의 아침

 

 

일출日出을 예인曳引하러 떠났던 배들이

해당화 꽃밭처럼

눈부신 아침을 피워놓으면

부산항은

새벽 닭울음소리로 피곤을 털고 일어나

오륙도 너머 수평선으로 출항出港의 깃발을 단다.

닻을 올리고 뱃고동소리 항구를 울리면

이제 나는 바다의 사나이

동백섬에 봄이 왔다고

동백꽃 향기 나를 부르러 와도

손을 흔들어야 한다.

에메랄드빛 꿈을 잡으러 떠나야 한다.

바다를 품는 사람이 세계를 이끄는

신 해양시대

해양 르네상스를 이 손으로 꽃피우겠다.

항구야 잡지 마라.

파고波高 험한 길이라고 멈출 수 있나.

불끈 일어선 젊음이 시들기 전에

유럽으로 아메리카로 한 바퀴 돌아

바다의 주인이 되어 돌아오겠다.

posted by 청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