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숲 속에서


대숲 속에서

 

淸羅 嚴基昌

세상에서 깨어진 바람으로

대숲으로 와

초록빛 대바람에 살을 섞는다.

藥水처럼 몇 모금

새어 내리는 하늘을 마시고

대나무의 곧은 음성으로 일어선다.

산 뻐국새 울음소리에

아픈 마음 아픈 살 도려내고

세상으로 다시 돌아가야지

대바람소리 앞세우고 가

거리의 모든 어둠을 쓸어 내리라.

밖으로 나가는 통로마다

둥글게 빛이 集中해 오고

빛을 통해서 바라보는 먼 마을엔

남기고 온

사랑하는 사람들.

대나무 뿌리에서 몸을 세운 나의 천둥은

한 올씩 한 올씩 빗질되어 가라앉고

나는

다시 초록빛 갈기 휘날리는 바람

맨발로 맨발로 대밭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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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회의 나무


도회의 나무

淸羅 嚴基昌
옥상 위에는
헐벗은 마음을 달래려는
화단이 하나 있고
고향을 잃은 나무들이
창백한 낯으로 졸고 있다.
용암이 끓는 지열 대신에
늘 싸늘한 콘크리트
절망을 딛고 서서
땡감빛 햇살만 넝마처럼 걸치고
발 하나 마음대로 뻗지 못하는
토박한 발아래 저 밑 세상엔
사랑을 모르는 사람들이
질경이처럼 모여 살고 있다.
기다림이 있는데, 화단엔
까치 울음 한 파람 반짝이지 않고
어쩌다 길 잘못든
멧새 한 마리
빌딩 너머 먼 산만 바라보며 나직이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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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樂地 저녁 풍경


行樂地 저녁 풍경

淸羅 嚴基昌
어린애 울음에
꽃이 지고 있었다
꽃이 진 빈 자리를
어둠이 채우고 있었다.
술취한 사람들은 어둠에 쫓겨
무심히 지나가는 빈 바람이었다.
바람의 뒤꿈치를
아이의 울음이 악쓰며 따라가고 있었다.
아이의 붉은 울음에 산이 떨었다.
금간 어둠 사이로
초승달이 삐굼이 떠올라
목쉰 아이 눈물 혼자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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