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터에서


화장터에서

淸羅 嚴基昌
까마귀 떼들이 요령 소리로
솟아오른다.
탱자나무 울타리 가시들이
반역의 창날을 세워
무심한 황혼을 꿰고 있다.
막차도 끊어지고
여기는
구구새 우는 소리만 들리는 세상
무너진 것은 무너진대로
어둠의 저편 나라에 빛난다지만
喪杖처럼 늘어선 대숲을 보며
우리는 쓸쓸하게
꺾인 이름의 생애에 꽃을 뿌린다.
반딧불들이 어둠의 옷고름을 풀면
한 이름은 불타서 달맞이꽃이 되고
달맞이꽃은 시들어
어둠이 된다.
posted by 청라

고향


고향

淸羅 嚴基昌
스산한 가슴이다.
이지러진 조각달처럼
아무도 안아줄 수 없는 고향

섣달 그믐 북녘 바람을 타고
기러기, 기러기,
기러기 떼들이 오고 있다.

가방마다 가득 담아온
도시의 불꽃으로
오늘 저녁 노인들의 창가엔
감빛 꿈이 밝혀질까

굳게 닫아 건 빗장을 풀고
가슴 깊이 묻어둔
고향의 마음을 열까

빈들을 지키고 있는
허수아비의 기도만
저무는 눈발에 덮여 가고 있다.
posted by 청라

고향


고향

淸羅 嚴基昌
나무들마다 걸치고 있던
옷을 벗으면
더욱 앙상한 마을,

날선 하늘을 이고 있는
홍시감 하나
위태롭게 고향을 지키고 있다.

내리는 사람보다
타는 사람이 많은
버스가 섰다가 동구 밖 돌아가면

풀벌레들은 높은음자리표로
높은음자리표로 울어
빈 골목을 채우고,

저녁 연기 시들은 함석 지붕마다
봉숭아 꽃물처럼 황혼이 번지고 있는

아이들아!
불러도 대답없는
고향은 지금 비어 있다.
posted by 청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