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술 치마

 

요술 치마

봄 냄새 은은한

어머님 앞치마엔


취나물

도라지

고사리

나물 사이


찔레도 삘기도 숨어

무진무진 솟아났지.


모깃불 향내 속에

멍석 펴고 드러누워


어머님

치마 덮고

밤하늘

별을 보면


따스한 옛날 얘기에

잠이 살풋 들었지.

사진

posted by 청라

눈물 ― 思母 十題 7

 

눈물

― 思母 十題 7

부엉이 소리에 놀라

잠이 깨면

이불이 가늘게 떨렸습니다.


아버님은 투전판에서 며칠째 아니 오시고

‘기챙이네 못살게 되었다더라’

풍문이 먼저 건너온 날 저녁


일렁이는 어둠 속에서

나는 어머님의 눈물을 보았습니다.


잠든 자식들 손 하나하나 잡아보시며

어둠을 환히 태우고도 남을

시퍼렇게 날 선 눈물을 보았습니다.


꿈밭 머리 빛 이랑이

부옇게 밝아오는 아침이 오면


밤새 진한 울음이 걸려있던

입꼬리에 분꽃으로 피어나는

어머님 미소 속에서


말갛게 가라앉은

눈물을 보았습니다.

posted by 청라

기다림― 思母 十題 6

 

기다림

― 思母 十題 6

살구꽃이 피면서

그늘 속에 숨어있던 마지막 겨울이

은은한 봄향기에 녹아듭니다.

마곡사에서 띄워 보낸 풍경소리가

태화천 물소리 속에 더 맑게 들리고

가리마처럼 정결하던 남가섭암 가는 길에도

연초록 봄 물결이 넘실댑니다.

속삭이는 봄바람이 살구꽃 가지 스칠 때마다

나는 문을 활짝 열고

어머님 자취를 찾아봅니다.

살구꽃 꽃등은 기세 좋게 타오르는데

굳게 닫힌 대문은 적막합니다.

오늘 아침 쓸어놓은 마당의 빗자국마다

햇살은 투명하게 내려와 속살거리고

어젯밤 꿈밭에서 생시처럼 앉아 계시던

우물 가 돌 위에는 구름 그림자만 어른댑니다.

아침 내내 살구꽃 망울 틔워주던

까치 울음소리도 보이지 않고

화향이 폭죽처럼 번져가는 들판으로

하루는 빨리 가서

철성산 저녁 어스름이 내려옵니다.

대문을 열고 나가 어릴 적 그 바위에 앉아 기다리면

장에서 돌아오듯 산모롱이로

아른아른 아지랑이처럼 보일 듯한데

어머님 기다리는 살구꽃 핀 날 하루는

知天命의 나이에도 어린애 되는

어머님!

소리쳐 불러도 메아리만 대답하는

산천에 봄이 왔지만

내 가슴은 겨울입니다.

posted by 청라

어머님 제삿날

 

어머님 제삿날

마당 쓸고 마루 닦고

새 옷 입고 문간에 서


산모롱이 바라보며

어머님 기다리니


까치들도 소리를 모아

하루해를  지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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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무덤

 

돌무덤

애동솔 숲 돌무덤에

자줏빛 도라지꽃

육이오 사변통에

하늘 가신 형님 모습

두견새 목청을 빌어

밤새 울어댑니다.


눈 가만 감으시고

형님 얘기 하실 적에

입가엔 웃음 짓고

눈 가엔 이슬 맺혀

피멍울 끌어 앉고서

평생 사신 어머님.


치마끈에 달랑대던

고사리손 그리워져

돌무덤 곁 지날 때에

눈 감고 걸으시던

어머님 아린 가슴에

뽑혀지지 않는 대못.

posted by 청라
 

49재(四十九齋)

― 思母 十題 5

어디로 떠나가려고

영가의 눈빛 아롱아롱 흔들리는가

목탁소리 따라 만수향은 사위어

어머님 영혼

이 세상 남은 시간도 조금씩 줄어듭니다.

생전에 못 사드린 과일로

제사상을 채우며

이제는 장식에 지나지 않음에 가슴 아파합니다.

육신은 보내고 혼만 남아

어두운 곳에 숨어 자식 걱정으로 떨다가

빗소리에 젖지 않는 빛나는 길을 따라

머언 길 떠나려고 가슴 앓는 어머님

노스님 외시는 염불 따라 외면

내 눈가엔 끊임없이 빗소리는 내리고

유월의 창문 밖에는

상수리나무 초록빛 목청을 밟고

이승의 사투리로 휘파람새는 웁니다.

다시 향불을 살라

서역하늘 무성한 구름을 지우고

삼베 옷, 상장 태우며

두 손 모아 비느니

우연에 지워지는 저 사바의 마을

마당 앞 살구나무에 봄이 오면

환히 불 밝히는 살구꽃으로 오소서.












posted by 청라
 

하관(下官)

― 思母 十題 4

향을 피운다. 봄 하늘에

가는 실처럼 향연이 오른다.

향불이 꺼지면 이제 우리는

눈물을 묻어야 하리.


한 사람의 일생을 담아놓기엔

너무나 좁은

직사각형의 공간으로

관이 내린다

천   천   이


관이 내려지면서 뚜껑이 열리면

일평생 마련하신

삼베 수의 한 벌

허망한 빈 몸…


내가 드릴 수 있는 것은 단 하나

막막한 저승길 밝혀줄

탑다라니 한 장

흙을 덮으며

가슴앓이를 묻는다.

자식 둘 앞서 보낸 눈물의 생애를 묻고

맨발로 헤쳐 온 아픈 역사를 묻고

어머니의 향기를 묻는다.


한 사람 비운 빈자리엔 진달래꽃

심술로 고와

두견새 울음으로 봄이 녹는데


손 흔들며 손 흔들며

영 떠나보내려 해도

스쳐 가는 바람, 흔들리는 나뭇가지에도

어머님 눈물은 있네.

posted by 청라

산철쭉

 

산철쭉

산철쭉

가지마다

점점이

밝혀든 꽃등


봄바람에 묻어나는

진분홍 옛 이야기


고향을 잊지 말라는 어머님의 말씀이다.

posted by 청라

백목련

 

백목련

옥양목 치마 저고리

장롱 속에 묻어 놓고


겨우내

설레임을

가꿔오신 어머님


봄 오자

곱게 차려입고

봄나들이 나오셨네.

posted by 청라
 

고무신

― 思母 十題 3

화톳불 연기가

밤 새 울음소리 지우고 있다.


사잣밥상 아래

백목련 꽃 두어 이파리

어머님이 벗어 던진 이승의 신발


까맣게 지워진 세상이라

더욱 하이얀

한 켤레

적막을 신고

나의 유년시절은 떠나고 있다.


벗겨도 벗겨도 추억의 껍질 남아 있는

고향집 뜰에

오늘도 내 어린 날 살구꽃은 지는데


어느새 이만큼 걸어와 뒤돌아보는

지명(知命)의 내 머리칼에

거뭇거뭇 남아 있는 어리광 싣고 가려고

밤 새 울음소리 지워진 세상

어머님 고무신

더욱 하얗게 빛나고 있다

posted by 청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