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선물

동시 2016. 12. 24. 08:38

할아버지 선물

 

 

할아버지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준

상장모음집

파란 파일에 하얀 글씨로

상장모음집’ ‘엄태균

선명하게 쓰여 있어요.

2학년 까지 받은 상장은

달랑 세 개

상장을 넣으며 내 꿈도 함께 심었어요.

6학년이 가기 전

50장짜리 상장모음집을 가득 채워야지.

비싼 게임기 선물보다

파란 꿈을 키우는 상장모음집 정말 좋아요.

posted by 청라

적색경보

적색경보

 

 

할머니 백발 위에 얹힌 호접 핀처럼

낮달이 하나 피뢰침에 꿰어

파르르 떨고 있는 늦가을 오후

바람을 타고 도시를 탈출하다

십자가에 목 잡힌 나의 비닐봉지는

비명처럼 검은 종소리를 토해내고 있다.

사방에서 찍어대는 카메라 소리에

은밀한 비밀들은 낯선 모니터에서

수십 번씩 재생되고

고층건물의 우람한 근육에 막힌 길들은

가닥가닥 끊어져 바람에 펄럭인다.

발자국마다 넘치는 자동차 소리 밟아가면서

으악새 소리로 마중 나온

산의 눈짓을 따라가다 보면

미친 듯 경련하는

플라타너스 마지막 잎새의 불안

내 마음의 신호등엔

반짝 하고 빨간 불이 켜진다.

 

 

2016. 12. 15

심상 20176월호

 

posted by 청라

인연

인연

 

 

아내는 아침 저녁

당약을 꼭꼭 챙겨주면서도

아이들 입맛을 위해

반찬에 물엿과 매실 엑기스를 들이붓는다.

내 건강을 걱정하는 아내의 주름살이

진심임을 안다.

아주 자주 아이들에 대한 사랑 앞에

바람에 날려보내는 플라타너스 잎새라 해도.

하나의 인연은 동아줄이 아니다.

새로운 인연과 만나고 얽히면서

뒤로 밀리기도 하고 가끔은

끊어지기도 하지만

아내의 눈가에 내비치는 아름다운 근심 때문에

나는 오늘도 설탕 투성이의 음식을

불평 없이 먹을 수밖에 없다.

 

 

2016. 12. 10

 

posted by 청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