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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갈대와 나팔꽃
한 길 넘게 자란 갈대를 감아 올라가
나팔꽃이 방끗 피었습니다.
갈대는 압니다.
저 환한 웃음이
나팔꽃의 미안한 마음이라는 걸
갈대는 잎을 내밀어
나팔꽃이 쉽게 오를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바람이 붑니다.
모든 갈대들 휘청거릴 때
나팔꽃은 살며시 갈대를 안아줍니다.
흘러가는 물은 알까요.
아주 작은 것끼리도 서로 손을 잡아주면
큰 힘이 된다는 것을
2020. 7. 5
『고마문학』창간호(2020년 가을호)
글
사랑한다는 것은
사랑을 한다는 것은
설렘의 등에 불 하나 켜는 것이다.
꽃잎 떨어지는 것도, 낙엽이 뒹구는 것도,
아! 무심히 눈 내리는 것마저 왜 이리 가슴
떨리게 하는 것이냐.
내 안에 너를 그려 넣는 붓질 한 번에
무채색 내 인생이
환희歡喜의 꽃밭으로 환하게 타오르는 것이 아니냐.
사랑을 한다는 것은
세상을 아름답게 보는 눈 하나 뜨는 것이다.
2020. 7. 4
『고마문학』창간호(2020년 가을호)
글
유성온천
나그네여
그대 삶의 발걸음 하루만 여기 멈추게.
오십 도가 넘는 라듐 온천에
때처럼 찌든 삶의 피로를 씻어내고
조금 남은 근심의 찌꺼기는
만년교 아래로 던져 버리게.
여기는
시생대 말기부터 지구의 심장에서 분출하던
뜨거운 피로
마음의 상처마저 치료해주던 곳
맛 집을 찾아 점심을 먹고
이팝꽃 마중 나온 거리
한 바퀴 돌고 와서 족욕足浴을 하면
그대의 인생 십 년은 젊어지리.
끓어오르는 알칼리성 열탕에서
섭섭함을 모두 풀어버리게.
사랑하는 사람과 밤새 정을 나누면
영원히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으리.
2020. 7. 3
『e-백문학』3호(202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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