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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5.10 사월
- 2017.05.06 오월
- 2017.05.03 이팝꽃 핀 날 아침
- 2017.04.16 바람에게 2
- 2017.04.11 봄날의 오후
- 2017.04.05 붉은 모자를 쓴 부처님
- 2017.03.16 세월
- 2017.03.10 국민에게 考함
- 2017.02.28 신문 안 보는 이유
- 2017.02.24 슬픔을 태우며
글
사월
태화산 골물소리에 송홧가루 날린다.
뻐꾸기 노래에도 노란 물이 들었네.
술잔에 담아 마시네. 내 영혼을 색칠 하네.
다람쥐 한 마리가 갸웃대며 보는 하늘
무엇이 궁금한가 연초록이 짙어지네.
온종일 앉아있으니 내 손 끝에 잎이 피네.
글
오월
아이들 웃음소리가
이팝꽃을 피우고 있다.
리모델링을 한 거리로
도솔산 뻐꾸기 소리
내려오면
주문呪文처럼 조롱조롱 피어나는
황홀한 예감
오래 닫혀있던 그 사람
마음의 창이 열릴까.
2017, 5, 6
『문학사랑』124호(2018년 여름호)
글
이팝꽃 핀 날 아침
이팝꽃 핀 날 아침엔
당신의 창가에 커튼이 내려져도
서러움이 덜할 것 같다.
가로등 일찍 꺼진 거리에
수많은 꽃잎들이 불을 밝히고
안개처럼 흐르는 향기
도솔산 뻐꾸기 소리 한 모금
커피에 타서 마신다.
온몸으로 번져가는 나른한 행복
하루 종일 바람이 불어
꽃이 다 지지 않는 한
닫혀 진 커튼 더 활짝 열리겠지.
아직 잠들었던 작은 봉오리마다
황홀한 예감들이 깨어나고 있다.
글
바람에게
잎이 피지 않는다고
말하지 말아라.
심어놓고 흔들어대는데
잎 필 겨를이 어디 있으랴.
꽃이 피지 않는다고
눈 흘기지 말아라.
뿌리가 다 말라가는데
꽃 피울 정신이 어디 있으랴.
열매 맺지 않는다고
소리치지 말아라.
꽃도 못 피웠는데
열매 맺을 사랑이 남아 있으랴.
글
봄날의 오후
지난가을 계족산 고갯길에
누군가 낙엽을 모아
큰 하트를 장식해 놓았다.
저마다 화려한 가을의 빛깔들이
사랑의 무늬로 반짝이고 있었다.
겨우내 사나운 바람 다녀간 후
산산이 깨어졌을 사랑의 파편을 생각하며
산길을 올랐다.
땅에 뿌리라도 박은 것일까
옷깃 하나 흩트리지 않은 하트의 품속에
종종종 안겨있는 조그마한 하트들
아, 큰 사랑이
또 다른 작은 사랑들을 낳는구나.
사랑으로 이어진 마음과 마음들이
긴 겨울을 이겨내었구나.
큰 하트를 만든 사람과
작은 새끼들을 안겨준 사람들의 사랑을
벚꽃들 환한 등불 켜고 지켜보는 봄날의 오후….
「대전문학」76호(2017년 여름호)
글
붉은 모자를 쓴 부처님
누군가 빨간 모자 하나
돌부처님 머리 위에 씌워놓고 갔다.
벚꽃이 활활 타오르던 날
나는 부처님과 어깨동무를 했다.
마음속으로 팔랑팔랑
꽃잎이 몇 개 떨어졌다.
견고한 어깨에서 전해지는
이 따스한 전율
목탁 소리도 끊어졌다.
불법을 덮어버린 삐딱한 빨간 모자
나는 부처님과 친구가 되었다.
되나 안 되나 불질러버린 봄 때문에
2017. 4. 5
글
세월
처녀 시절엔 오빠 오빠
결혼 후엔 아빠 아빠
육십 넘자 방귀 뿡뿡
거실에서 속옷 바람
오빠는
사라져버리고
아빠만 남아있다.
2017. 3. 16
글
국민에게 考함
고주배기는
도끼로 힘껏 찍어야
넘어지는 것이 아니다.
제 스스로 안으로 썩고 썩어
마침내 삶의 의욕마저 다 잃었을 때
어린아이의 툭 차는 발길질에도
힘없이 대지 위에 널브러지고 만다.
나라는
외적外敵이 강해서
쓰러지는 것이 아니다.
핏줄끼리 스스로 싸우고 싸워
증오와 갈등으로 곪고 곪았을 때
총 몇 자루만 들고 들어가도
모두 손들고 마는 것이다.
2017. 3. 10
글
신문 안 보는 이유
신문 칸칸마다 오 할은 소설이다.
참신한 허구다 흥미 만점이다
제 엄마 찌찌 본 것도 동네방네 소문낸다.
공정성 정확성은 개에게나 줘버려라
박수 치는 사람이 많으면 장땡이지
촛불에 기대다 보면 특종 하나 건질 걸
나라야 망하던 말 던 무엇이 대수던가
양심의 곁가지에 벌집 하나 지어놓고
솔방울 떨어만 져도 온 벌통 다 달려든다.
글
슬픔을 태우며
엄 기 창
미루나무 그림자가 노을 한 자락 걸치고 있는
금강 변에 서면
품고 온 슬픔이 없는데도 가슴에서 피가 난다.
착한 것도 죄가 되는가!
백제의 산들은 왜 모두 모난 데 없이 둥글기만 해서
적군의 발길 하나 막지 못한 것이냐.
나라 없는 백성들은 질경이처럼 짓밟혀서
꺾여도 꺾여도 옆구리에서 꽃을 피운다.
역사의 속살을 가리려고
바람은
투명한 수면에다 주름을 잡아놓는가.
짠한 눈물 몇 종지 스스로 씻어내며
세월의 골짜기를 흐르는 금강
강변에 불을 피우고
남은 슬픔 몇 단 불 속에 던져 넣는다.
약력
1975년 『시문학』으로 등단. 대전문인협회 부회장
시집 『서울의 천둥』 『가슴에 묻은 이름』 『춤바위』
시조집 『봄날에 기다리다』
<대전문학상> <호승시문학상> <하이트진로문학상> 대상 <정훈문학상> 대상
<대전광역시문화상 문학부문> 수상
시작 노트
나는 ‘백제’라는 이름만 읊조려도 눈물이 난다. 역사 속에서 사라질 때 슬프지 않은 나라가 있겠느냐만 공주나 부여에 가면 유독 슬픈 전설이 많고, 어린 시절부터 그런 전설에 묻혀 자랐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들은 내 얼굴을 보면 백제의 얼굴 표본이라 한다. 둥글둥글 모난 데 없이 원만한 게 서산 마애불이나 석불들의 모습과 닮았단다. 문화재 속에 드러난 백제인의 얼굴들은 모두 더없이 친근감 있고 평화로운 모습인데 왜 백제의 역사는 비극으로 인식되는 걸까. 아마도 3국 중에 제일 먼저 망한 나라가 백제이기 때문일 것이다.
오래전부터 나는 백제에 관한 시를 몇 편 남기고 싶었다. 그래서 맨 첫 번째 쓴 시가 이 ‘슬픔을 태우며’이다. 열 편 쯤 만들어 다음 시집에 펴내고 싶다. 슬픔을 태우고 백제의 전설들을 그들의 얼굴처럼 평안하게 만들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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