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산행

가을 산행

 

 

오욕을 털어내니

가지들 정결하다

은밀한 골물 소리

속진俗塵을 닦고 있나

지나온 길 돌아보니

허물만 깔려있네.

 

버리고 다 버려도

사랑만은 못 버려서

하나 남은 단풍잎이

유독 붉게 익어있다.

불타는 외침만 한 등

빈 산 환히 비춘다.

 

2016. 11. 16

 

posted by 청라

비둘기

비둘기

 

 

허기진

비둘기가

눈발을 쪼고 있다.

 

아무리 삼켜 봐도

요기가 안 되는 눈

 

십이월 바람의 칼날

서성이는 눈동자

 

 

2016. 11. 7

posted by 청라

외연도 가는 길

외연도 가는 길

 

 

파도의 칼끝마다 햇살을 머금었다.

등 푸른 바다가 온통 불 밭이다.

내 삶의 덮개를 열고 우울증을 태운다.

 

달려온 뒷모습을 서둘러 지우는 배

접히는 바닷길 끝 홰를 치는 외연도여

포구에 갈매기 울음 먼저 나와 맞는다.

 

2016. 10. 19

 

posted by 청라

추석 무렵

추석 무렵

 

 

들녘마다 음표音標들이 풍년가로 익어있다

귀뚜리 울음에 흥이 절로 녹아나서

벼운 실바람에도 출렁이는 어깨춤

 

동산 위로 내민 달은 알이 통통 들어찼다.

아내는 냉큼 따서 차례 상에 놓자하나

온 세상 채워줄 빛을 나만 두고 즐기리.

 

 

2016. 9. 9

posted by 청라

석불石佛

석불石佛

 

 

눈에는

동자가 없다.

시름만 가득 들어찼다.

 

코도 귀도 떼어주고

초점焦點 없는 눈만 남아

 

세상의

온갖 번뇌를

안개처럼 둘렀다.

 

 

2016. 7. 30

posted by 청라

산나리꽃

산나리꽃

 

 

네가 피자 산안개가

말갛게 벗겨졌다.

 

십 년 넘게 소식 한 통

못 건네는 제자들아

 

괜찮다.

나리꽃처럼

네 주위를 밝히거라.

 


2016. 7. 1

문학사랑2016년 가을호(117)

posted by 청라

고촉사

시조 2016. 5. 2. 13:00

고촉사高燭寺

 

 

산문이 따로 없다

안기면 다 부처님 품

골 안에 들어서면

목탁소리 마중 나와

관음경 한 자락으로

시린 마음 품어준다

 

수미산이 어디 있나

여기가 부처님 집

약사불 넉넉한 미소

등불처럼 반겨주네

세상에 가장 신령神靈

부처님이 머무는 절

 

posted by 청라

민들레

시조 2016. 3. 30. 08:18

민들레

 

 

깨어진 보도블록

돋아난 뽀얀 새살

 

아픔을 밀어내고

한두 송이 꽃을 피워

 

세상의 

흉한 상처를

감싸주고 있구나


 

 

posted by 청라

인동초忍冬草

시조 2016. 3. 22. 12:41

인동초忍冬草

 

 

세월이 허물고 간 산 밑 빈 집 담 자락에

인동초忍冬草 꼭지마다 주렁주렁 매단 적막

그리움 안으로 익어 하얀 꽃을 피웠다.

 

우측으로 감아 가면 정든 얼굴 떠오를까

대문 닫힌 긴 겨울을 초록으로 견딘 아픔

기다림 눈물로 삭아 노랗게 꽃잎 바랬다.


임자 없는 몸이라서 사연 더욱 만발했나

소쩍새 울음에도 반색하며 떨고있다.

벌 나비 담아가다 만 향기 자욱히 퍼진다.

 


2016. 3.22

 

posted by 청라

목련 이제二題

시조 2016. 3. 5. 08:18

목련 이제二題

 

 

자목련

 

서설瑞雪로 씻은

지등紙燈이다.

하늘 물살

불 밝히는

 

아직도 매운 세상

누군가의 바람인가

 

겨울 끝

시린 인심을

맑은 향기로 데운다.

 

 

백목련

 

옥양목 치마저고리

장롱 속에 묻어 놓고

 

겨우내

설렘을

가꿔 오신 어머님

 

봄 오자

곱게 차려입고

봄나들이 나오셨네.

 

 

 

posted by 청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