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시조 2014. 12. 24. 08:14

가정


 열면 안겨오는 

아내의 웃음꽃다발


곤두섰던 털 재우고

바람 묻은 외투를 벗으면


내민 손 반가운 눈빛에서

일어서는 봄 햇살


2014. 12. 24

posted by 청라

대청호 가을

대청호 가을


물빛이 하늘을 닮아

한없이 깊어지는 가을 무렵에

다섯 살 손자 놈 손목을 잡고

대청호 풀숲 길을 걷고 있었다.

생명의 음자리표가

점차로 낮아지는 길모퉁이에서

사마귀 한 마리 마지막 식사를 하려고

두 발로 메뚜기를 움켜쥐고 있었다.

메뚜기 죽는다고

팔짝팔짝 뛰는 손자 곁에서

인과의 어두운 그늘이 고 놈에게 드리울까봐

한참을 망설이고 서 있었다.

"할아버지, 할아버지!"

무서워 지르는 손자의 외마디에

깜짝 놀라 눈을 돌리니

사마귀의 강인한 턱이 메뚜기 머리맡에 다가와 있었다.

자연의 바퀴 속에서 생명은 피고 지지만

업연의 짐을 피하기 위해

눈앞에서 한 생명을 꺼지게 할 수는 없었다.

에라 모르겠다. 손자 놈 어려울 땐 메뚜기 제가 도와주겠지.

손등으로 사마귀 머리를 탁 치니

메뚜기 신나게 풀숲을 뛰어갔다.

메뚜기의 등 뒤로 저녁 햇살이 모여들었다.

어둠이 가장 두꺼운 대청호 깊은 곳, 내 마음밭에는

하늘의 밝은 별이 내려와 반짝이고 있었다.


2014. 12. 19

<시문학> 2015년 2월호

posted by 청라

후회

후회


      엄  기  창


아침노을 붉게 물든

하늘 한 자락 오려다가

어머님 주무시는 아랫목에

깔아드리고 싶어라.

찬바람 눈보라가 문풍지에 매달려서

밤새도록 으르렁대는 겨울밤에도

어머님 이불 속만은 고운 꿈 피어나게.

이순 넘어 깨달으니 너무 늦어버렸어라.

아침마다 노을 곱게 피어도

덮을 사람 아니 계시네.

아프고 서러운 시절 눈물만 보태드리고 

이제 와서 후회한다고 그 시절 다시 오리.


2014. 12. 16

posted by 청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