錦江 가에서


錦江 가에서

淸羅 嚴基昌
가을 강가에 나가서
눈물로 찌들은 옷을 벗자.
푸른 함성으로 달려가는 강물로
눈을 씻고 귀를 씻자.
가장 아름다운 것만 보이게
가장 아름다운 것만 들리게...
씼고 또 씻어
놀빛에 널어 말리면
江은
신선한 음악처럼
山의 마음을 물어 날라서
엊그제 구천동 계곡에서
빗물에 말아 던진 휘파람새 울음소리가
오늘저녁 강물을 보는 내 가슴에 와서
등돌린 친구에게
손을 내밀라 한다.
posted by 청라

공염불


공염불

淸羅 嚴基昌
염불 속에도
쇳소리가 담겨 있다.
아침의 평화가
염불소리에 깨어진다
깜짝 놀라 일어난
산 다람쥐 눈빛 속에
바람이 담겨 있고,
선잠 깬 보라매의 날개 아래서
산이 푸르르 떨고 있다.
마이크를 통해
밖으로 밖으로 두드리는 목탁소리에
이른 등산객 하나
고개를 끄덕이지만
나무들도 풀꽃들도 고갤 돌리고
눈앞의 부처님 입술 끝에는
한 줄기 아침 햇살도 걸리지 않는다.

posted by 청라

대전역 광장에서


대전역 광장에서

淸羅 嚴基昌
핏빛 놀 속에서 비둘기가 튀어 나와
헛되이 선회하는
대전역 광장
어둠 속에서 목소리가 묻혀 가고
누구의 외침이 등불로 설까
초겨울 화단에
국화꽃만 지고 있다.
사람들은 모두 어깨동무하고
고삐 풀린 바람이 되어
거리를 질주하고
나는 빈 마음 빈 속으로 서서
손이 따뜻한 사람을 찾아 악수를 하고 싶다.
우리 둘이 맞잡은 손 끝에
이는 불꽃은
초봄 꽃보다 고운
연초록 움 티우는 따사한 햇살이어야지
산을 사르고 꿈을 사르고
우리들의 소중한 삼천리를 불태우는
미친 불길이 되어서는 안되지.


posted by 청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