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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지워지지 않는 이름으로
고향 마을에 하천 공사를 한다고
포크레인 여러 대가 하천 바닥을 퍼내고 있다.
작은 새의 보금자리도 막 피어나는 풀꽃들도
사정없이 부서져서 트럭에 실려 가고 있다.
전두측두엽 치매를 앓고 있는 아내의 뇌 속처럼
수없이 깎여나가는 소중한 추억들
톱날 같은 삽날이 부릉거릴 때마다
아름다운 내 어린 날들이 수없이 파여져 나간다.
아내의 기억 속에서도 하루에 몇 십 조각씩
금가루들이 부서져 내린다.
지난 생일에 내가 사준
진주 반지의 영롱한 빛깔도 흐려지고
오랜 기다림 끝에 태어난
여섯 살 손자의 이름도 낯설어지고
가끔은 정말로 잊고 싶지 않아서
자다 말고 문득 일어나 내 얼굴만 뚫어지게 바라보는
아내의 저 간절한 주문呪文
망각의 날개는 왜 가장 아름다운 것부터 지워가는 것일까.
하천 정비가 끝나면
기억할 것들도 사랑할 것들도 모두 파여 나간 고향 냇가에는
머물 곳을 잃은 물들만 외면한 채 달려가겠지.
포크레인의 폭력에 아름다운 어린 날은 모두 깨어졌지만
힘겹게 혼자 남아 뒤뚱대는 배꼽바위 모양으로라도
아내의 수첩 속에 지워지지 않는 이름으로 남고 싶어서
오늘도 아리셉트를 챙겨주기 위해 아내의 잠을 깨운다.
『시문학』2020년 8월호
글
정비 사업
고향 마을 하천 공사에
포크레인은 사정이 없다.
새집들도 풀꽃들도
추억마저 퍼 담는다.
부르르 요동칠 때마다
깨어지는 내 어린 날
아내도 이른 나이에
정비 사업 시작했나.
기억들 하나하나
망각으로 깎여 나가
아내의 수첩 속에서
지워지면 어쩌나.
글
사모가
꽃이 진 자리 옆에
다른 꽃이 피어나서
자연의 순환은
멈춤이 없건마는
어머니
가신 후에는
기별조차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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