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염불


공염불

淸羅 嚴基昌
염불 속에도
쇳소리가 담겨 있다.
아침의 평화가
염불소리에 깨어진다
깜짝 놀라 일어난
산 다람쥐 눈빛 속에
바람이 담겨 있고,
선잠 깬 보라매의 날개 아래서
산이 푸르르 떨고 있다.
마이크를 통해
밖으로 밖으로 두드리는 목탁소리에
이른 등산객 하나
고개를 끄덕이지만
나무들도 풀꽃들도 고갤 돌리고
눈앞의 부처님 입술 끝에는
한 줄기 아침 햇살도 걸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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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역 광장에서


대전역 광장에서

淸羅 嚴基昌
핏빛 놀 속에서 비둘기가 튀어 나와
헛되이 선회하는
대전역 광장
어둠 속에서 목소리가 묻혀 가고
누구의 외침이 등불로 설까
초겨울 화단에
국화꽃만 지고 있다.
사람들은 모두 어깨동무하고
고삐 풀린 바람이 되어
거리를 질주하고
나는 빈 마음 빈 속으로 서서
손이 따뜻한 사람을 찾아 악수를 하고 싶다.
우리 둘이 맞잡은 손 끝에
이는 불꽃은
초봄 꽃보다 고운
연초록 움 티우는 따사한 햇살이어야지
산을 사르고 꿈을 사르고
우리들의 소중한 삼천리를 불태우는
미친 불길이 되어서는 안되지.


posted by 청라

가을 매미


가을 매미

淸羅 嚴基昌
매―애앰 매―애앰
매미가 울고 있다.
노래를 부르기만도 아까운
짧은 생애인데
매미의 목숨이 눈물로 녹고 있다.

빨판 속엔 매케한 수액의 묻어 나고
돌팔매에 잘린 더듬이
끝으로
회색빛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

갈갈이 찢긴 고향의 밑동 아래
믿음의 알을 낳아야지
숲속의 나무들이 팔 뻗어
서로의 마음으로 기대어 살듯
매운 맛에 얼먹은 몸 속의 아기는
눈시린 하늘 아래 나래 펴고
노래하게 해야지.

매미의 꿈속에서
최루탄이 터지고, 화염병이 날고,
질기게 잡고 있던 다리
진실의 한 끝이 유리처럼 부서지고

맴맴맴맴맴맴맴
매미가 소스라쳐 날아가고 있다.
노랗게 시든 플라타너스잎
고향을 떠나기엔 다 놎은 철에
매미는 탄환처럼 날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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