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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1.29 매화 연서
- 2018.01.27 백제 금동대향로
- 2018.01.21 기다림의 장미
- 2018.01.13 방포 일몰
- 2018.01.12 환향녀
- 2018.01.06 비닐 편지
- 2018.01.01 새해의 기원
- 2017.12.23 사랑하는 사람에게 시낭송
- 2017.12.17 겨울 허수아비
- 2017.12.16 주례사(김두호 윤희원)
글
매화 연서
눈꽃 위에 달빛 차서 마음이 시린 새벽
매화 분에 일점홍一點紅이 심등心燈에 불을 밝혀
맑은 향 한 방울 찍어 붉은 연서 보낸다.
내 마음 보낸 사연 서랍 가득 쌓였을까
꿈에 간 내 발길에 님의 문턱 닳았으리.
잠결에 매화 향 풍기면 내가 온 줄 아소서.
2018. 1. 29
글
백제 금동대향로
향불은 꺼져있다.
봉황 앞가슴과 악사 상 앞뒤
백제로 통하는 다섯 개의 구멍은 막혀있고,
활짝 피어난 연꽃 봉오리 표면에는
불사조와 사슴, 그리고 학
낯선 전등불 아래 쭈볏거리고 서있다.
용과 봉황이 음양으로 갈라서서
연꽃을 피워내어 봉래산을 받쳐 들고
스물 세 개의 중첩된 산골짜기로
계곡물처럼 속삭이며 흐르던
피리, 소비파, 현금, 북소리 멈춰있다.
역사는 스쳐가는 한 줄기 바람일 뿐이런가.
한 번 흘러가면 되돌아올 줄 모르지만
향로에 향불 피어오르면
봉황이 여의주를 품고 하늘로 날아오르듯
찬란한 백제가 다시 열릴 것만 같다.
2018. 1. 27
글
기다림의 장미
만허재滿虛齋 울타리에 빨간 장미 한 송이가 피어있다. 아직 4월도 중순을 조금 넘겼는데 무슨 사연이 있길래 저리 서둘러 피었을까? 무엇을 기다리느라 목을 길게 빼고 하염없이 집으로 올라오는 고샅을 바라보고 있는 것일까? 처연한 모습이 집 나간 남편을 기다리고 있는 여인과 같다. 나는 장미의 외로운 그림자가 동편으로 길게 늘어질 때까지 꼼짝 않고 바라보고만 있었다.
만허재滿虛齋는 엄기환 화백의 화실이었다. 엄 화백은 먼 친척 아우였는데 무성산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폭포를 이루는 회학리 골짜기에 집을 짓고 거기서 그림을 그렸다. 폭포 위에 나무를 엮어 수간교를 걸치고, 폭포 옆에 황토방을 만들어 정취 그윽한 세상을 꾸며놓았다. 어느 가을날 초대를 받아 그 황토방에서 하루를 유숙留宿한 일이 있는데, 밤새도록 폭포소리가 창문을 두드려 나는 산의 일부가 된 것이나 아닌지 의심이 들게 하였다. 새벽에 이름 모를 새소리가 나를 불러 방문을 열고 수간교에 오르니 마침 떠오르는 아침 햇살에 계곡은 신비로운 자태를 더욱 빛내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시 한 수가 튀어나왔다.
옷깃에 묻어 온 속세의/ 근심 몇 올이/ 아침 햇살에 안개처럼 풀리고 / 힘들여 벗지 않아도/ 때처럼 벗겨진 욕심慾心 말갛게 씻겨/ 풀꽃으로 피어나는 만허재滿虛齋에서 보면/ 저기 보이지 않는/ 허공虛空에/ 무슨 울타리라도 있는 것일까! / 마을에서 산 따라 조금 들어왔을 뿐인데/ 모든 소리들이 걸러지고 닦여져서/ 딴 세상 같은 고요……. // 수간교秀澗橋를 건너다/ 문득 들리지 않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무성산은/ 산의 커다란 마음을 조금씩 녹여/ 만허폭滿虛瀑으로 흘려보내서// 천둥 같은 소리로 노래할 때나/ 가는 한숨으로 잦아들 때나/ 인생의/ 차고 비움도 만허재滿虛齋에 서면/ 폭포 소리에 녹아/ 물안개로 떠돌아라.
정말 여명 무렵 수간교에 서서 잠에서 깨어나는 산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인생의 차고 비움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을에서 산 따라 조금 들어왔을 뿐인데 마치 보이지 않는 허공에 속세와 갈라놓는 울타리라도 있는 듯 욕심마저 말갛게 씻겨 풀꽃으로 피어나고 있었다. 멀리 떠오르는 해를 이고 있는 무성산의 능선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일찍 일어난 아우가 인사를 건네온다.
“형님, 한숨도 못 주무신 모양이네요.”
그렇다. 나는 정말로 밤새도록 한숨도 못 잔 것 같다. 폭포가 부르고, 새소리가 부르고, 풀꽃들이 속삭이는데 어찌 코를 골며 단잠에 빠져들 수 있겠는가.
아우의 그림 중 나는 특히 설경雪景을 그린 그림을 좋아했다. 아우는 기암절벽에 신선이 노니는 관념 산수보다는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진경산수眞景山水를 주로 그렸는데, 그의 설경에서만큼은 관념산수觀念山水의 신비한 멋이 담겨 있었다. 그가 그린 설경을 보고 있노라면 어린아이의 말간 동심을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지곤 했다. 그랬다. 그의 성품 또한 동심처럼 맑고 깨끗했다. 그랬기에 그의 그림 중 설경을 그린 것이 더욱 빛났던 것이 아닐까.
내가 고향에 가서 아우에게 귀향보고를 하면 아우는 만사제폐하고 달려왔다. 우리는 마곡사에 가서 산채를 안주삼아 술을 마셨다. 부모님도 돌아가시고 친구들도 모두 떠난 고향에서 전화만 하면 달려와주는 아우가 바로 내게는 고향이었다. 우리나라의 화단 현실이 각박해서 아우도 젊은 시절엔 고생을 아주 많이 했었는데, 나이 들면서 그림이 알려지고, 대학에 강의도 나가고 해서 형편이 좀 낳아진 편이 되었다.
한 번은 공주에서 전시회를 가진 일이 있었는데, 부시장, 판사, 검사를 비롯한 공주의 모든 유지들이 참석해서 축하해주는 모습을 보고 놀란 일이 있었다. 소탈하고 사교성 있는 성품이 큰 역할을 했겠지마는 그것보다는 그의 실력이 점차 인정받는 증표라 생각되어 아우의 앞날을 기대하게 되었다. 정말 청천벽력 같은 그 일만 없었더라면 아우는 틀림없이 한국 화단에서 가장 빛나는 별이 되었을 것임에 틀림없다.
가을이었다. 아침을 먹고 느긋하게 하루의 할 일을 구상하고 있는데 고향 조카로부터 전화가 왔다.
“작은아버님 놀라지 마세요. 기환이 아저씨 돌아가셨다네요.”
나는 너무 놀라 휴대폰을 툭 떨어뜨렸다. 마음을 진정하고 다시 휴대폰을 들어
“왜? 왜, 왜? 엊그제 점심 같이 먹었는데 별 일 없던데”
사흘 전쯤 제자들 전시회를 시청 갤러리에서 한다기에 y시인과 같이 참석해서 축하해주고 점심을 같이 먹었다. 어디 아픈 데가 있는 모습이 아니었다. 그런데 왜?
“제자들하고 괴산으로 스케치 갔다가 술 취한 채 자기 방으로 갔는데 다음날 낭떠 러지 아래서 발견됐다네요. 죽은 채로”
그제야 완전한 그림이 그려졌다. 제자들 전시회를 마치고 축하 겸 경치 좋은 곳으로 스케치를 갔을 것이다. 저녁에 얼큰하게 술들을 마시고 각자의 방으로 갔을 것이다. 술이 과한 아우는 바람을 쐰다고 밖으로 나갔을 게다. 아우의 방 창문 뒤가 낭떠러지고 그 창문이 부서져 있었단다. 다음날 아침 계곡물에 반쯤 잠긴 채 사망해 있었단다. 나는 아우의 장례식장에 찾아가 소리 내어 울었다. 그놈의 술이 아까운 화가의 죽음을 불러온 것이 아닌가. 그림을 그리다 말고 어디로 갔는가. 아우의 다정한 목소리는 들리지 않고 영정 위의 사진만 빙그레 웃고 있었다.
지난 가을 아우가 산으로 간 뒤 만허재滿虛齋 는 빈집이 되었다. 혼자 사는 장미는 궁금했을 것이다. 그 할아버지가 어디로 갔는지. 왜 집에 돌아오지 않는지. 겨우내 추위 속에서 빈집을 지키던 덩굴장미 한 가지는 4월이 되자 서둘러 울타리 위로 기어올라가 꽃망울을 터뜨렸다. 그리곤 하염없이 목을 길게 빼고 고샅을 바라보고 있다. 바람만 살짝 불어 지푸라기만 날라도 엄 화백 발자국이 아닐까 움찔움찔 놀라고 있다. 이것이 바로 점차 비어가고 있는 우리 대한민국 농촌의 슬픈 현실이 아닐까.
못 견디게 그리운 것인가
서둘러 담 위로 기어 올라와
고갤 길게 내밀고 하염없이 기다리는
저 불타는 갈망
빈 골목길 회오리바람에
검불만 날려도
온몸 떨면서 깜짝깜짝 놀라고 있다.
지난겨울 혼자 살던 할아버지
산으로 가고
대문 굳게 닫힌 울안
빈 집 속의 적막으로 봉오리 부풀려
한 등 눈물로 켜든 저 짙붉은 외로움.
2018. 1. 21
『충청예술문화』2018년 5월호
글
방포 일몰
새빨간 불구슬
누가 박아 놓았을까
스르르 구르다가
반쯤만 걸린 것을
파도가
꿀꺽 삼키고
펄떡펄떡 뛰고 있네.
2018. 1. 13
글
환향녀
소녀가 눈보라 속에 앉아 있다.
청동의 어깨 위에 쌓이는 겨울,
그녀의 삶은 늘 바람 부는 날이었다.
풀 수 없는 옷고름 안쪽에
부끄럼처럼 감춰졌다가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짐승 같은 울음
그녀의 오열嗚咽 속에는 늘 열대의 태양이
핏덩이처럼 거꾸로 떨어지고 있었다.
인조가 삼전도에서 무릎 꿇고 내버린 건
정조貞操였다.
여인들의 절망이 까마귀처럼 날아올랐다.
행복은 호국胡國의 삭풍 속에서 이슬처럼 깨어지고
필리핀 열대우림 지옥에서 돌아왔지만
나는 돌아올 곳이 없었다.
나는 환향녀요, 위안부였다.
가랑잎을 덮은 꿩처럼 몸을 숨겨도
언제나 겨눠지는 손가락 칼날
화냥년 화냥년 화냥년
나를 버린 건 아버지였다. 남자였다.
그리고 조국이었다.
저희들이 살기위해 나를 버리고
삭정이처럼 마른 내 몸에 멸시의 화살을 쏘고 있느냐.
부끄럽지 않은 자 와서 돌로 쳐라.
세상은 눈으로 지워져 적막하고 모든 길들은 막혀있다.
꽃을 놓고 가는 아이도 눈물을 주고 가는 노인도
힘없는 정의보다는 거룩하다.
살아서는 아버지의 딸도 아니고, 조국의 딸도 아니고
그냥 더러운 몸뚱이었던 것을
동상으로 앉혀준 것이 정말 나를 위해서이냐.
파헤칠수록 더욱 붉어지는 상처를 보며
옛날에도 지금도 그냥 조신한 여자이고 싶다.
『시문학』2018년 3월호
『문학사랑』130호(2019년 겨울호)
글
비닐 편지
도시를 탈출하다 첨탑에 꿰인 비닐
무엇을 외치려고 비명처럼 몸 흔드나
땅거미 날개 펴듯이 쏟아지는 검은 종소리
한 집 걸러 한 개씩 십자가는 불 밝혀도
사랑은 말라가고 죄인은 더 많아지나
어둠의 세상 자르려 초승달 칼 하나 떴네.
소음뿐인 도시에 사랑은 죽었더라.
난민인 양 탈출하다 한 조각 꿈 깨어지듯
십자가 못 박힌 채로 늘어지는 비닐봉지.
2018. 1. 6
글
새해의 기원
무술년戊戌年 첫 새벽에 풍등風燈 하나 띄웁니다.
어둠을 뚫어내며 하늘로 올라갑니다.
부상扶桑까지 날아가서
밝고 뜨거운 태양을 불러오십시오.
이 땅의 겨울을
따뜻하게 녹여주십시오.
정유년丁酉年 한 해는 너무도 추웠습니다.
북녘 땅에서 연이어 미사일이 날아가고
인류의 종말을 불러올 폭탄이 덩치를 불렸습니다.
대륙은 사드를 핑계삼아
정치 경제적으로 우리를 압박하고
바다건너에선 이 땅을
전쟁터로 만들겠다고 위협했습니다.
우리끼리라도 하나가 되어야 하는데
촛불과 태극기가 서로 높이를 겨루고
세월호의 망령은 창으로 아직도 민족의 가슴을 찌릅니다.
대통령은 탄핵을 당해 어둠 속에 갇히고
겨레의 결속은
갈가리 찢겨졌습니다.
사랑으로 세워진 나라가 아니라
증오를 부풀려서 빚은 나라입니다.
각 부처部處에는 전문가보다
목소리 큰 사람들이 우글거리고
공신功臣들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기에
신명身命을 바쳐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제는 과거를 단죄하느라 진을 빼기보다
미래의 비전을 제시할 차례입니다.
억새들도 서로의 등을 지키는 것이
혼자 바람을 견디는 것보다 행복하다는 것을 압니다.
미움보다는 용서와 사랑으로 뭉쳐서
어깨동무하고 바람을 헤쳐갑시다.
아직은 어둠이 가시지 않는
무술년 이른 새벽에 풍등을 띄우며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노니
희망 잃은 대한민국에 날개를 주셔서
금빛 날개로 온 하늘을 덮게 하소서.
2018년 1월 1일
『충청문화예술 2018년 1월호』
글
글
겨울 허수아비
빈들에
바람의 살 내음이 가득하다.
하루의 일 다 마치고 황혼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뒷모습 같은 허수아비.
나는 겨울 녘 들풀들의 신음마저
사랑한다.
박제로 남아있는 풀벌레소리들의
침묵도 사랑한다.
황금빛 가을에 이루어야 할 삶의 과제들
모두 마치고
부스러져야 할 땐 부스러지는
저 당당한 퇴임退任
눈부신 정적靜的의 틈을 비집고 들어온
먼 산사 범종소리 들을 깨우면.
수만 개의 번뇌처럼 반짝이는 눈발
눈발 속으로 다 벗은 채
지워지는 허수아비
2017. 12. 17
『시문학』2018년 3월호
『대전문학』82호(2018년 겨울호)
글
주례사
날씨가 몹시 추운데도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신랑 김두호 군과 신부 윤희원양을 축하해주기 위해 참석해주신 하객 여러분 고맙습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자녀의 결혼식을 갖게 된 양가의 부모님께도 축하의 말씀 올립니다.
일본의 시인 고바야시 잇사의 하이쿠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나무 그늘 아래
나비와 함께 앉아있다.
이것도 전생의 인연
한 알의 모래에 온 세상을 다 담아두듯 잇사는 이생과 전생의 인연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태어난 날도, 태어난 장소도, 성장 환경도 전혀 다른 두 사람이 오늘 부부라는 인연으로 함께 묶이게 된 것은 전생에 맺어졌던 수천 겁의 인연 때문입니다. 두 사람은 이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아름답게 키워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두 사람 앞날의 행복이 바로 거기에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여러 가지로 부족한 제가 이 주례를 기꺼이 허락한 것은 저희 부부는 결혼 40년 넘게 아직 부부싸움을 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자식들도 잘 자랐고, 제가 주례를 맡았던 이십여 쌍의 제자들도 모두 아이들 잘 낳고 행복하게 잘들 살고 있습니다. 저는 저의 이런 행운을 사랑하는 김두호 군과 윤희원 양에게 나누어주고 싶었습니다. 훌륭한 교사이며 지혜로운 신랑 신부가 행복한 가정을 잘 꾸려가리라 믿습니다만 노파심에 몇 가지만 당부하고자 합니다.
첫 번째로 신랑 신부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행복을 유지하는 것은 행운만으로 이루어지는 건 아니라는 것입니다. 지금의 뜨거운 사랑을 변치 않고 꾸준히 지켜가는 데 행복의 열쇠가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은 꽃과 같아서 서로 힘을 모아 가꾸지 않으면 시들어버리고 맙니다. 제 ‘부부’라는 시를 보면 “나는 마음의 반을 접어서/아내의 마음 갈피에 끼워 넣고 산다.”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마음의 반을 접어 상대방의 마음 갈피에 끼워 넣고 기쁠 때 같이 기뻐하고 슬플 때 같이 슬퍼해주며 작은 근심도 사전에 포착해서 해결해주는, 반려자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끝까지 변하지 않는 그런 마음이 가정 평화의 씨앗이 된다는 것을 꼭 기억해주기 바랍니다.
두 번째로 드리고 싶은 말은 배우자의 부모 형제를 내 부모 형제처럼 사랑하라는 말입니다. 쉽지 않겠지요. 어느 날 갑자기 맺어진 인연인데 왜 어색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부부싸움의 시초는 상대방 가족에게 섭섭하게 대했다는 곳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누구나 알고 모든 주례사들이 당부하는 말인데도 잘 실천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오늘 신랑 신부는 사랑을 오래 지켜가기 위해서는 신랑은 신부의 가족을, 신부는 신랑의 가족을 자신의 가족처럼 진심으로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가슴 속 깊이 간직해주기 바랍니다.
세 번째로 당부할 말은 자식은 적당하게 낳아 잘 교육시키라는 것입니다. 요즈음 젊은이들은 바쁘다는 이유, 돈이 많이 든다는 이유, 즐기면서 살기만도 부족한 인생이라는 이유를 들어 자식을 낳지 않으려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에 있어서 자식은 꼭 필요합니다. 늙어 의지할 곳 하나 없을 때 자식은 존재한다는 자체만으로도 큰 의지가 됩니다. 자식 교육은 말로 하지 말고 행동으로 모범을 보여 가르치는 현명한 부부가 되기를 바랍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지금의 뜨거운 사랑 변하지 말고, 배우자의 가족을 내 가족 같이 사랑할 것이며, 적당하게 자녀를 낳아 잘 기르는 것이 행복한 결혼 생활을 유지하는 열쇠가 됩니다. 신랑 신부는 주례의 말을 명심하고 실천하여 영원히 복된 삶을 누리기 바랍니다.
또한 이 자리를 함께하시는 하객 여러분께서도 새 출발 하는 이 가정을 지켜봐주시고 미흡할 때는 따뜻한 보살핌이 있기를 부탁드리며, 간단하나마 두서없는 말로 주례사를 대신합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2017년 12월 16일
주례 엄 기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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