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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똥을 묻으며
똥을 덮는다.
낙엽을 긁어모아
내 삶의 부끄러움을 덮는다.
아무리 묻고 묻어도
지워지지 않는 냄새처럼
묻을수록 더욱 살아나는
지난 세월의 허물들
이순의 마을 가까이엔
담장을 낮추어야 한다.
감추는 것이 없어야 한다.
무더기 큰 똥일수록
햇살 아래 드러내어
바삭바삭 말려주어야 한다.
글
상대동
재개발 마을 상대동에
사람들은 모두 떠나가고
공회당 마당에서
참새들만 농성하고 있다.
서둘러 떠난
빈 집 화단에는
황매화, 수국 꽃나무
꽃망울들이 여물고 있다.
참새들은 알고 있지.
이 마을엔 봄이 오지 않는다는 걸
피멍 든 외침만 각혈처럼 떠올라
노을 진 하늘 속으로 빨려들고 있다.
글
유리창을 닦으며
아파트 유리창을 닦는다.
골짜기마다 감추고 있는 보문산의 비밀이
가까이 다가온다.
산밑 낮으막한 등성이에서
불꽃을 피워 올려
산벚꽃 연분홍으로 슬금슬금 기어 올라가
온 산을 덮는 봄날의 환희와
비온 날 아침 떡시루를 찌듯
뭉게뭉게 일어나는 골안개로 온 몸을 가렸다가
한 줄기 햇살로 맨살 드러내어
진초록 함성 하늘 향해 이글거리는 여름날의 열정,
늦여름 초록의 밑둥에서 조금씩 배어나와
색색으로 물들였던 산의 간절한 이야기 떨어지고
나무 가지마다 침묵으로 앙상한
저 가을날의 고독
시루봉 이마 하얀 눈으로 덮이고
골짜기로 내려오면서 조금씩 옅어졌다가
어느새 수묵의 함초롬한 자세로 식어있는
겨울날의 허무
유리창을 닦는다.
집안 가득
보문산을 들여놓는다.
2007. 1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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