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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눈오는 밤에
세상을 지우며
눈이 내린다.
우리들이 걸어 온
발자욱을 덮는다
어지러운 불빛들도 차분히 가라앉고
포장마차엔
어둠이 반쯤 찬 술잔이 하나
술잔 속에 잠겨 있는 얼굴이 하나
술맛처럼 타오르는 옛날을 마시며
창밖을 보면
그믐의 막막한 어둠바다로
한 조각씩 별이 부서져 내린다.
하얗게 덮힐수록 내가슴 속에
솔잎처럼 파랗게 살아나는
그리움을 묻으라고
눈이 내린다.
글
10월 마지막 날
바람부는 날 단풍잎은
높은 음성으로 떨어진다
어느새 지나가버린 인생의 여백이
꽃물로 물들어 추락하고 있다.
은적암 산문을 들어서면
아직도 가을이 남아 있다.
고개 숙이다 만 국화꽃 사이
열 여덟 가을에
산그림자 속으로 숨은 사람
마음속 빈 들판에
언제나 피어 있는 나의 신부여
속세의 옷고름 아직 풀지 않았다기에
갈바람 갈피에 끼어 찾아 왔더니
목탁 소리 사이에 숨어 보이지 않는 사람
부처님 말씀 뒤로 숨어
보이지 않는 사람
염불 가루 먼저 내리는 곳에
아픔의 잎새는 더 곱게 물드는가
청춘의 그림자 보러 왔다가
빈 산만 보고 가는 불혹의 내 발길에
겨울로 넘어가는 달력 한 장처럼
서걱이며 쌓이는 이 진한 허무여
-시작노트-
나는 초등학교 시절 마을 누나를 좋아한 일이 있다. 중학교 다닐 때쯤 그 누나가 마을에서 사라져서 어른들께 사연을 물었더니 중이 되려고 산으로 들어갔다고 하였다. 늘 보고싶고 그리운 마음을 가슴 속에 품고 살았는데, 대학교 3학년 때인가 동학사에서 우연히 만났다. 어린 시절의 즐거웠던 이야기를 하다가 일행들이 기다려서 바로 헤어졌다. 이년 후인가 다시 동학사엘 들렸더니 그 누나 스님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었다. 40이 좀 넘어 어느 암자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갔더니 그 누님은 속에의 모든 일을 잊고, 정말로 속세의 번뇌를 초월한 스님이 되어있었다. 홀로 돌아오며 섭섭한 심경을 노래한 시다. 그 날이 바로 시월 30일 이었다.
글
사랑하는 사람에게
늘 따뜻한 마음이 내비치는
그대 눈빛의 양지쪽 풀밭에 누우면
바람 소리 맑은 고향의
해바라기꽃이 생각나고
해바라기꽃 대궁 따라 끝없이 맴도는
나는 언제까지나
꿈 많은 술래이고 싶다.
잡힐 듯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고추잠자리 좇다가
허 허 웃는 풀꽃으로 서 있으면
바람은
붉은 보자기 펼쳐 놓은 하늘 한 자락 찢어다가
체온이 먼저 식는
발끝 어디쯤 싸매 주고
단절의 끈 한켠에서
간절한 송신을 띄우고 있다.
아삼한 봄 들판의 아지랑이처럼
몽롱한 그대의 언어
등불처럼만 바라보며
가끔은 내가 던진 웃음이
쓸쓸한 어둠이 되어 돌아와도
나는
어둠을 까서 빛을 만들고
그대의 새벽 꿈밭에 빛의 소리를 전해주는
부리 고운 까치로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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