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雨水 일기

우수雨水 일기

 

 

첫울음

연초록이 파르르 떨고 있다.

겨우내 웅크린 가지

속살에 배어있던

종달새

아껴둔 노래

분수처럼 솟고 있다.

 

 

2018. 2. 21

 

 


posted by 청라

산정호수의 구름

산정호수의 구름

 

 

어제 벙근 구름 건져

내 어항에 심었는데

오늘 아침 꽃구름이

수련처럼 또 피어났네.

뿌리 채 곱게 캐어서

네 마음에 전하네.

 

잔뿌리도 상하잖게

네 울안에 모종하게.

서울의 하늘에서

이런 구름 보았는가.

사랑을 일고 또 일어

산의 숨결로 빚은 구름

 

 

2018. 2. 2

posted by 청라

설일雪日

설일雪日

 

 

산도 숨을 멈추었다.

하얀 눈꽃 위의 적막

 

햇살도 눈을 감고

바람도 날개 접어

 

문 열면 깨어질까봐

문고리 잡고 서 있다.

 

 

2018. 1. 31

 

posted by 청라

매화 연서

매화 연서

 

 

눈꽃 위에 달빛 차서 마음이 시린 새벽

매화 분에 일점홍一點紅이 심등心燈에 불을 밝혀

맑은 향 한 방울 찍어 붉은 연서 보낸다.

 

내 마음 보낸 사연 서랍 가득 쌓였을까

꿈에 간 내 발길에 님의 문턱 닳았으리.

잠결에 매화 향 풍기면 내가 온 줄 아소서.

 

 

2018. 1. 29

posted by 청라

방포 일몰

방포 일몰

 

 

새빨간 불구슬

누가 박아 놓았을까

 

스르르 구르다가

반쯤만 걸린 것을

 

파도가

꿀꺽 삼키고

펄떡펄떡 뛰고 있네.

  

 

2018. 1. 13

posted by 청라

비닐 편지

비닐 편지

 

 

도시를 탈출하다 첨탑에 꿰인 비닐

무엇을 외치려고 비명처럼 몸 흔드나

땅거미 날개 펴듯이 쏟아지는 검은 종소리

 

한 집 걸러 한 개씩 십자가는 불 밝혀도

사랑은 말라가고 죄인은 더 많아지나

어둠의 세상 자르려 초승달 칼 하나 떴네.

 

소음뿐인 도시에 사랑은 죽었더라.

난민인 양 탈출하다 한 조각 꿈 깨어지듯

십자가 못 박힌 채로 늘어지는 비닐봉지.

 

 

2018. 1. 6

posted by 청라

무상無常

무상無常

 

 

다랑논엔 벼 대신 병꽃만 피어있다.

할아버지 발걸음 끊어진 지 너댓 해

두견새 울음소리만 맴돌다가 사라진다.

 

떡갈나무 몇 그루 자리 잡고 누워있다.

멧돼지 목욕하러 밤마다 내려오는

시간이 빨리 흘러서 해가 쉬이 지는 마을

 

 

2017. 12. 4

posted by 청라

홍시

홍시

 

 

따지 마라, 알몸으로

매달릴 형벌이다

 

온 여름 마신 햇살

펄펄 끓는 저 육신을

 

한 조각

남을 때까지

보시布施할 업연이다.

 

 

2017. 10. 26

한국현대시2017 하반기호

posted by 청라

세월의 그림자

세월의 그림자

 

 

나이를 먹을수록 가슴이 얇아진다.

손 한 번만 잡아주면 마음을 다 주고 싶고

아픈 말 한 마디에도 쉽게 멍이 든다.

 

 

2017. 10. 23

posted by 청라

가을의 노래

가을의 노래

 

 

창공을 불러내려

팔각지붕에 펼쳐놓고

 

굴곡진 꼭지마다

아픈 일들 걸어 말리면

 

바람에

씻겨가면서

국화처럼 향이 밴다.

 

 

2017. 10. 11

posted by 청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