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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학같이 구름같이 자유롭게 사소서
― 南雲 한동묵 교장선생님 정년퇴임을 축하하며
사십 년 넘게 굳굳하게 지켜 오신
내면의 城을 허물고
이제는 자유로운 야학(野鶴)으로
날아오르려는 시간
창밖엔
겨울에 갇혀있던 햇살이
폭죽처럼 터져 빛나고
세월의 빈 자리를 채워 일어서는 초록의 함성들이
파도처럼 넘실거리는 봄날입니다.
뒤돌아보면
아득히 먼 시간의 저편
허물어진 조국의 뜨락에 어린 묘목을 심고
비바람 가슴으로 막으며
눈보라 등으로 막으며
묵묵히 걸어오신 외길,
점점이 찍힌 발자욱마다
핏빛 문신처럼 아픔이 찍혀 있고
아픔의 껍질을 벗길 때마다
삽질 소리 망치 소리로
조국의 오늘을 일으켜 세운
님의 곧은 심지가 반짝입니다.
이제
한평생 달려오신 인연의 줄을 끊고
떠나시는 뒷모습이 아름다워
비오니
학같이 구름같이 자유롭게 사소서.
글
큰 탑(塔)을 세우소서
― 冬初 조재훈 선생님 회갑을 축하하며
江 가에 서 계실 때, 당신은
강물이었습니다.
낮은 곳으로 흘러가는 물의 말씀으로
어린 제자들 목마른 곳 촉촉이 적셔주는
당신은 강물이었습니다.
山 곁에 서 계실 때
당신은 큰 산이었습니다.
높은 곳을 향하여 솟는 산의 말씀으로
용기를 잃을 때마다 묵묵히 지켜주는
당신은 큰 산이었습니다.
우리가 바람이 되어 품을 떠났어도
사방으로 귀를 열어두시고
작은 보람에 박수쳐 주시고
슬픈 일에도 눈물 나눠주셔서
당신이 계신 공주는 언제나 고향입니다.
곱게 접혀가는 세월의 그림자마다
반짝이며 살아 오르는
당신의 모습을 우러러 보며
제자들 위해 사신 삶의 나무에
태풍이 불어도 무너지지 않을
따뜻한 그 사랑 녹여 더 큰 塔을 세우소서.
글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관음암 돌아 내려오는 토담집 울타리에서
가지 찢긴 채 시들어가는
무궁화나무 한 가지를 보았다.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어디에도 무궁화 보이지 않고
보문산 길 따라 안개처럼
넘실거리는 벚꽃.
눈을 돌리면
산자락마다 불타는 진달래꽃
젊은이들 가슴 속으로 번져 가는데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에
무궁화나무 한 가지 마음 놓고 발 뻗을
손수건만한 땅 하나 없는 것일까
연분홍 꽃잎 하나 깃발처럼 가슴에 꽂고
눈물짓던 사람들 떠난 빈 자리엔 이제
네 그림자 담고 사는 사람은 없다.
알고 있을까
봄은 익어 저만큼 달려가는데
진달래, 벚꽃, 매화가지 사이에 끼어
꽃눈 하나 틔워보지 못한 무궁화의 눈물을.
보문산 끝자락
관음암 올라가는 토담집 응달에서
아직도 봄을 기다리며 덜덜 떨고 있는
무궁화 한 그루를 보았다.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에
달랑 혼자 서서 시들어가는
무궁화나무 한 그루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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