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승老僧

시조 2010. 2. 1. 10:21

 

노승老僧



밤새워
독경讀經으로

살금살금 벗겨내어


솔바람 풍경소리

찬 이슬에 재웠다가


부처님 

입가의 미소

동백 冬柏 으로 피웠다.


2010. 2. 1



posted by 청라

동반자

시조 2010. 1. 31. 08:11

 

동반자


아내가 발 틀리면 내가 발을 맞춰주고

내가 발 틀리면 아내가 발 맞춰주고

큰소리 다툼하나 없이 인생길을 걷는다.


아내가 멈춰서면 내가 손을 끌어주고

내가 멈춰서면 아내가 등 밀어주며

힘들면 끌고 밀면서 인생 고개 넘는다.


둘이 하나 되어 마음 맞춰 살다 보면

사랑만도 부족한데 미워할 새 어디 있나.

흥타령 어깨동무로 사는 세상은 늘 봄이네.


2010. 1. 30


posted by 청라

취설吹雪

시/제3시집-춤바위 2010. 1. 21. 11:45

취설吹雪


  마을에서 벗어나 산 쪽으로 올라가는 길가에 섬처럼 조그만 집 하나 있습니다.  비어있는 도화지처럼 온 세상은 눈 덮여 하얗고, 길 끊어진 이웃은 십리보다 멉니다. 눈보라가 파도처럼 넘실거립니다. 울타리가 지워지고, 사립문이 지워지고, 위태롭게 서 있던 작은 집도  붓질 한 번에 지워집니다. 온 세상이 지워진 도화지 위에 등대인가요, 장밋빛 불빛 비친 창문만 화안합니다.


  세월이 머리위에 눈빛으로 앉은 할머니는 저녁 상 위에 모주 한 병을 올려놉니다. 참나무 울타리로 으르렁 으르렁 눈보라가 지나가는데, 상관없지요. 할머니, 할아버지 부딪치는 잔에는 흥이 익어 얼굴은 먹오디 빛입니다. 할아버지는 추억의 갈피 속에서 가장 정다운 콧노래 뽑아내어 흥얼거리고, 할머니의 몸은 조금씩 흔들립니다. 타지로 나간 자식들 목소리 기다리다 수화기 위엔 뿌옇게 먼지가 쌓였지만, 신명이 물오른 할아버지 눈가엔 섬처럼 외로운 외딴집 겨울밤도 할머니 하나 있어 향연饗宴입니다. 세상으로 나가는 길마다 가려주는 취설吹雪도 포근한 수막繡幕입니다.        


2010. 1. 21

posted by 청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