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에게 考함

국민에게

 

 

고주배기는

도끼로 힘껏 찍어야

넘어지는 것이 아니다.

제 스스로 안으로 썩고 썩어

마침내 삶의 의욕마저 다 잃었을 때

어린아이의 툭 차는 발길질에도

힘없이 대지 위에 널브러지고 만다.

 

나라는

외적外敵이 강해서

쓰러지는 것이 아니다.

핏줄끼리 스스로 싸우고 싸워

증오와 갈등으로 곪고 곪았을 때

총 몇 자루만 들고 들어가도

모두 손들고 마는 것이다.

 

 

2017. 3. 10

 

posted by 청라

신문 안 보는 이유

신문 안 보는 이유

 

 

신문 칸칸마다 오 할은 소설이다.

참신한 허구다 흥미 만점이다

제 엄마 찌찌 본 것도 동네방네 소문낸다.

 

공정성 정확성은 개에게나 줘버려라

박수 치는 사람이 많으면 장땡이지

촛불에 기대다 보면 특종 하나 건질 걸

 

나라야 망하던 말 던 무엇이 대수던가

양심의 곁가지에 벌집 하나 지어놓고

솔방울 떨어만 져도 온 벌통 다 달려든다.

posted by 청라

슬픔을 태우며

엄기창론 2017. 2. 24. 07:30

슬픔을 태우며

                                      엄 기 창


 

미루나무 그림자가 노을 한 자락 걸치고 있는

금강 변에 서면

품고 온 슬픔이 없는데도 가슴에서 피가 난다.

 

착한 것도 죄가 되는가!

 

백제의 산들은 왜 모두 모난 데 없이 둥글기만 해서

적군의 발길 하나 막지 못한 것이냐.

 

나라 없는 백성들은 질경이처럼 짓밟혀서

꺾여도 꺾여도 옆구리에서 꽃을 피운다.

 

역사의 속살을 가리려고

바람은

투명한 수면에다 주름을 잡아놓는가.

 

짠한 눈물 몇 종지 스스로 씻어내며

세월의 골짜기를 흐르는 금강

 

강변에 불을 피우고

남은 슬픔 몇 단 불 속에 던져 넣는다.


약력 

1975시문학으로 등단. 대전문인협회 부회장

시집 서울의 천둥』 『가슴에 묻은 이름』 『춤바위

시조집 봄날에 기다리다

<대전문학상> <호승시문학상> <하이트진로문학상> 대상 <정훈문학상> 대상

<대전광역시문화상 문학부문> 수상 

 

 

시작 노트

 

나는 백제라는 이름만 읊조려도 눈물이 난다. 역사 속에서 사라질 때 슬프지 않은 나라가 있겠느냐만 공주나 부여에 가면 유독 슬픈 전설이 많고, 어린 시절부터 그런 전설에 묻혀 자랐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들은 내 얼굴을 보면 백제의 얼굴 표본이라 한다. 둥글둥글 모난 데 없이 원만한 게 서산 마애불이나 석불들의 모습과 닮았단다. 문화재 속에 드러난 백제인의 얼굴들은 모두 더없이 친근감 있고 평화로운 모습인데 왜 백제의 역사는 비극으로 인식되는 걸까. 아마도 3국 중에 제일 먼저 망한 나라가 백제이기 때문일 것이다.

오래전부터 나는 백제에 관한 시를 몇 편 남기고 싶었다. 그래서 맨 첫 번째 쓴 시가 이 슬픔을 태우며이다. 열 편 쯤 만들어 다음 시집에 펴내고 싶다. 슬픔을 태우고 백제의 전설들을 그들의 얼굴처럼 평안하게 만들어주고 싶다.

posted by 청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