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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누님의 수틀
누님이 두고 간 빈 수틀을
다락방 구석에서
오십 년 지나 찾아냈는데
누님이 수놓았던 꿈밭 머리에
내 꿈도 얼룩처럼 피어있었다.
봄나물 향기 캐던 골짜기에는
첫사랑의 산수유꽃 벌고 있었고,
모깃불 향기 안개처럼 흐르던 밤
지천으로 반짝이던 개구리 울음은
별이 되려 반딧불로 솟아올랐다.
누님이 수놓았던 십자수 속에
회재 고개 너머로만 한없이 뻗어가던
그리움의 바람도 불고 있었고,
끼니를 걱정하던 어머니의 눈망울과
몇 방울의 내 눈물 쑥대풀로 키워주던
구성진 소쩍새 울음 깨어나고 있었다.
누님이 두고 간 빈 수틀엔
비어서 더 가득한 내 어린날이
색실보다 더 고운 내 이야기들이
보석처럼 반짝이며 살아나고 있었다.
2014. 1. 24
글
첫사랑
첫사랑은 늘
누런 코 훌쩍이던 일곱 살
코찔찔이 시절에 온다.
삘기를 뽑아도
찔레를 꺾어도
엄마 얼굴보다 먼저 아른거리던
마을 누나의 얼굴은
매운 세월의 바람 속에
덧없이 시들었다가
인생이 저무는 예순 살 무렵
어느 깊은 산사에서 목탁을 두드리는
슬픈 전설을 만나면
아픈 옹이처럼 심박혀
움츠러들었던 그 어린 날 진달래꽃은
불길처럼 피어나
온 산을 물들이라 한다.
모든 것을 빨아먹는
늪인 줄 알면서도
온몸을 던져서 투신하라 한다.
2014. 1. 30
<대전문학> 2014년 봄호(63호)
글
思父 一曲
눈길
아버님 제삿날 저녁 때늦은 春雪로
설화 곱게 피어난 연미 고개 넘으면서
雪花 속 아롱거리는 아버님 모습을 본다.
개학 전날 暴雪로 교통이 두절되어
오십 리 넘는 公州 아들 혼자 가는 길에
마음이 애틋하셔서 따라 나선 아버지.
눈보라 칼바람에 온몸 꽁꽁 얼으셔서
우성 지난 길가에 주저앉아 떠시면서도
내 옷깃 여며주시던 모닥불 빛 그 손길
금강 건너 도심에 한 등 한 등 켜질 무렵
“네 덕분에 먹고 싶던 짜장면 먹는구나”
허기진 젓가락 들어 덜어주던 아버지
이제는 짜장면 천 그릇도 살 수 있네.
짜장면 잡숴주실 아버님이 안 계시네.
춘설은 풍요로워도 구름처럼 허전한 길.
2014. 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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