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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입춘立春 일기
대문 앞 콩 뿌리기보다 마음 먼저 닦고 보자
오신채五辛菜 먹기보다 삶의 쓴맛 깨우쳐서
입춘첩立春帖 붙이기 전에 이웃집에 쌀 한 됫박
2018. 3. 14
글
은적암 가는 길
절은 산에 깃들고
부처님 눈빛에선
산수리치 냄새가 풍겨야 제 맛이지
지난달 초승에 본
부처님 미소가 너무 상큼해서
몰래 길어놨던 한 모금만 마셔도
비탈길 오르는 발걸음에 날개를 단다.
부처님 만나러 가는 길에는
햇살에도
향내가 난다.
뻐꾸기 소리가 붙잡아서
잠깐 앉았다 가는 바위 위엔
맑은 정적靜寂
산에 취해 길을 잃을 때쯤
목탁소리가 마중 나와서
그래 오늘은 부처님 말씀으로
때 묻은 온 몸 씻고 가야지.
2018. 3. 10
『대전문학』84호(2019년 여름호)
『현대문예』105호(2019년 7,8월호)
글
폭로 공화국
은밀한 것들 모두 끄집어내어
빨랫줄에 걸어놓는 일
잘하는 일인지 모르겠다.
사람들 모두 지나가면서
흙 묻은 작대기로 수도 없이 후려치는 일
빛나는 일인지 모르겠다.
지나온 길 되돌아보면
부끄러움 하나 없는 사람
어디 있을까
아름답던 것들이 우수수 떨어지는
일요일 아침
꽃은 피어서 무엇 하나.
2018. 2. 25
글
우수雨水 일기
첫울음
연초록이 파르르 떨고 있다.
겨우내 웅크린 가지
속살에 배어있던
종달새
아껴둔 노래
분수처럼 솟고 있다.
2018. 2. 21
글
맹지盲地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사람을 하나씩 끊는 일이다.
사방으로 열려있던
사람들 속에서
조금씩 문을 닫아거는 일이다.
어느 날 새벽 바람결에
나는 문득
내 목소리가 혼자라는 걸 느낀다.
무한히 열려있던 세상 속에서
한 군데씩 삐치고 토라지다가
물에 갇힌 섬처럼 내 안에 갇히고 말았다.
아, 타 지번地番의 군중들로 둘러싸여서
나는 그만 맹지盲地가 되고 말았네.
겨울 들 말뚝처럼
적막에 먹히고 말았네.
2018. 2. 10
『대전문학』80호(2018년 여름호)
『시문학』2019년 3월호
글
해우소解憂所에서
들어갈 땐 고해苦海에 찌든
얼굴을 했다가도
해탈한 듯
부처님 얼굴을 하고 나온다.
채우는 일보다 비우는 일이
얼마나 더 눈부신 일이냐.
염불 소리도 하루 몇 번 씩은
해우소解憂所에 와서
살을 뺀다.
배낭에 메고 온
속세의 짐을 모두 버리고
한 줄기 바람으로 돌아가 볼까.
냄새 나는 삶의 찌꺼기들 모두 빠져나간
마음의 뜰에
산의 마음이 새소리로 들어와
잎으로 돋아난다.
2018. 2. 6
『문학사랑』131호(2020년 봄호)
글
산정호수의 구름
어제 벙근 구름 건져
내 어항에 심었는데
오늘 아침 꽃구름이
수련처럼 또 피어났네.
뿌리 채 곱게 캐어서
네 마음에 전하네.
잔뿌리도 상하잖게
네 울안에 모종하게.
서울의 하늘에서
이런 구름 보았는가.
사랑을 일고 또 일어
산의 숨결로 빚은 구름
2018. 2. 2
글
설일雪日
산도 숨을 멈추었다.
하얀 눈꽃 위의 적막
햇살도 눈을 감고
바람도 날개 접어
문 열면 깨어질까봐
문고리 잡고 서 있다.
2018. 1. 31
글
금동관음보살입상
백제의 미소는 황홀하다.
금동관음보살입상 앞에 서면
온갖 근심 씻겨 나가고
팔 엽 연화대좌 위에 삼보 관
탄력적 몸에서 봄바람 같은 말씀
흘러나올 듯도 하다.
통통한 두 뺨에 둥근 얼굴
백제사람 모습으로 현신現身했구나.
천 년을 지나도 변치 않는
자비로운 얼굴
보고 있으면
삶의 독한 매듭도 술술
풀릴 것만 같다.
2018. 1. 30
글
매화 연서
눈꽃 위에 달빛 차서 마음이 시린 새벽
매화 분에 일점홍一點紅이 심등心燈에 불을 밝혀
맑은 향 한 방울 찍어 붉은 연서 보낸다.
내 마음 보낸 사연 서랍 가득 쌓였을까
꿈에 간 내 발길에 님의 문턱 닳았으리.
잠결에 매화 향 풍기면 내가 온 줄 아소서.
2018. 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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