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승

여승

 

 

여승은

남탕으로 들어갔다.

수많은 사내들이 놀라

소리를 질렀다.

여승은 합장했다.

불법에 몸을 담근 승려에게는

남자냐 여자냐는 의미가 없습니다.

남자들의 대가리가

힘차게 꺼떡거렸다.

남자란 저렇게 생긴 거구나

여승은 가을 달밤 귀뚜리 울 때

콩콩 뛰던

설렘 하나 또 씻어냈다.

문에 다다른 여승의 이마에

백호白毫가 돋아났다.

 

2018. 11. 20

posted by 청라

촛불 세상

촛불 세상

 

 

촛불은

열 개만 모여도

신문, 방송에 활화산 터진 것 같다.

 

태극기는

만 개가 모여도

가물치 콧구멍이다.

 

국경일에

태극기 대신

촛불을 달아야 하나?

 

 

2018. 11. 13

posted by 청라

은행잎의 노래

 

 

누군가 부르는 소리 있어

뒤돌아보니

은행잎만 샛노랗게 떨어지고 있다.

 

떨어지는 은행잎엔 사랑이 있다.

새 잎을 위해

기꺼이 몸을 던진다.

 

한 잎이 몸을 던지면

또 한 잎이 몸을 던지고

온 우주 가득

노란 치마 활짝 펴고 떨어지는 삼천궁녀들

 

뒷사람을 위해서 깨끗이 물러나는 일은

꽃이 피는 일보다 아름다워라.

 

누군가 부르는 소리 있어

뒤돌아보니

사라짐의 날개로 세상을 덮으려는 듯

은행잎만 눈발처럼 흩날리고 있다.

 

 

2018. 11. 10

 

 

posted by 청라

부석사浮石寺 가을

 

 

잘 익어 울긋불긋

부처님 말씀

 

귀 열면 서해바다

피안彼岸이 코앞

 

향내 묻은 목탁소리에

씻고 또 씻어

 

다 벗은 벚나무처럼

말갛게 섰네.

 

 

2018. 11. 3

문학사랑126(2018년 겨울호)

posted by 청라

떼거리

떼거리

 

 

매미들

목청 높여

떼거리 쓰고 있다.

 

벤치에

앉아 쉬던

할머니 일어서며

 

힘없는 늙은이가 뭐

피해야지 별 수 있나.

 

 

2018. 11. 1

posted by 청라

가을 길

가을 길

 

 

, 여름 아름답게 걸어온 사람은

쑥부쟁이 꽃 모여서

피어있는 의미를 안다.

연보랏빛 기다림이

불 밝히고 있으니 가을이다.

가슴 아픈 이야기도

반짝반짝 빛나니 가을이다.

사랑도 함빡 익으면 결국은

떨어지는 것을

끝나지 않는 잔치 어디 있으랴.

나뭇잎들 색색으로 물들어

결별訣別을 준비하는 가을 길을 걸으면

기다림도 때로는 행복임을 안다.

 

2018. 10. 23

대전문학85(2019년 가을호)

posted by 청라

깨진 아리랑

 

 

늙은 가수 소프라노로

아리랑을 부르네.

 

호흡은 가빠져

박자는 이가 빠지고

 

높은 소리 갈라져

깨진 아리랑

 

깨어져 막걸리처럼

맛난 아리랑

 

 

2018. 10. 12

posted by 청라

각원사 청동대좌불

각원사 청동대좌불

 

 

어떻게 살아가면 저리 고운 모습일까

서편 하늘 걸린 눈빛 중생衆生들 복을 비는

입가의 따뜻한 미소 봄 벚꽃이 피어나네.

 

사랑도 집착執着이라 훨훨 벗어 버리려도

작은 아픔에도 몸이 먼저 타올라서

마음은 향불 올리는 잔정에도 짠하다

 

 

2018. 9. 29

문학사랑126(2018년 겨울호)

posted by 청라

산마을

산마을

 


횃소리

닭울음에

산이 와르르 무너져서

 

집집 골목마다

송홧가루 덮인 마을

 

아이들 놀이소리도

빤짝 켜졌다 지는 마을

 

 

2018. 9. 28

posted by 청라

여름을 보내며

여름을 보내며

 

 

목백일홍 꽃빛에

졸음이 가득하다.

한 뼘 남은 목숨을

다 태우는 매미 소리

친구야, 술잔에 담아

한 모금씩 마시자.

 

 

2018. 9. 9

posted by 청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