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리스트
글
맹방 앞바다에서
때로는 삶의 조각들 헝크러진 채
그냥 던져두고
입가에 미소 번지듯 가을이 물들어가는
산맥을 가로질러 와
대양과 마주 설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있는 힘껏 키워 돌진하는
저 바다의 거대한 남성
수만 번 부딪쳐 피워내는 파도 위의 포말
예순네 살 침묵하던 나의 젊음이
용틀임하며 끓어오르는 힘줄을 보았다.
맹방 백사장에서 술에 취해
바다를 향해 오줌을 갈기면
천 년의 수로부인도 부끄러워
구름 뒤에 숨는 희미한 달빛
밤내 아우성치는 원시의
바람을 모아
한 송이 해당화를 피워놓았다,
2014, 10, 13
<대전문학>67호(2015년 봄호)
『시문학』598호(2021년 5월호)
글
돝섬
황금 돼지 끌어앉고
복을 빌지 말자.
돝섬은
복을 받으러 오는 곳이 아니라
가진 것 버리고 버려
마침내 피부 속에 낀 녹까지 다 닦아내고
남쪽 산기슭
대양으로 가는 길목에
허허한 바위가 되기 위해 오는 곳이다.
머리 위에 갈매기
리본처럼 얹은 채로
섬에 뿌리 내리고
자연으로 숨쉬다가 가는 곳이다.
2014, 9. 28
"대전문학' 66호(2014년 겨울)호
글
잠 못 드는 새벽
사십 년 삶의 그림자에
손 흔들고 돌아설 때에
모든 것 다 놓고 온 줄 알았네.
새벽에
문득 잠 깨어
열린 창으로 비치는 달을 보니
웃음 해맑은 아이들
얼굴 따라와 있네.
바람소리인가, 아이들 목소리도 들리네.
다시 잠을 청해도
까르르 까르르
어두운 방 안 가득 피어나는 꽃들
손바닥 맞은 놈들
손 다 나았을까,
무슨 욕심으로 마지막까지 그리 때렸을꼬!
잠 못 드는 새벽에
다시 헤아려보니
다 버리고 온 줄 알았는데
실은 하나도 버리지 못했구나.
2014년 9월 5일
'대전문학' 66호(2014년 겨울호)
RECENT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