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사黃砂

시조 2014. 3. 2. 09:46

황사黃砂

 

 

제주에서 날아올라 청주 공항 오며 보니

바다도 산도 마을도 황사에 잠겨 있다.

봄 물기 오른 산하가 딸꾹질을 하고 있다.

 

옛날부터 찾아오던 봄 불청객 고비 황사

대륙의 몸부림에 독기까지 배어 있다.

뻐꾹새 울다 목메어 자지러진 회색 빛 숲.

 

집집마다 창 내리고 앞산도 멀어지고

비질 된 골목처럼 비어가는 반도의 거리

일찍 핀 나뭇잎들만 분 바르고 서 있다.

 

차 한 대 없던 옛날도 편서풍 따라 봄에

서해 건넌 모래 먼지 송화처럼 내렸는데

증명할 방법 있냐고? 후안무치한 놈들!

 

 

2014. 2. 2

posted by 청라

천 년의 미소

시/제3시집-춤바위 2014. 2. 26. 06:29

천 년의 미소微笑


 

불이문不二門 들어서니

사바는 꿈 밖에 멀고

바위에 새겨진 마애불磨崖佛

 햇살 같은 미소,

 

암심巖心으로 질긴 뿌리를 내려

천 년을 깎아내도 웃음은 못 지우고

어깨 팔 떨어진 조각만

세월 흔적 그렸다.

 

그 웃음 퍼내다가

마음에 새겨 두고

잘 적 깰 적 떠올리며 웃는 연습을 한다.

 

오늘도 아픔이 넘쳐나는 거리에

천 년을 지워지지 않는 마애불磨崖佛, 그 미소를

등불처럼 환하게 걸어놓고 싶다.

 

 

2014. 2. 26

posted by 청라

누님의 수틀

시/제3시집-춤바위 2014. 2. 24. 09:54

누님의 수틀

 

 

누님이 두고 간 빈 수틀을

다락방 구석에서

오십 년 지나 찾아냈는데

누님이 수놓았던 꿈밭 머리에

내 꿈도 얼룩처럼 피어있었다. 

봄나물 향기 캐던 골짜기에는

첫사랑의 산수유꽃 벌고 있었고,

모깃불 향기 안개처럼 흐르던 밤

지천으로 반짝이던 개구리 울음은

별이 되려 반딧불로 솟아올랐다. 

누님이 수놓았던 십자수 속에

회재 고개 너머로만 한없이 뻗어가던

그리움의 바람도 불고 있었고,

끼니를 걱정하던 어머니의 눈망울과

몇 방울의 내 눈물 쑥대풀로 키워주던

구성진 소쩍새 울음 깨어나고 있었다.

누님이 두고 간 빈 수틀엔

비어서 더 가득한 내 어린날이

색실보다 더 고운 내 이야기들이

보석처럼 반짝이며 살아나고 있었다.



2014. 1. 24

 

posted by 청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