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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큰 탑(塔)을 세우소서
― 冬初 조재훈 선생님 회갑을 축하하며
江 가에 서 계실 때, 당신은
강물이었습니다.
낮은 곳으로 흘러가는 물의 말씀으로
어린 제자들 목마른 곳 촉촉이 적셔주는
당신은 강물이었습니다.
山 곁에 서 계실 때
당신은 큰 산이었습니다.
높은 곳을 향하여 솟는 산의 말씀으로
용기를 잃을 때마다 묵묵히 지켜주는
당신은 큰 산이었습니다.
우리가 바람이 되어 품을 떠났어도
사방으로 귀를 열어두시고
작은 보람에 박수쳐 주시고
슬픈 일에도 눈물 나눠주셔서
당신이 계신 공주는 언제나 고향입니다.
곱게 접혀가는 세월의 그림자마다
반짝이며 살아 오르는
당신의 모습을 우러러 보며
제자들 위해 사신 삶의 나무에
태풍이 불어도 무너지지 않을
따뜻한 그 사랑 녹여 더 큰 塔을 세우소서.
글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관음암 돌아 내려오는 토담집 울타리에서
가지 찢긴 채 시들어가는
무궁화나무 한 가지를 보았다.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어디에도 무궁화 보이지 않고
보문산 길 따라 안개처럼
넘실거리는 벚꽃.
눈을 돌리면
산자락마다 불타는 진달래꽃
젊은이들 가슴 속으로 번져 가는데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에
무궁화나무 한 가지 마음 놓고 발 뻗을
손수건만한 땅 하나 없는 것일까
연분홍 꽃잎 하나 깃발처럼 가슴에 꽂고
눈물짓던 사람들 떠난 빈 자리엔 이제
네 그림자 담고 사는 사람은 없다.
알고 있을까
봄은 익어 저만큼 달려가는데
진달래, 벚꽃, 매화가지 사이에 끼어
꽃눈 하나 틔워보지 못한 무궁화의 눈물을.
보문산 끝자락
관음암 올라가는 토담집 응달에서
아직도 봄을 기다리며 덜덜 떨고 있는
무궁화 한 그루를 보았다.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에
달랑 혼자 서서 시들어가는
무궁화나무 한 그루를 보았다.
글
제4부
세월의 그림자
우리가
흘러가는 세월의 갈피 속에
아름다운 일들만 심을 수 있다면
세월의 그림자지는 삶의 일상 속에
낙락장송처럼 당당할 수 있으리.
일월
일어서는 것들은 모두
세월의 앞자리에 모여 있다.
새해의 아침을
까치 소리가 열고 있다.
지난 봄 꽃을 피우지 못했던 매화나무 가지마다
방울방울 매화의 꿈이 부풀고
열매를 맺지 못했던 나무들의 혈관 속에서
작은 함성이 고동치고 있다.
땅 밑에 귀 기울이고
들리지 않는 소리를 듣는
사람들은 볼 것이다.
아직도 굳건한 어둠의 어깨 위에서도
연초록 새싹이 함성으로 일어나는 것을.
함성들의 몸짓이
바람의 한 쪽부터 무너뜨리고
조용히 햇살을 불러오는 것을.
말갛게 씻겨지는 동편 하늘이
사람들의 꿈밭마다 향기로 내려앉으면
일월은
봄이 오는 길목을 열고
우리들의 가슴 깊이 불 지필 준비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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