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반자

시조 2010. 1. 31. 08:11

 

동반자


아내가 발 틀리면 내가 발을 맞춰주고

내가 발 틀리면 아내가 발 맞춰주고

큰소리 다툼하나 없이 인생길을 걷는다.


아내가 멈춰서면 내가 손을 끌어주고

내가 멈춰서면 아내가 등 밀어주며

힘들면 끌고 밀면서 인생 고개 넘는다.


둘이 하나 되어 마음 맞춰 살다 보면

사랑만도 부족한데 미워할 새 어디 있나.

흥타령 어깨동무로 사는 세상은 늘 봄이네.


2010. 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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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포의 새벽

시조 2010. 1. 15. 09:39

 

방포의 새벽


바람이 잠을 깨어 새벽 바다를 건너간다.

바람의 뒤꿈치에서 일어서는 파도소리

천 개의 물이랑마다 반짝이는 그믐달빛


혼곤한 꿈을 열고  파도 소리 들어와서

어지러운 꿈을 깨워 새 하루를 빚어놓네.

고요 속 누웠던 열기 술렁술렁 일렁이고.


나는 누구인가 바다에게 물어보니

일찍 깬 갈매기만 무어라고 지껄이네.

바다야 말 아니 해도 내가 누군지 보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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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집

시조 2010. 1. 10. 09:49

 

빈집


봄 햇살 사운대도 대문은 굳게 닫혀

울안에 혼자 사는 살구꽃 꽃가지만

아무도 보는 이 없이 목청 돋워 피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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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소리

시조 2009. 12. 29. 06:10

 

빗소리


가을 산 단풍 숲을 빗소리가 씻고 있다.

선방 문 반 쯤 열고 老松 같은 노 여승이

빗소리 하나 둘 세며 마음을 비우고 있다.


비바람 쓸고 간 자리 남아있는 잎새처럼

한평생 다스려도 삭지 않는 질긴 번뇌

빗소리 날을 세워서 한 줄기씩 베고 있다.



2009. 11. 3


posted by 청라

보문산-봄

시조 2009. 12. 2. 11:44

보문산-봄

 

비 그치자 보문산이 기지개를 켜고 있다.

골안개 분칠하는 산기슭 따라 돌며

바람이 실가지마다 붉은 연지 찍고 있다.

 

회색빛 산색 속에 연초록이 묻어난다.

조용한 떨림으로 일어서는 소리들이

바위 틈, 낙엽 아래서 함성으로 일렁인다.

 

 

posted by 청라

가을 편지

시조 2009. 11. 4. 16:38

가을 편지


 

구봉산 산행 길에

단풍잎 하나 따서

아내의 화장대에

몰래 올려 놓았다.

아내를 사랑한다는

내 가을 편지이다.

 

얼핏 연 책갈피에

내게 보낸 연서 한 장

곱게 말린 단풍잎에

배어있는 고운 정성

아내도 날 사랑한다는

홍조 어린 답신이다.

 

 

 

posted by 청라

여름 끝 무렵

시조 2009. 9. 12. 12:38
 

여름 끝 무렵


국화꽃 멍울 부품도

가슴 저린 일이어니

분주한 고추잠자리

이고 있는 하늘 가로

손 털고 일어나 가듯

미련 없이 가는 여름


 

잠 깬 바람 여울목에

쓸려가는 뭉게구름

흥 파한 계곡마다

돌 틈 가득 쌓인 공허

보내는 마음 허전해

눈시울 적셔보네.

.


2009. 9.12


posted by 청라

어머님 제삿날

시조 2009. 5. 31. 22:30

 

어머님 제삿날


까치소리 몇 소절이

살구나무 꽃눈을 쪼더니

해질녘 빈 가지에

두 세 송이 꽃등 밝혀

어머니 젖은 목소리

화향(花香)으로 오시다.


지방(紙榜)에 반가움 담아

병풍 아래 모셔놓고

살아생전 못 드시던

떡 과일 가득 차렸지만

향불이 다 사위도록

줄어들 줄 몰라라.


빛바랜 추억담을

갱물 말아 마시면서

벽 위에 걸려있는

초로 적 고운 사진

바라보고 또 바라봐도

돌아갈 수 없는 세월.










 



posted by 청라

山房 四季

시조 2008. 11. 27. 22:05

 

山房 四季



(봄)

산 벚꽃 폭죽처럼 터져오는 산기슭을

담채화(淡彩畵) 두어 폭에 담뿍 담아 걸었더니

화향(花香)이 봄 다 가도록 집안 가득 떠도네.


(여름)

베개 밑 골물소리  꿈 자락에 묻어나서

근심 빗질하여 바람 속에 던져두고

기름진 잠결에 취해 여름밤이 짧아라.


(가을)

용소(龍沼)에 가을 달이 집 틀어 누웠기에

병 속에 물과 달을 함께 길어 두었더니

아침에 햇살 비추니 단풍산도 따라왔네.


(겨울)

선계(仙界)에 덮을 것이 무엇이 남았다고

검은 이불 걷힌 아침 하얀 속살 드러낸 산

세상으로 나가는 길이 지워지고 없구나.


2008. 11. 26



 

 

posted by 청라

세월

시조 2008. 11. 14. 23:35

 

세월


가을 마중하러

계룡산도 못 가보았네.


얼룽이는 삶의 무늬

취해서 살다 보니


가로수 

잎 진 가지에

칼바람이 앉아있네.



출퇴근길 은행잎에

가을이 떨어져도


낯익은 풍경이라

세월 자취 모르다가


꿈 깨어

이만큼 와서

눈물 한 모금 삼켜 보네.

posted by 청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