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보기

 

세상 보기

꽃도

꽃의 마음으로 보아야 아름답다.


황홀한 몸짓의 장막 뒤엔

말라 시들은 노래도 있겠지


꽃잎을 먹고사는 어둠의 벌레들이

고랑처럼 파 놓은

상처들도 있겠지.


날 선 눈으로 바라보면

아름다운 것이 어디 있으랴


아름다운 눈으로 보아야

세상은 아름답다.

posted by 청라

사자(死者)들의 외침

 

사자(死者)들의 외침

― 현충원에서

사월이면 묘역마다 피어나는 영산홍 꽃

이름 모를 들풀 아래 아지랑이로 스러진 영혼

한 서린 땅울림으로 방울방울 맺혔다.


목숨 바쳐 지킨 자유 거리마다 넘쳐나서

아들딸아 모르느냐 피멍울 진 저 외침이

영산홍 꽃 더 짓붉게 피워내는 의미를.

posted by 청라

늦가을 저녁

 

늦가을 저녁

가로수들이 옷을 벗는다.

드러난 알몸들이

빗물에 젖는다.


오래 숨겨 두었던 진실이

앙상하게 바람을 맞는

저녁이 되면


나도 이름을 벗고

생활을 털고

어디 멀리로 떠나가고 싶다.


산사의 창 너머로

낙엽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 들으며

차를 마시기도 하고


갈매기 소리 파도에 씻기는

이름 모를 항구에

정박하고도 싶다.

비상하려다

늘 주저앉는 프라타너스 이파리처럼

내 소망의 날개도 떨어져 수없이 밟히는 저녁…….

posted by 청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