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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여백
벽을 비워 놓았더니
산이 들어와 앉아 있다.
꽃향기
골물 소리
집안 가득 피어난다.
채우고 채워진 세상
하나 비워 얻은 평화…….
글
갑천 붕어
아파트 그림자를 산 그림자로 알고
꿈 찾아 올라온
갑천 붕어 한 마리
가도 가도 물은 맑아지지 않고
검은 폐수만 흘러내려
앞길은 깜깜하게 막혀 있었다.
비누 거품 속에서 바라보면
삶은 허허로운 거품 같은 것
붕어의 눈물 속에서
납물이 흘러내렸다.
등뼈 굽은 새끼를 안 낳으려고
붕어는 자갈밭으로 뛰어오르고 있었다.
글
도시의 소나무
찢어진 살갗에서
중금속 피가 흘렀다.
머리를 빗으면
오존 비듬이 떨어졌다.
푸르던 그 머릿결에
노릇노릇 돋는 몸살.
푸른 산 바라보며
솔바람 불러 봐도
구름처럼 일어나는
회색 안개뿐이구나.
아무리 손을 뻗어도
멀어지는 산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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