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문산에서


보문산에서

淸羅 嚴基昌
도심 쪽으로 등돌리고 앉은
보문산을 오른다.
초록빛 산꿩 소리로 눈 씻고
내려다 보면
서리맞은 고춧잎처럼 시들은
일요일 아침
몽롱히 풀린 도시
케이블카는 하루종일 바쁘게
솔바람 소리를 싣고 내려가지만
검은 연기 내뿜는
청운장 굴뚝 위에서
늦가을 나비모양 파닥이고 있다.
오늘 마시는 한 모금의 약수로
내일 아침 중앙로에서 몇 송이
싱싱한 웃음을 피워 내리라
산나리 꽃빛이 졸리운 시간......
posted by 청라

행군


행군

淸羅 嚴基昌
산 하나 넘으면
막사의 불빛이 보일지도 모른다.
어둠 속에서 길은
가도가도 낯설고
눈발에 가로막힌 별 하나만
절둑거리며 절둑거리며 따라 오는
집집마다 닫아 건 창가엔
회색빛 겨울
창날같이 개짖는 소리
길은 길로 이어져 끝이 없네.
산 하나만 더 넘으면
막사의 불빛이 보일 지도 모른다.
posted by 청라

사비가


사비가

淸羅 嚴基昌
낙화암 절벽 위엔 다홍빛
진달래꽃
천년으로 이어진 접동새 울음

달 밴 강물 속에
손짓이 있고
꽃잎은 한 잎씩 몸을 던진다.

백제도 신라도 아닌데
사비수 물소리는
젖어 흘러서,

접동새야!
올봄엔 떡갈잎 수풀 속에
소리 맑은 새끼새 알을 낳거라.
posted by 청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