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동

시/제3시집-춤바위 2008. 1. 23. 10:52
 

상대동



재개발  마을 상대동에

사람들은 모두 떠나가고

공회당 마당에서

참새들만 농성하고 있다.


서둘러 떠난

빈 집 화단에는

황매화, 수국 꽃나무

꽃망울들이 여물고 있다.


참새들은 알고 있지.

이 마을엔 봄이 오지 않는다는 걸


 

피멍 든 외침만 각혈처럼 떠올라

노을 진 하늘  속으로 빨려들고 있다.

posted by 청라

유리창을 닦으며

시/제3시집-춤바위 2007. 12. 22. 19:26
 

유리창을 닦으며


아파트 유리창을 닦는다.

골짜기마다 감추고 있는 보문산의 비밀이

가까이 다가온다.


산밑 낮으막한 등성이에서

불꽃을 피워 올려

산벚꽃 연분홍으로 슬금슬금 기어 올라가

온 산을 덮는 봄날의 환희와


비온 날 아침 떡시루를 찌듯

뭉게뭉게 일어나는 골안개로 온 몸을 가렸다가

한 줄기 햇살로 맨살 드러내어

진초록 함성 하늘 향해 이글거리는 여름날의 열정,


늦여름 초록의 밑둥에서 조금씩 배어나와

색색으로 물들였던 산의 간절한 이야기 떨어지고

나무 가지마다 침묵으로 앙상한

저 가을날의 고독


시루봉 이마 하얀 눈으로 덮이고

골짜기로 내려오면서 조금씩 옅어졌다가

어느새 수묵의 함초롬한 자세로 식어있는

겨울날의 허무


유리창을 닦는다.

집안 가득

보문산을 들여놓는다.



2007. 12, 23

 





posted by 청라

귀향

시/제3시집-춤바위 2007. 11. 13. 09:34
 

귀향


휘파람새 울음을 밟고

돌아가네.

저녁노을 깔린 고갯길 굽이돌아

골어스름 안개처럼 내리는 여울 건너

마실갔다 돌아오는 아이처럼 돌아가네.


집집마다 한 등씩 불이 켜지고,

땅거미 따라 내려오는

남가섭암 목탁소리.

산벚꽃 자지러진 향내를 묻히고

사바의 마을을 닦아주는 천수경 한 자락.


장다리골 너머

초승달은 떠오르네.

달빛아래 몸을 떨며 손 내미는

작아진 산들,


도회의 옷들은 한 겹씩 벗으려네

모든 것 다 벗고

빙어처럼 투명해 지려네.


실핏줄까지 드러나는

어릴 적 마음으로

고향의 품속으로 안겨들려네.


posted by 청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