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포 일몰

방포 일몰

 

 

새빨간 불구슬

누가 박아 놓았을까

 

스르르 구르다가

반쯤만 걸린 것을

 

파도가

꿀꺽 삼키고

펄떡펄떡 뛰고 있네.

  

 

2018. 1. 13

posted by 청라

비닐 편지

비닐 편지

 

 

도시를 탈출하다 첨탑에 꿰인 비닐

무엇을 외치려고 비명처럼 몸 흔드나

땅거미 날개 펴듯이 쏟아지는 검은 종소리

 

한 집 걸러 한 개씩 십자가는 불 밝혀도

사랑은 말라가고 죄인은 더 많아지나

어둠의 세상 자르려 초승달 칼 하나 떴네.

 

소음뿐인 도시에 사랑은 죽었더라.

난민인 양 탈출하다 한 조각 꿈 깨어지듯

십자가 못 박힌 채로 늘어지는 비닐봉지.

 

 

2018. 1. 6

posted by 청라

무상無常

무상無常

 

 

다랑논엔 벼 대신 병꽃만 피어있다.

할아버지 발걸음 끊어진 지 너댓 해

두견새 울음소리만 맴돌다가 사라진다.

 

떡갈나무 몇 그루 자리 잡고 누워있다.

멧돼지 목욕하러 밤마다 내려오는

시간이 빨리 흘러서 해가 쉬이 지는 마을

 

 

2017. 12. 4

posted by 청라

홍시

홍시

 

 

따지 마라, 알몸으로

매달릴 형벌이다

 

온 여름 마신 햇살

펄펄 끓는 저 육신을

 

한 조각

남을 때까지

보시布施할 업연이다.

 

 

2017. 10. 26

한국현대시2017 하반기호

posted by 청라

세월의 그림자

세월의 그림자

 

 

나이를 먹을수록 가슴이 얇아진다.

손 한 번만 잡아주면 마음을 다 주고 싶고

아픈 말 한 마디에도 쉽게 멍이 든다.

 

 

2017. 10. 23

posted by 청라

가을의 노래

가을의 노래

 

 

창공을 불러내려

팔각지붕에 펼쳐놓고

 

굴곡진 꼭지마다

아픈 일들 걸어 말리면

 

바람에

씻겨가면서

국화처럼 향이 밴다.

 

 

2017. 10. 11

posted by 청라

엄마

엄마

 

 

대패는기억의

표피부터 깎아낸다.

 

세월의 맨 안 벽에

옹이처럼 새겨진 말

 

엄마아,

보석 같은 말

지워지지 않는 그 말

 

 

2017. 8. 24

posted by 청라

아버지

아버지

 

 

ᄒᆞ나

 

아버지 제삿날 저녁 생전의 사진 보니

지금의 내 모습이 거울 속에 비춰있네.

평소에 못마땅하던 것도 어찌 저리 닮았을까

 

2017, 6. 24

 

 

 

불쌍한 사람 보면 그냥 못 지나가서

동장군 유난하던 정유 겨울 늦은 밤에

추위에 떨던 거지를 집안에 들이시니

 

2017, 7. 2

 

 

 

어머니 가슴에서 형님 뺏어 짊어지고

햇볕 고인 양지쪽에 돌무덤 만들고서

남몰래 쏟은 통곡에 도라지꽃 피었다.

 

2017. 7. 13

 

 

 

육이오 끝 무렵 왼손에 총을 맞아

굽은 손 모진 통증 평생을 살면서도

가족을 먹여 살리려 거친 땅을 일구셨지.

 

2017. 7. 18



다ᄉᆞᆺ

 

아버지 웃음 속엔 고뇌가 절반이다.

저녁에 돌아와서 환히 웃는 얼굴 뒤엔

세상에 휘둘리다 온 아픔이 녹아있다.

 

2017, 7. 3

 

posted by 청라

자연법

자연법

 

 

수달 한 쌍 들랑 달랑

식사를 하고 있다.

 

극락교 아래 물고기가

한 마리씩 지워진다.

 

풍경風磬은 아파 우는데

업연業緣 위에 뜬 구름

 

큰스님 난간에서

허허허 웃고 있다.

 

불법의 나라에서도

자연법이 우선이지.

 

나직히 읊조리는 말

나무 아미 타-

posted by 청라

사월

사월

 

 

태화산 골물소리에  송홧가루 날린다.

뻐꾸기 노래에도 노란 물이 들었네.

술잔에 담아 마시네. 내 영혼을 색칠 하네.

 

다람쥐 한 마리가 갸웃대며 보는 하늘

무엇이 궁금한가 연초록이 짙어지네.

온종일 앉아있으니 내 손 끝에 잎이 피네.

posted by 청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