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향

시조 2010. 5. 5. 07:56

 

歸鄕



옛집 앞 고샅 걸으니

세월만큼의 무게도 없다.

아이들 목소리

넘쳐나던 담 머리에

실각시잠자리 혼자

오수에 젖어있다.


만나는 사람마다

머리에 눈을 이고

반기는 웃음마다

가는 실금 어리었다.

빈 골목 퀭한 바람에

눈물 적시는 저녁놀…….


20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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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설晩雪

시조 2010. 3. 20. 16:32

 

만설晩雪



필동    

말동

매화꽃 봉오리 위로


설화

피어

눈물로 질까 떨다가


온 눈꽃 다 지고 나니

매화 눈 못 뜰까 잠 못 드네.


2010. 3.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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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랑 보문산

시조 2010. 3. 1. 09:41

 

내 사랑 보문산



비 그치자 보문산이 봄 화장을 하고 있다.

골안개 분칠하는 산기슭 따라 돌며

바람은 실가지마다 붉은 연지 찍고 있다.


잘 익은 초록빛이 온 도시를 다 씻는다.

고촉사 목탁소리에 불음佛音이 묻어나서

도시의 모든 귀들이 산 쪽으로 열려있다.


아픔도 삭혀내면 사랑으로 익는 것을

온 산 자락마다 흐드러진 저 단풍아

누구의 눈물을 모아 꽃처럼 붉었느냐?


마음이 어지러운 날 창문을 열고 보면

시루봉 앞이마가 백설로 정결하다.

마음이 빗질 되어서 콧노래로 돋는다.


20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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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승老僧

시조 2010. 2. 1. 10:21

 

노승老僧



밤새워
독경讀經으로

살금살금 벗겨내어


솔바람 풍경소리

찬 이슬에 재웠다가


부처님 

입가의 미소

동백 冬柏 으로 피웠다.


2010. 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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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반자

시조 2010. 1. 31. 08:11

 

동반자


아내가 발 틀리면 내가 발을 맞춰주고

내가 발 틀리면 아내가 발 맞춰주고

큰소리 다툼하나 없이 인생길을 걷는다.


아내가 멈춰서면 내가 손을 끌어주고

내가 멈춰서면 아내가 등 밀어주며

힘들면 끌고 밀면서 인생 고개 넘는다.


둘이 하나 되어 마음 맞춰 살다 보면

사랑만도 부족한데 미워할 새 어디 있나.

흥타령 어깨동무로 사는 세상은 늘 봄이네.


2010. 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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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포의 새벽

시조 2010. 1. 15. 09:39

 

방포의 새벽


바람이 잠을 깨어 새벽 바다를 건너간다.

바람의 뒤꿈치에서 일어서는 파도소리

천 개의 물이랑마다 반짝이는 그믐달빛


혼곤한 꿈을 열고  파도 소리 들어와서

어지러운 꿈을 깨워 새 하루를 빚어놓네.

고요 속 누웠던 열기 술렁술렁 일렁이고.


나는 누구인가 바다에게 물어보니

일찍 깬 갈매기만 무어라고 지껄이네.

바다야 말 아니 해도 내가 누군지 보았노라.



posted by 청라

빈집

시조 2010. 1. 10. 09:49

 

빈집


봄 햇살 사운대도 대문은 굳게 닫혀

울안에 혼자 사는 살구꽃 꽃가지만

아무도 보는 이 없이 목청 돋워 피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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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소리

시조 2009. 12. 29. 06:10

 

빗소리


가을 산 단풍 숲을 빗소리가 씻고 있다.

선방 문 반 쯤 열고 老松 같은 노 여승이

빗소리 하나 둘 세며 마음을 비우고 있다.


비바람 쓸고 간 자리 남아있는 잎새처럼

한평생 다스려도 삭지 않는 질긴 번뇌

빗소리 날을 세워서 한 줄기씩 베고 있다.



2009. 1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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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문산-봄

시조 2009. 12. 2. 11:44

보문산-봄

 

비 그치자 보문산이 기지개를 켜고 있다.

골안개 분칠하는 산기슭 따라 돌며

바람이 실가지마다 붉은 연지 찍고 있다.

 

회색빛 산색 속에 연초록이 묻어난다.

조용한 떨림으로 일어서는 소리들이

바위 틈, 낙엽 아래서 함성으로 일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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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편지

시조 2009. 11. 4. 16:38

가을 편지


 

구봉산 산행 길에

단풍잎 하나 따서

아내의 화장대에

몰래 올려 놓았다.

아내를 사랑한다는

내 가을 편지이다.

 

얼핏 연 책갈피에

내게 보낸 연서 한 장

곱게 말린 단풍잎에

배어있는 고운 정성

아내도 날 사랑한다는

홍조 어린 답신이다.

 

 

 

posted by 청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