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울음으로 곡을 하다
         - 엄기환 화백의 죽음을 슬퍼하며


부음訃音은 안개처럼
내 마음을 헝클어놓았다.

사는 것 
하나하나가
그림 같던
멋진 아우

고향에 아우가 있어
해질 무렵엔 가고팠는데......

붓질 한 획마다
살아나던 눈부신 세상

층암절벽
왕소나무
천 길 폭포
물소리

그림을 그리다 말고
왜 그리 서둘러 가셨는고.


2014. 11. 8



posted by 청라

퇴임退任 이후

시조 2014. 11. 2. 22:29

퇴임退任 이후

 

 

한 삶에서

벗어나 다른 삶으로 건너가기는

이웃마을 마실가듯

편한 일은 아니다.

익숙한 옷들을 벗고

눈발 아래 서는 일이다.

 

남의 눈에

띄지 않게 밤으로만 비틀거리며

지난 세월 실을 뽑아

새 날의 그물을 짜며

또 한 발

못 가본 바다에

의 기를 세운다.

 

 

2014. 11. 2

posted by 청라

낮달

시조 2014. 10. 24. 14:52

낮달



가을비가 씻어놓은

아가의 뽀얀 볼에

엄마가 일 나가면서

뽀뽀뽀 하고 갔는가,

잠든 채

찍어놓다가

일그러진 입술 자국. 



햇살이 눈부셔도

방긋 웃는 아가 얼굴

초록별 이야기를

가슴 가득 품고 있네.

비단강

노를 저어서

어디 멀리 가고 있나. 



2014. 10. 24

posted by 청라

아우성

시조 2014. 10. 24. 09:30

아우성

 

늦가을 아침

산의 속살 더 정결하게 드러난다.


긴 여름 들끓던 폭염

가둬 키운 단풍 한 잎


마지막

못다 한 사랑

펄럭이는 아우성

 

 

2014. 10. 24

 

posted by 청라

주름살 - 시장 풍경 3

시조 2014. 10. 14. 00:05

주름살

     - 시장 풍경3 



 

호박잎 두어 묶음

마늘 감자

서너 무더기

 

서둘러

달려가는

찬바람의 뒤꿈치에

 

할머니

얼굴에 파인

장마 뒤의

깊은 계곡


2014, 10. 13

 


posted by 청라

폐지 노인 - 시장 풍경4

시조 2014. 8. 16. 09:32

폐지 노인

                - 시장 풍경4

 

굽은 허리 웅크린 채

쩔쩔매는 저 할머니,

 

수퍼 집 박스 하나

몰래 훔쳐 실었다고

 

손수레 엎어진 채로

노인 하나 혼나고 있다.

 

 

아들은 누워있고

며느리는 도망가고

 

어린 손자 연필 값에

손이 절로 움직여서

 

백 원 쯤 박스 하나로

만 원어치는 혼나고 있다.

 

 

2014816

posted by 청라

독도

시조 2014. 3. 13. 10:10

독도

 

그리움의 높이만큼 해당화 꽃 하나 켜고

피멍울 속울음을 파도에 갈고 갈아

대양의 폭풍우 향해 질긴 날을 세운다.

 

먼 수평 하늘가에 흰 돛 한 폭 나부끼면

설렘을 먼저 알고 날아오르는 갈매기 떼

사랑은 사치이로세. 마음 다시 다잡는 섬.

 

2014. 3. 13

posted by 청라

황사黃砂

시조 2014. 3. 2. 09:46

황사黃砂

 

 

제주에서 날아올라 청주 공항 오며 보니

바다도 산도 마을도 황사에 잠겨 있다.

봄 물기 오른 산하가 딸꾹질을 하고 있다.

 

옛날부터 찾아오던 봄 불청객 고비 황사

대륙의 몸부림에 독기까지 배어 있다.

뻐꾹새 울다 목메어 자지러진 회색 빛 숲.

 

집집마다 창 내리고 앞산도 멀어지고

비질 된 골목처럼 비어가는 반도의 거리

일찍 핀 나뭇잎들만 분 바르고 서 있다.

 

차 한 대 없던 옛날도 편서풍 따라 봄에

서해 건넌 모래 먼지 송화처럼 내렸는데

증명할 방법 있냐고? 후안무치한 놈들!

 

 

2014. 2. 2

posted by 청라

思父 一曲 - 눈길

시조 2014. 1. 10. 10:40

思父 一曲

 

눈길

 

 

아버님 제삿날 저녁 때늦은 春雪로

설화 곱게 피어난 연미 고개 넘으면서

雪花 속 아롱거리는 아버님 모습을 본다.

 

개학 전날 暴雪로 교통이 두절되어

오십 리 넘는 公州 아들 혼자 가는 길에

마음이 애틋하셔서 따라 나선 아버지.

 

눈보라 칼바람에 온몸 꽁꽁 얼으셔서

우성 지난 길가에 주저앉아 떠시면서도

내 옷깃 여며주시던 모닥불 빛 그 손길

 

금강 건너 도심에 한 등 한 등 켜질 무렵

“네 덕분에 먹고 싶던 짜장면 먹는구나”

허기진 젓가락 들어 덜어주던 아버지

 

이제는 짜장면 천 그릇도 살 수 있네.

짜장면 잡숴주실 아버님이 안 계시네.

춘설은 풍요로워도 구름처럼 허전한 길.

 

 

 

2014. 1. 10

 

 

posted by 청라

닭서리

시조 2013. 12. 15. 10:14

닭서리

 

친구 부모 원행 간 집 동네 조무래기 모두 모여,

 

가위 바위 보로 술래를 정해 닭서리를 하였는데, 암탉, 수탉 서너 마리

가마솥에 푹푹 삶아 미친 듯이 뜯다 보니 백골만 다 남았네.

 

아침에 닭장에 가신 어머니 비명소리에 혼백이 다 날아가 소화된 닭이

넘어올 듯…….

 

2013. 12. 15

 

 

posted by 청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