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시조 2014. 12. 24. 08:14

가정


 열면 안겨오는 

아내의 웃음꽃다발


곤두섰던 털 재우고

바람 묻은 외투를 벗으면


내민 손 반가운 눈빛에서

일어서는 봄 햇살


2014. 1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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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검다리

시조 2014. 12. 10. 00:31

징검다리


큰물 지고나면 앞니 빠진 개구쟁이 되어 계집애들 울리던 학교 길 징검다리

건너뛸 수 있는데도 물에 첨벙 빠진 후에 새침떼기 복자에게 살며시 다가가서 등 살짝 내밀며는 능금모양 낯붉히고 엎혀오던 징검다리

오십 년 후딱 지났어도 그 자리에 서면 금방 핀 풀꽃처럼 언제나 싱싱한 설렘이여!


2014. 1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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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화

시조 2014. 11. 29. 16:13

운동화


소 뜯기러 뒷산에 갔다 놀란 소 때문에 새신 찢어먹고

가슴이 콩닥콩닥 얼굴은 화끈화끈  쇠줄 집어던지고 산등성이 왔다 갔다

죄없는 등걸 발길로 차며 벼락같이 소리도 지르다가 해 다 기울도록 산 못

내려오는데, 마중 나온 아버지 보고도 못 본 척하고

댓돌에 운동화 한 쌍, 눈물 왈칵 쏟게 하던 아침 등굣길.



2014. 1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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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화2

시조 2014. 11. 26. 14:32

낙화2

 

아름답게

이별하고 있다.

진종일 지는 벚꽃잎들은

 

찰나를 불태우고서

바람에 날개 달아

 

가볍게 날아 떠나는

저 분분한

이별

이별......

 

2014. 11. 26

posted by 청라
속울음으로 곡을 하다
         - 엄기환 화백의 죽음을 슬퍼하며


부음訃音은 안개처럼
내 마음을 헝클어놓았다.

사는 것 
하나하나가
그림 같던
멋진 아우

고향에 아우가 있어
해질 무렵엔 가고팠는데......

붓질 한 획마다
살아나던 눈부신 세상

층암절벽
왕소나무
천 길 폭포
물소리

그림을 그리다 말고
왜 그리 서둘러 가셨는고.


2014. 1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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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임退任 이후

시조 2014. 11. 2. 22:29

퇴임退任 이후

 

 

한 삶에서

벗어나 다른 삶으로 건너가기는

이웃마을 마실가듯

편한 일은 아니다.

익숙한 옷들을 벗고

눈발 아래 서는 일이다.

 

남의 눈에

띄지 않게 밤으로만 비틀거리며

지난 세월 실을 뽑아

새 날의 그물을 짜며

또 한 발

못 가본 바다에

의 기를 세운다.

 

 

2014. 11. 2

posted by 청라

낮달

시조 2014. 10. 24. 14:52

낮달



가을비가 씻어놓은

아가의 뽀얀 볼에

엄마가 일 나가면서

뽀뽀뽀 하고 갔는가,

잠든 채

찍어놓다가

일그러진 입술 자국. 



햇살이 눈부셔도

방긋 웃는 아가 얼굴

초록별 이야기를

가슴 가득 품고 있네.

비단강

노를 저어서

어디 멀리 가고 있나. 



2014. 10. 24

posted by 청라

아우성

시조 2014. 10. 24. 09:30

아우성

 

늦가을 아침

산의 속살 더 정결하게 드러난다.


긴 여름 들끓던 폭염

가둬 키운 단풍 한 잎


마지막

못다 한 사랑

펄럭이는 아우성

 

 

2014. 10.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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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름살 - 시장 풍경 3

시조 2014. 10. 14. 00:05

주름살

     - 시장 풍경3 



 

호박잎 두어 묶음

마늘 감자

서너 무더기

 

서둘러

달려가는

찬바람의 뒤꿈치에

 

할머니

얼굴에 파인

장마 뒤의

깊은 계곡


2014, 10. 13

 


posted by 청라

폐지 노인 - 시장 풍경4

시조 2014. 8. 16. 09:32

폐지 노인

                - 시장 풍경4

 

굽은 허리 웅크린 채

쩔쩔매는 저 할머니,

 

수퍼 집 박스 하나

몰래 훔쳐 실었다고

 

손수레 엎어진 채로

노인 하나 혼나고 있다.

 

 

아들은 누워있고

며느리는 도망가고

 

어린 손자 연필 값에

손이 절로 움직여서

 

백 원 쯤 박스 하나로

만 원어치는 혼나고 있다.

 

 

2014816

posted by 청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