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房 四季

시조 2008. 11. 27. 22:05

 

山房 四季



(봄)

산 벚꽃 폭죽처럼 터져오는 산기슭을

담채화(淡彩畵) 두어 폭에 담뿍 담아 걸었더니

화향(花香)이 봄 다 가도록 집안 가득 떠도네.


(여름)

베개 밑 골물소리  꿈 자락에 묻어나서

근심 빗질하여 바람 속에 던져두고

기름진 잠결에 취해 여름밤이 짧아라.


(가을)

용소(龍沼)에 가을 달이 집 틀어 누웠기에

병 속에 물과 달을 함께 길어 두었더니

아침에 햇살 비추니 단풍산도 따라왔네.


(겨울)

선계(仙界)에 덮을 것이 무엇이 남았다고

검은 이불 걷힌 아침 하얀 속살 드러낸 산

세상으로 나가는 길이 지워지고 없구나.


2008. 11. 26



 

 

posted by 청라

세월

시조 2008. 11. 14. 23:35

 

세월


가을 마중하러

계룡산도 못 가보았네.


얼룽이는 삶의 무늬

취해서 살다 보니


가로수 

잎 진 가지에

칼바람이 앉아있네.



출퇴근길 은행잎에

가을이 떨어져도


낯익은 풍경이라

세월 자취 모르다가


꿈 깨어

이만큼 와서

눈물 한 모금 삼켜 보네.

posted by 청라

가을 산

시/제3시집-춤바위 2008. 11. 9. 16:51


 

가을 산


불타는 단풍 산으로

노스님이 들어섰다.


산 빛 깨어지지 않고,

회색 승의가

단풍에 녹아든다.


작은 등짐에 담겨온

속세의 눈물들을

산문 앞에 부려 두고,


조금씩 산 속으로

들어갈수록

비우고 비워 산바람이 된다.


바람이 지나가는 길가에

울던 새는

울음을 그치지 않는다.


저녁 어스름으로

지워지는 산들이

스님의 등 쪽으로 빨려들고 있었다.


2008. 11. 9

posted by 청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