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문인탐방](20)시인 엄기창

엄기창 관련 기사 2018. 5. 15. 22:38

[지역문인탐방](20)시인 엄기창

25년 쉼없이 詩창작… 정제된 언어 호평

최진섭 기자 heartsun11@cctoday.co.kr  2003년 11월 12일 수요일 제14면     승인시간 : 2003년 11월 12일 00시 00분
충남 공주 출생으로 25년여의 오랜 시간 동안 한결같은 마음으로 꾸준히 시 창작 활동을 펼쳐 온 시인 엄기창 선생은 1974년 시문학사가 주최한 제1회 전국 대학생 시 모집에서 '아침서곡'이라는 창작시를 통해 당당히 장원을 차지하며 문학에 대한 꿈을 현실로 옮기게 됐다.

그는 다음해인 1975년 공주사범대학 국어교육과를 졸업함과 동시에 또다시 시문학사에 '아침바다'를 응모해 당선되며 문학계에 정식으로 등단하게 됐다.

이후 교직생활을 하는 동안에도 이른 새벽에 잠에서 깨어 시 창작을 위한 고뇌의 이슬을 마시는 등 정열적인 문학사랑을 키워 갔다. 쉽게 만들어진 시는 오래도록 독자의 마음에 남을 수 없다는 생각에 수십편의 시를 몇번이고 썼다 지우며 만족할 만한 시를 얻을 때까지 쉼없이 창작에 몰두했던 그는 1994년이 되어서야 첫 시집 '서울의 천둥'을 발표하게 됐다.

이렇듯 한 작품 한 작품에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히는 공을 들여서 일까, 그의 첫 시집은 출간 당시 '언어의 경제적 원리를 모범적으로 보여 주는 것은 물론 어느 구절 하나 그냥 허술하게 넘어가지 않는다'는 평을 받기도 했다.그는 첫 시집 발표 후에도 각종 문예지에 끊임없이 창작시를 게재하는 등 창작활동에 전념하고 있지만 두번째 시집은 내년쯤에나 발표할 예정이다.

여기저기 게재한 작품과 현재 집필해 놓은 작품이 한 권의 시집을 출간하기에는 충분하지만 한번 더 걸러야 하는 작업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올겨울 두번째 시집에 수록할 작품들을 정리할 계획이며 두번째 시집 출간과 함께 첫번째 시조집도 발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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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고향

 

 

복사꽃 피었다고

다  고향은 아니더라.

어머니 미소를

산에 묻고 돌아온 날

고향도 뻐꾸기처럼

가슴에서 날아갔다.


떠올리면  향내 나는

어머니가 고향이지.

타향에서 지친 날개

쉴 곳 없는 저녁이면

달밤에 손 모아 비시던

정화수井華水로 다독였네.

 

 

2018. 5.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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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사월

윤사월

 

 

범종소리 쾅 하고

골짜기 울리면

번뇌처럼 온 산 가득

날리는 송홧가루

동자승

빗자루 들고

삼고三苦

쓸고 있다.

 

 

 

삼고三苦 : 의 인연으로 받는 고고苦苦

즐거운 일이 무너짐으로써 받는 괴고壞苦

세상 모든 현상의 변화가 끝이 없음으로써 받는 행고行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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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절초 차를 마시며

 

 

움츠리고 있던

구절초 꽃 한 송이

찻잔 속에서 활짝 피어나면

 

기와집 가득 감싸 안는

가을의 향기

 

차 한 모금에

나도 향기가 되어

 

가을비 소리 타고

당신 마음의 문을 두드리면

 

! 수많은 날들 중

가장 빛나는 하루

 

시월의 앞섶에는

뭉클뭉클 번져가는

오색 빛 함성

 

2018. 4. 26

충청예술문화91(2019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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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에서의 밤

 

 

골물소리에 몸을 헹굽니다.

열대야의 꼬리가

조금씩 잘려나갑니다.

속세의 일들 실타래로 엉켜

밤새도록 불면의 바다엔

별들만 섬광閃光처럼 반짝입니다.

무엇을 비는 것일까요.

독경소리 화단 끝에서

봉숭아꽃 한 떨기로 피어납니다.

부처님 눈에 담긴 미소처럼

어둠 속에서도 붉어서 따뜻합니다.

달빛을 뽑아 실을 감으며

목탁소리 한 바가지 머리에 끼얹으면

비누거품처럼

번뇌의 때를 벗겨낼까요.

속 비운 목어처럼 편히 잠들 수 있을까요.

태엽 풀린 시간은 여명을 깨워내도

나는 아무것도 비우지 못했습니다.

 

 

2018. 4. 20

순수문학201810월호(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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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한 세상

환한 세상

 

 

아침에 아파트 문을 나서는데

위층 처녀가

안녕하세요.”

나도 기분이 좋아

청소하는 아주머니에게

수고하십니다.”

버스를 타는데 운전기사가

어서 오세요.”

점심을 먹고 나오며 식당 주인에게

맛있게 먹었습니다.”

작은 꽃잎이 모여 꽃밭이 되듯

반가운 인사가 모여

환한 세상이 된다.

 

 

2018. 4. 19

충청예술문화89(20198월호)

한글문학20(2020년 가을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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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의 독백

 

 

비 그치자

봄꽃들이 한꺼번에 화르르 타올랐다.

계절이 서둘러 가는 산마루에서

소용돌이치는 시간의 결을 들여다본다.

우리들의 사랑은  옛날처럼

순차적으로 피어났으면 좋겠다.

매화가 질 때쯤

벚꽃이 피고

벚꽃이 질 때쯤 철쭉꽃이 피고

지천으로 널려 폈다

일시에 지고 마는 꽃이 아니라

질릴 때쯤 새 꽃으로

연달아 피어나는 사랑이고 싶다.

 

 

2018. 4. 9

문학사랑127(2019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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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문제작>


잃어버린 자연을 찾아 배회하는 상상력

 

양병호

(시인 전북대 교수)

 

 

빈 들에

바람의 살 내음이 가득하다.

하루의 일 다 마치고 황혼을 바라보는

아버지 야윈 뒷모습 같은 허수아비.

나는 겨울 녘 들풀들의 신음마저

사랑한다.

박제로 남아있는 풀벌레소리들의

침묵도 사랑한다.

황금빛 가을에 이루어야 할 삶의 과제들

모두 마치고

부스러져야 할 땐 부스러지는

저 당당한 퇴임退任

눈부신 정적靜的의 틈을 비집고 들어온

먼 산사 범종소리 들을 채우면.

수만 개의 번뇌처럼 반짝이는 눈발

눈발 속으로 꺼지듯 지워지는 허수아비

  -엄기창, 겨울 허수아비전문

 

이 시는 겨울 들녘의 허수아비를 통해 노년의 인생을 서정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허수아비는 노년에 이른 시적 화자의 마스크/아바타로 기능하고 있다. 시적 화자의 노년은 다양한 자연의 이미지와 상상력을 통해 구체화되고 있다. 특히 소멸의 아름다움을 자연 사물과 풍경의 유려한 직조를 통해 감각적으로 구상화시키고 있다.

시인의 자연에 대한 인지는 바람의 살 내음이라는 감각은유를 통해 탁월한 표현효과를 성취한다. 여기서 바람은 화자의 살아온 생애에 대한 상징적 의미를 압축적으로 심화하고 있다. 나아가 무색무취의 바람살 내음이라는 구체적 감각을 부여함으로써 추상을 구상화하고 있다. 말하자면 빈 들에/ 바람의 살 내음이 가득하다는 화자의 열정적인 생애가 공허한 세계를 충만하게 변용하는 풍경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시인은 텅 빈 공허의 세계 속에서 허수아비에 주목한다. 그는 허수아비로부터 아버지를 환기한다. 물론 이러한 직관은 화자 자신에게로 전이되어 나아간다. 예컨대 시인의 상상력은 들판의 허수아비로부터 아버지로 또 다시 자아에게로 투영된다. 결국 화자는 노년에 이른 자신의 삶이 아버지의 살아온 생애와 겹치는 것임을 자각한다. 다시 말해 인생의 공통성을 인지하는 것이다. 그 공통성은 야윈 뒷모습으로 표상된다. 다시 자신과 아버지 둘 사이의 인생의 공통분모는 허수아비로 수렴된다. “허수아비는 삶/인생에 대한 허무적 페이소스를 강하게 부각시킨다. 말하자면 인생이란 허수아비의 이미지와 같이 공허하고 운명론적인 것임을 감각적으로 표출한다.

노년에 이른 화자는 이제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애정과 연민의 정서를 드러낸다. 그의 시선은 죽음의 계절에 당도한 들풀의 신음풀벌레 소리의 침묵에까지 확산되어 나간다. 화자는 이렇게 소멸이 예정되어 있는 자연 사물들이 자아의 존재론적 상황과 유사함을 이해한다. 화자는 궁극적으로 자연 사물을 통해 자신의 존재론적 위상을 읽어내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가 사랑하는 자연 사물의 소멸의 운명은 결국 자신의 삶으로 치환된다. 화자는 자신의 존재론적 소멸의 상황에 대한 연민의 정서를 표출하고 있는 것이다.

겨울이라는 계절의 상징/죽음 앞에 당도한 자연 사물들은 삶의 과제들을 수행한 뒤 순연히 운명을 맞아들이고 있다. 그것은 당당한 퇴임으로 표상된다. 자연 사물들의 퇴임은 기실 화자의 존재론적 운명이나 다름없다. 그리하여 존재론적 소멸에 대한 화자의 태도는 의연하고도 강직하다. 그러한 당당한 태도는 부스러져야 할 땐 부스러지는생로병사라는 자연의 이법을 수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연의 상징을 수긍하는 화자의 의연한 자세는 눈부신 정적의 순간에 삶의 번뇌를 해탈하는 범종소리와 조우한다.

이 시는 허수아비라는 사물을 통해 존재론적 고뇌를 형상화하고 있다. 그 존재론적 고민은 허무와 소멸의 관념으로 드러난다. 그러나 화자의 존재의소멸과 허무를 자연의 이법으로 당당하게수긍한다. 그리하여 존재론적 허무와 소멸에 대한 고뇌는 긍정적인 수용의 태도로 인하여 맑고 투명한 정서로 승화된다. 이 시의 이러한 관념과 정서는 다채롭고 선명한 자연 사물과 이미지를 통하여 구체성과 감각성을 훌륭하게 성취한다.

 

 

시문학20183월호 이달의 문제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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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분春分 일기

춘분春分 일기

 

 

사랑을 파종한다.

당신의 마음 밭에

 

꽃씨처럼 은밀하게

한 촉씩 싹을 틔워

 

입하立夏쯤 만개한 정을

한 송이만 보내소서.

 

2018. 3.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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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어머니

 

 

이 세상

어머니는

모두 다 미인이다.

 

자식 사랑 자식 걱정

별만큼 담은 가슴

 

곰보에

언청이라도

보고 나서 또 그립다.

 

2018. 3.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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