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

시조 2015. 7. 16. 19:15

호박



비탈밭 마른 덩굴에

호박 혼자 늙어간다.


씨 뿌린 할마시는

오는 걸 잊었는가.


마을로 내려가는 길

망초꽃만 무성하다.


2015. 7.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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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념

시조 2015. 3. 21. 08:59

푸념

 

 

친구 상가 들렀다가 새벽 두 시 들어와서

열 시까지 잠자다가 열한 시 차 타고 가선

아빠야, 지난 삼월에 아빠 보러 갔었잖아.”

 

아들아, 네가 무슨 스쳐가는 바람이냐?

네 자취 희미해서 왔던 기억 전혀 없다.

길 가다 문득 만나도 몰라볼까 두렵다.

 

2015, 3,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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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쓰는 이유

시조 2015. 3. 7. 14:16

시조 쓰는 이유



내 행복

듬뿍 풀어

시조 한 수 빚는다.


툰드라의 가슴마다

햇살 씨앗 깊게 심어 


벌 나비

날갯짓 하는

봄꽃 가득 피우려고.



2015. 3.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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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시

시조 2015. 2. 5. 15:44

홍시



누군가

핏빛 소망

불꽃으로 피워놓았나.


칼바람에 갈고 갈아

심지만 남았다가


하늘의 

무게에 눌려

반짝 하고

타는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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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城

시조 2015. 1. 13. 07:49



돌 틈마다 세월의 무게가 돌이끼로 덮여있다.

깨어진 기왓장에 박혀있는 삶의 무늬

시간이 스쳐 온 자리 스며있는 눈물과 한숨

무너져도 일어서는 분노를 다독이며

단심丹心 의혈義血이 꽃처럼 지던 그 날

함성이 떠난 자리에 흰 구름만 떠도네.

무엇을 깎아내려 밤새도록 쏟아 부었나

비바람 지나간 성터 수목 빛이 더욱 곱다.

역사는 지우려할수록 더 파랗게 살아난다.


2015, 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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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무줄

시조 2015. 1. 9. 22:04

고무줄



계집애들 고무줄 하는데 심술쟁이 희수란 놈 시침 떼고 다가가서 고무줄 뚝 끊어놓으면

모두들 어이없어 동작 뚝, 흐르는 적막, "저 씹할 놈이" 상순이년 욕소리에 희수를 향해 몰려들 가는데, 봉자 년은 막대기 들고, 경자 년은 돌멩이 들고, 복자 년은 신발 벗어 들고, 운동장은 개판……

온종일 도망치려면 자르기는 왜 잘라.


2015. 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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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구자

시조 2015. 1. 8. 16:35

선구자


눈보라 매섭다고

봉오리마다 숨죽일 때


칼바람에 심지 박아

꽃등 켜든 한 송이 매화


꽃술에

모여든 햇살

꿈을 이룬 저 환희


2015. 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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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홍 발찌

시조 2015. 1. 6. 17:40

주홍 발찌


솔처럼 살겠노라

황사 짙은 세상에도

심충 모래밭에

난초 한 촉 심어놓고

어둠의 중심을 향해

꽃등 하나 켜들려 했지.



청청한 내 생위에

벌레 하나 숨어 커서

깊은 산골 물소리로 

닦아내지 못한 얼룩

진주홍 지워지지 않을

발찌 하나 채운다.


2015, 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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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것 우울할 때-시장풍경2

시조 2015. 1. 3. 12:23

사는 것 우울할 때

                   -시장 풍경2



사는 것 우울할 때

시장 길 걸어본다.

상품권 몇 장을

주머니에 찔러 넣고

흥 넘친 호객 소리에

온 몸을 묻어본다.


머리 고기 한 점에

막걸리 한 사발 들이켜고

알록달록 모자 하나

삐뚜름히 사서 쓰고

갈지자걸음 걸으면

흥청거리는 장마당.


엊그제 백화점에서

못 산 그 옷 사서 입고

고등어 한 손을

왼 손에 묶어 들면

근심들 말끔히 지워져

어깨춤이 절로 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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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장에서-시장 풍경1

시조 2015. 1. 3. 09:41

중앙시장에서

            -시장 풍경1


삶은

상점마다

색색으로 꽃을 피웠다.


꺾여지고

다시 피는

억척스런

사연들이


점멸등 깜빡거리듯

교차되는 중앙시장

posted by 청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