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불石佛

석불石佛

 

 

눈에는

동자가 없다.

시름만 가득 들어찼다.

 

코도 귀도 떼어주고

초점焦點 없는 눈만 남아

 

세상의

온갖 번뇌를

안개처럼 둘렀다.

 

 

2016. 7. 30

posted by 청라

산나리꽃

산나리꽃

 

 

네가 피자 산안개가

말갛게 벗겨졌다.

 

십 년 넘게 소식 한 통

못 건네는 제자들아

 

괜찮다.

나리꽃처럼

네 주위를 밝히거라.

 


2016. 7. 1

문학사랑2016년 가을호(117)

posted by 청라

고촉사

시조 2016. 5. 2. 13:00

고촉사

 

 

천수경 한 소절에

근심 맑게 풀리는 곳

 

부처님 마음이

가장 오래 머물러서 


절 한 번

초 한 등에도

보응報應 흘러 넘치네.

posted by 청라

민들레

시조 2016. 3. 30. 08:18

민들레

 

 

깨어진 보도블록

돋아난 뽀얀 새살

 

아픔을 밀어내고

한두 송이 꽃을 피워

 

세상의 

흉한 상처를

감싸주고 있구나


 

 

posted by 청라

인동초忍冬草

시조 2016. 3. 22. 12:41

인동초忍冬草

 

 

세월이 허물고 간 산 밑 빈 집 담 자락에

인동초忍冬草 꼭지마다 주렁주렁 매단 적막

그리움 안으로 익어 하얀 꽃을 피웠다.

 

우측으로 감아 가면 정든 얼굴 떠오를까

대문 닫힌 긴 겨울을 초록으로 견딘 아픔

기다림 눈물로 삭아 노랗게 꽃잎 바랬다.


임자 없는 몸이라서 사연 더욱 만발했나

소쩍새 울음에도 반색하며 떨고있다.

벌 나비 담아가다 만 향기 자욱히 퍼진다.

 


2016. 3.22

 

posted by 청라

목련 이제二題

시조 2016. 3. 5. 08:18

목련 이제二題

 

 

자목련

 

서설瑞雪로 씻은

지등紙燈이다.

하늘 물살

불 밝히는

 

아직도 매운 세상

누군가의 바람인가

 

겨울 끝

시린 인심을

맑은 향기로 데운다.

 

 

백목련

 

옥양목 치마저고리

장롱 속에 묻어 놓고

 

겨우내

설렘을

가꿔 오신 어머님

 

봄 오자

곱게 차려입고

봄나들이 나오셨네.

 

 

 

posted by 청라

키질의 법칙

시조 2016. 2. 28. 10:15

키질의 법칙

 

 

가벼운 검불들 새처럼 날아가고

무거운 알곡들만 사락대며 남아있다.

어머니 키를 까불 때 변치 않는 법칙이다.

 

머리 헐고 코 흘리고 지독히 말 안 들어도

어머니 가슴 속에 우리 형젠 알곡이다.

키에서 벗어달 때면 불을 켜고 찾는다

posted by 청라

자목련

시조 2016. 2. 23. 09:12

자목련

 

 

여리고 성긴 몸이 된바람에 숨 멎을까

짚으로 싸매주며 긴 겨울 잠 설쳤더니

아이의 첫 울음같이 빚어 켜든 달 한 등

posted by 청라

보리수나무

시조 2016. 1. 22. 09:16

보리수

 

 

아침에는 독경 소리 저녁에는 풍경 소리

법당 문에 귀 기울여 묵언 참선 하더니

깨달음 동그랗게 키워 초록 열매 달았다

 

내 안에 나를 익혀 서쪽으로 뻗은 가지

번뇌를 사르었다 법열이 타올랐다

황금빛 환희를 꿰어 염주 알을 엮는다

 

 

 

2015. 1. 22

posted by 청라

천수만에서

시조 2016. 1. 17. 10:04

천수만에서

 

 

언젠가 숨 쉬는 것도 귀찮은 날이 오거든

생명줄 잘린 채로 억척스레 살아가는

천수만 날갯죽지에 삶의 한 조각 실어보게.

세상으로 나가는 길이 사방 온통 막힌 남자

신생대부터 이어오던 리아스식 호흡들이

어느 날 흙 몇 삽으로 꽁꽁 묶여 버린 남자.

하늘빛 꿈 잃었다고 주저앉으면 남자더냐.

사니질沙泥質 아랫도리에 새조개를 살게 하고

품 열어 오지랖 넓게 철새 노래 키운다.

바람기 많은 남자 중에 천수만이 제일이다.

가창오리 흑두루미도 품었던 품속에서

유유히 노랑부리저어새 털가슴을 고르고 있다.

누가 알리 갈적색 썩어가는 핏물 아픔

비 오는 날 갈대밭에 출렁이는 속울음을

해 뜨면 맑게 씻은 눈 속 깊은 저 아버지를.


사니질 모래와 진흙이 섞여 있는 흙의 성질

 

 

2016. 1. 17

posted by 청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