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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산울림이야
초록이 눈 시린 날
고향 산에 가면
꿈결인 듯 울려오는
따오기 소리
아, 산울림이야
노을이 꽃물 드는
회재 넘을 때
금방 오마 던지고 간
새빨간 그 말
아, 산울림이야
2017년 8월 5일
글
꽃과 나비
깨어진 보도블록 사이에
뽀얀 새살이 돋아났다.
민들레 볼을 비벼
보조개처럼 피워낸
하얀 꽃 한 송이
자동차 경적소리
칼날 휘두르며 지나가도
나비는 꿈쩍도 않고 앉아있다.
가녀린 꽃과
나비 날개가 감싸 안은
세상의 흉한 상처
2017년 7월 29일
글
계룡산
계룡산아!
속으로만 나직이 불러도 계룡산은
언제나 내 영혼 속에서 살아난다.
계룡산 보다 더 높은 산은 많지만
더 따뜻한 산은 없는 것 같다.
뾰쪽한 끝은 갈고 갈아
둥글게 하늘을 쓰다듬는 산봉
틈만 나면 박치기로 불을 지르는
양남兩南의 칼날을 부드럽게 감싸주는
충청도 사람들의 마음 같지 않느냐.
골골마다 속으로 키워낸
투명한 물소리를 사방으로 내려 보내
세상의 갈증을 씻어내면서
충청도 사람들이 외로울 때
언제 어디서나 부르면
어머니 같고, 누님 같은
계룡산은 그 큰 품을 열어 꼬옥 안아준다.
2017. 7. 14
『대전문학』 2017년 가을호(77호)
글
사금파리
깨어진 것보다 더 아픈 일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 움큼의 그리움만 채워도 흘러 넘쳐서
밤이 되어도
별을 담을 수 없는 것이다.
조각 난 사랑 감쪽같이 붙여보지만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옛날로 돌아갈 수는 없다.
자갈 사이에 묻혀
변하지 않았다고 반짝거려도
닿는 것 모두 베어버릴 날 세운 이 몸으로는
당신 가까이 갈 수는 없다.
2017. 7. 4
2017년 가을호(121호)『문학사랑』
글
아버지
ᄒᆞ나
아버지 제삿날 저녁 생전의 사진 보니
지금의 내 모습이 거울 속에 비춰있네.
평소에 못마땅하던 것도 어찌 저리 닮았을까
2017, 6. 24
둘
불쌍한 사람 보면 그냥 못 지나가서
동장군 유난하던 정유 겨울 늦은 밤에
추위에 떨던 거지를 집안에 들이시니
2017, 7. 2
세
어머니 가슴에서 형님 뺏어 짊어지고
햇볕 고인 양지쪽에 돌무덤 만들고서
남몰래 쏟은 통곡에 도라지꽃 피었다.
2017. 7. 13
네
육이오 끝 무렵 왼손에 총을 맞아
굽은 손 모진 통증 평생을 살면서도
가족을 먹여 살리려 거친 땅을 일구셨지.
2017. 7. 18
다ᄉᆞᆺ
아버지 웃음 속엔 고뇌가 절반이다.
저녁에 돌아와서 환히 웃는 얼굴 뒤엔
세상에 휘둘리다 온 아픔이 녹아있다.
2017, 7. 3
글
고가古家 이야기
그 오래 된 집에
젊은 주인이 들어서면서
오백 년 묵은 향나무는 갈 곳이 없어졌다.
나이테마다 어려 있는 역사의 향기도
세월의 아픔을 감싸 안은 둥치도
톱날 아래 무참히 잘려나갈 운명이 되었다.
새 주인은
옛날 냄새나는 것들 모두 치워버리고
팬지, 데이지, 베고니아로 화사하게 집안을 꾸미겠단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모두 버림받아야 되는 것일까.
향나무 그 옆 꽃밭에 베고니아를 심고
옛날과 지금이 조화롭게 어울리면 안 될까
금방 잘려나갈 줄도 모르고
뒤틀린 손발 끝에 힘차게 새싹을 밀어올리는
향나무를 보며
주인이 바뀔 때마다
하나씩 잘려나가는 옛날의 굵은 줄기들 너머
잔가지처럼 가늘어져만 가는 나라가 떠오르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2017. 5. 17
글
자연법
수달 한 쌍 들랑 달랑
식사를 하고 있다.
극락교 아래 물고기가
한 마리씩 지워진다.
풍경風磬은 아파 우는데
업연業緣 위에 뜬 구름
큰스님 난간에서
허허허 웃고 있다.
불법의 나라에서도
자연법이 우선이지.
나직히 읊조리는 말
나무 아미 타-불
글
그믐달
하늘은
은장도 하나 파랗게 날 세워
무얼 지키고 있나.
지킬 것 하나 없는
지상의 마을
부엉새만 어둠을 운다.
글
봄날
아파트 정원엔 봄꽃이 다 졌는데
태화산 골짜기에 와 보니
봄은 모두 거기에 모여 있었다.
사진에 담아 가 무얼 하려는가.
산은 붓으로 그리지 않아도
마음에 향기로 배어 있는 걸
새 소리 몇 소절에 꽃은 아직 피고 있어서
문득 내 인생의 봄날에
음각으로 도장 찍힌 사람을 생각하며
그냥 산이 되어 보았다.
기다림은
삶의 옷자락에 찍혀지는 무늬 같은 것
비웠다 생각하면 언제나 지우다 만
색연필자국처럼
초록으로 일어서는 당신,
신열처럼 세월의 갈피에
숨어 있다가
고향에 오면 끓어오르는 봄날이여!
글
삼충사三忠祠의 문
궁금하지도 않는가보다
뻐꾸기가 부르는데
굳게 잠겨있는 삼충사 문 밖에서
오월의 연초록 목소리로 두드려 본다.
사람은 바뀌어도 그 자리에 서면
모두가 의자왕이 되더라.
민중들의 목소리는 늘
허공에 흘러가는 바람이더라.
아프고 아픈 것들 철쭉꽃으로
피었다가 지는데
깨져버린 마음처럼
삼충사 문은 열릴 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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