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同行)

시조 2013. 12. 11. 10:57

동행(同行)

 

누군가 새벽 산길

혼자 넘은

외발자국

 

그의 삶에 기대면서

그의 마음 밟고 간다.

 

외로운

눈길에 깔아놓은

털옷처럼 따스한 정.

 

 

닫은 문 귀를 열면

앞서 간 이

내미는 손

 

어디선가 밀어주는

함성 소리 밟고 간다.

 

고갯길 막막하여도

인생은 동행이다.

 

2013. 1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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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 지킴이

시조 2013. 10. 20. 09:42

미소 지킴이

 

미소가 등불처럼 고여 있는 아내의 입가

수삼 년 꽃 못 피운 동백나무 심고 싶다

미소를 자양분 삼아 꽃잎 활짝 피어나게

 

어렵게 피어난 꽃 온 계절 지지 않게

작은 내 관심에도 햇살 같은 아내 얼굴

행복한 아내 얼굴에 미소지킴이 되고 싶다.

 

2013. 10. 20

 

2013년 <문학사랑>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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廢寺의 종

시조 2013. 10. 9. 08:59

의 종

 

-빛 단풍이 타오르는 골짜기에

기와지붕 허물어져 비새는 절 추녀 끝에

썩다 만 조롱박처럼 매달린 종 하나.

 

오랜 세월 울지 못해 울음으로 배부른 종

소쩍새 울음으로 달빛으로 키운 울음

종 벽 속 꿈틀거리는 용암 같은 피울음.

 

이순 넘은 삶의 망치 꽝 하고 두드리면

산사태 몰아치듯 사바까지 넘칠 울음

종 채를 들었다 놨다 가을 해가 기우네.

 

2013. 10.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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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곡사 범종소리

시조 2013. 9. 25. 10:51

마곡사 범종소리

 

마곡사 범종소리

법당 하나 짓고 있다.

 

여울물 물소리로

한 모금씩 묻어 와서

 

사랑이

메마른 마음마다

독경 소리 울리고 있다.

 

2013. 9.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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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치

시조 2013. 4. 16. 08:03

까치

 

몸 하나 누일만큼

알 하나 품을만큼

미루나무 꼭대기에

오막살이 지어놓고

“깍깍깍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저 까치.

 

백 번을 들어도

싫증나지 않는 소리

바람 숭숭 뜷린 집에

밤 하늘 별이 새도

“깍깍깍 나도 사랑해”

깃을 펴는 저 까치.

 

2013. 4.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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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믿음

시조 2013. 3. 1. 10:22

사랑과 믿음

 

아이들 혼인날 아침 마음 씻고 비는 것은

사랑의 날실과 믿음의 씨실을 엮어

결 고운 비단결 같이 삶을 펼쳐 가라는 것,

 

안 보면 보고 싶고 보아도 또 보고 싶게

마음의 꽃술 열어 사랑의 꿀 채우거라

큰 그늘 드리우지 않게 눈을 떼지 말거라

 

몇 억 겁을 헤매다가 청홍실로 묶였는고!

작은 의심 키우다가 인연의 줄 끊지 말고

믿음의 울타리 안에 화락(和樂)한 삶 이루기를……

 

손잡고 걷는 길에 고개 어찌 없겠는가

남편이 발을 삐면 내 살처럼 아파하며

아내가 넘어지면 등에 업고 가라는 것.

 

2013. 3.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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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박김치

시조 2013. 2. 10. 22:13

나박김치 

 

설날 아침 떡국 먹다 나박김치 국물에

엄마와 함께 보던 노을빛이 떠올라서

한 수저 남겨놓고서 눈에 이슬 내려라.

 

 

2013. 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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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다리골

시조 2013. 1. 27. 09:48

장다리골

 

머리채 긴 솔바람이

골목길 쓸고 간 후

집집 텃밭마다

장다리꽃 등 밝히다.

꾀꼬리

목소리 빛으로

눈부시던 그 꽃밭…….

 

지금은 장다리골

봄이 와도 꽃은 없고

꾀꼬리 꽃 부르던

목소리도 사라지고

고샅길

꼬불꼬불 돌아

경운기만 가고 있네.

 

 

2013. 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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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미 소리

시조 2013. 1. 20. 09:10

매미 소리

  사탕 하나 입에 물고 예닐곱 개는 양 손에 갈라 쥐고

  휘파람 부을면서 목 빳빳이 세우고 갈 지자 걸음으로 천천히 고샅길 맴돌 적에 창현이, 천용이, 희수, 윤현이, 순옥이, 영숙이, 희순이, 희원이, 종환이, 동현이, 현자, 희익이, 학근이, 종순이 등등 일 개 소대 침 질질 흘리면서 비칠비칠 따라오며 기죽은 눈길로 내 양손만 뚫어질 듯 바라볼 때

  내 마음 깊은 울안에 천둥치듯 일어서던 아! 저 백만 마리 매미 소리.

  1013. 1. 20

posted by 청라

우수憂愁

시조 2012. 12. 1. 11:39

우수憂愁 

 

그대에게 다가가는 길은 끊어지고

오늘따라 어둠은 장막처럼 가로막아

 

창문에

비친 불빛만

바라보며 서 있다.

posted by 청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