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앗긴 웃음

수필/교단일기 2007. 4. 4. 09:00

<교단일기>

빼앗긴 웃음

淸羅 嚴基昌
  "선생님 저 어쩌면 좋아요? 정말 미치겠어요.”

 마지막 모의고사를 마치고 자가 채점표를 걷어 교무실로 들어서자, 만섭이가 황급히 따라와 죽는 표정으로 호들갑을 떤다. 모의고사를 볼 때마다 늘상 있는 일이지만, 만섭이가 어두운 얼굴이 될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

 만섭이는 2학년 때까지 학급의 반장을 했고 성품도 쾌활했던 아이였다. 그러던 것이 3학년에 올라오자마자 어머님의 부탁으로 반장을 출마하지 않았고, 반장이 되지 못했다는 허전한 마음속에 치렀던 첫 모의고사에서 형편없는 성적이 나오자 모든 마음의 여유가 사라져 버렸다. 행여나 하고 기대했던 두 번째 모의고사마저 실패하자 얼굴에 그늘이 들어앉기 시작했다.

 “야 임마. 네 선배들도 다 실패를 딛고 컸어. 사내놈이 죽는 얼굴하고는. 너를 믿어. 자신감만 얻으면 넌 누구보다 잘 할 수 있어.”

 나의 이런 격려도 세 번 네 번 모의고사를 실패하자 약발이 떨어졌다. 이렇게 슬럼프에 빠졌던 학생이 그곳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어떤 계기가 필요한데, 만섭이에게는 그 길이 보이지 않았다. 성적은 갈수록 떨어지고, 얼굴은 자꾸만 우울해지고. 그 때부터 만섭이의 방황이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학교 자습을 빠지고 독서실에 가서 공부해 보겠다고 했다. 지금까지 내 교직 경험들을 총동원한 어떤 설득도 소용이 없었다. 한 달 독서실에서 공부한 후 치른 시험 성적은 오히려 형편없이 떨어졌다. 이번에는 여름방학 특기적성 수업을 빠지고 지리산 기숙학원에 가서 한 달간 공부해보겠다고 했다. 성적이 오르기를 기대하기보다는 맑은 공기를 마시며 얼굴의 그늘이나 걷고 오라고 허락했더니, 조금쯤 밝아졌던 얼굴이 2학기 첫 모의고사에서 실패하자 완전한 낙담으로 변해버렸다. 그때부터 자격지심이 이상한 방향으로 발전하여 친구들이 자기를 무시한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만섭이의 의식은 작아져서 작아져서 완전한 난쟁이가 되어버렸다. 현실을 도피하기 위해 굴뚝 위에서 달나라를 향해 공을 쏘아 올리는 난쟁이처럼 극복하려는 의지를 갖기 보다 자꾸만 도망하려고 하였다.

“만섭아, 결과는 하늘에 맡기고 시험에 최선을 다하자. 네가 노력한 만큼 나오는 그 성적으로 만족하기로 하자.”

 이렇게 밖에 말할 수 없는 내 무능이 정말 싫다. 잎도 피지 않은 초3월 3학년에 올라와서 잎이 피고, 녹음이 우거지고, 다시 단풍으로 물들었다 떨어져도 계절의 변화를 느끼지 못하고 오직 한 길만을 바라보고 달려온 우리 아이들. 피 끓는 청춘을 교실에 가둬두고 그 어떤 유혹에도 초연하며 구도자 같은 금욕의 생활로 보낸 1년.

 수학능력시험이 며칠 남지 않았다. 11월 5일 저녁, 우리 아이들과 만섭이의 얼굴에 빼앗겼던 환한 웃음이 활짝 피어나는 모습을 보았으면 좋겠다.

posted by 청라

거짓말

수필/교단일기 2007. 4. 3. 09:00

<교단일기>

거 짓 말

淸羅 嚴基昌
 ‘오늘은 우리 아이들에게 한 마디의 꾸중도 하지 말아야지. 칭찬을 하면서 어깨를 두드려 주어야지.’ 매일 아침 눈을 뜨고 내 자신의 마음속을 들여다보며 결심을 한다. 그러나 오늘도 나는 그 결심을 어기고 말았다.

 추석 다음날이라 학교로 향하는 거리는 한산했다. 세상을 가리고 싶은 안개만이 자욱하게 깔려 있었다. 이런 날은 자습이고 뭐고 만사가 귀찮으리라. 한창 기운이 솟을 나이에 앉기만 하면 꾸벅꾸벅 조는 아이들을 생각하며, 연휴 중에도 등교해야만 하는 우리 아이들이 가엾게 생각되었다.

 학교로 들어서는데 안개 속에서 혁이가 가방을 메고 교문을 나서서 집 쪽으로 가고 있었다. 어라, 저 놈 왜 집으로 가지? 어디 몸이 아픈가? 나는 마음속으로 걱정을 하였다. 워낙 건강이 좋지 않은 아이라 추석에 제사를 지낸다고 무리를 하였으리라 생각했다.
 
 자습 시작종이 울리고 출석 체크를 하기 위해 교실로 갔다. 다른 날보다 빈자리가 많았다. 혁이의 자리도 비어 있었다. 출석 체크 후에 자리를 비운 아이들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물어야지. 중간고사가 얼마 안 남았는데 웬만하면 등교하여 자습을 하라고 권해야지.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복도를 걷고 있는데 핸드폰 벨이 울렸다.

 “선생님, 저 혁인데요. 여기 시골이걸랑요. 오늘 아침 출발하는데 한 두어 시간 늦을 것 같아요.”

 참으로 능청스런 거짓말이었다.  아마 아침에 교문을 나오는 모습을 보지 않았다면 깜빡 속고 말았으리라.

 “거기 시골 어딘데? 오늘 아홉 시까지 나오라고 했잖아.”

 “ 저도 일찍 오려고 했는데요. 엄마가 아파서 못 일어나서 늦어졌어요.”

 멀쩡한 어머님까지 아주 환자로 만들고 있었다. 좀 더 놀아줄려고 하다가 나도 모르게 열이 뻗쳐 버럭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야 임마. 너 빨리 못 와. 아침에 교문 밖으로 나가는걸 보았는데 언제 벌써 시골에 갔어? 잔말 말고 빨리 와. 오는 대로 나한테 들려.”

 8분쯤 후 혁이가 헐레벌떡 달려왔다. 얼굴이 사색이 다 되었다. 죄송한 마음을 얼굴 가득 떠올리면서도 제 2탄 거짓말을 잊지 않았다.

 “선생님, 책을 가질러 갔었는데요, 배가 막 아파서 잠깐 누웠는데요, 깜빡 잠이 들었지 뭐예요. 그래서 그만……”

 나는 헛웃음이 나오는 것을 참고 근엄한 표정으로

 “엎드려 뻗쳐”

 기어이 종아리 몇 대를 때리고 말았다. 아침에 굳게굳게 맹세한 결심은 또 허무하게 무너지고 말았다. 어른들 사회가 거짓말이 만연된 사회인데 아이들에게만 정직하라고 권할 수만은 없겠지만 그래도 나는 아이들이 좀 더 의연했으면 좋겠다. 맑은 샘물이 되어 혼탁한 이 사회를 조금씩 조금씩 정화시켰으면 좋겠다. 아이들마저 혼탁하다면 우리의 미래는 너무 암담하지 않은가.
 하루를 닫으며 하는 고백이지만, 늘 엄격함으로 포장된 내 마음속에서 아직까지 너희들이 밉지는 않다.

posted by 청라

빈집

시/제3시집-춤바위 2007. 4. 2. 09:00

빈집

淸羅 嚴基昌
지난 가을 사립문 닫힌 뒤에
다시는 열리지 않는
산 밑 기와집

겨우내
목말랐던
한 모금 햇살에
살구꽃만 저 혼자 자지러졌다.

노인 하나 산으로 가면
집 하나 비고
집 하나 빌 때마다
논밭이 묵고

아이들 웃음소리
사라진 골목마다
농성하듯 손들고 일어서는
무성한 풀들

저 넓은 논밭은 이제 누가 가꾸나.

posted by 청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