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구자

시조 2015. 1. 8. 16:35

선구자


눈보라 매섭다고

봉오리마다 숨죽일 때


칼바람에 심지 박아

꽃등 켜든 한 송이 매화


꽃술에

모여든 햇살

꿈을 이룬 저 환희


2015. 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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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홍 발찌

시조 2015. 1. 6. 17:40

주홍 발찌


솔처럼 살겠노라

황사 짙은 세상에도

심충 모래밭에

난초 한 촉 심어놓고

어둠의 중심을 향해

꽃등 하나 켜들려 했지.



청청한 내 생위에

벌레 하나 숨어 커서

깊은 산골 물소리로 

닦아내지 못한 얼룩

진주홍 지워지지 않을

발찌 하나 채운다.


2015, 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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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것 우울할 때-시장풍경2

시조 2015. 1. 3. 12:23

사는 것 우울할 때

                   -시장 풍경2



사는 것 우울할 때

시장 길 걸어본다.

상품권 몇 장을

주머니에 찔러 넣고

흥 넘친 호객 소리에

온 몸을 묻어본다.


머리 고기 한 점에

막걸리 한 사발 들이켜고

알록달록 모자 하나

삐뚜름히 사서 쓰고

갈지자걸음 걸으면

흥청거리는 장마당.


엊그제 백화점에서

못 산 그 옷 사서 입고

고등어 한 손을

왼 손에 묶어 들면

근심들 말끔히 지워져

어깨춤이 절로 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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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장에서-시장 풍경1

시조 2015. 1. 3. 09:41

중앙시장에서

            -시장 풍경1


삶은

상점마다

색색으로 꽃을 피웠다.


꺾여지고

다시 피는

억척스런

사연들이


점멸등 깜빡거리듯

교차되는 중앙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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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

시조 2014. 12. 24. 08:14

가정


 열면 안겨오는 

아내의 웃음꽃다발


곤두섰던 털 재우고

바람 묻은 외투를 벗으면


내민 손 반가운 눈빛에서

일어서는 봄 햇살


2014. 1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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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검다리

시조 2014. 12. 10. 00:31

징검다리


큰물 지고나면 앞니 빠진 개구쟁이 되어 계집애들 울리던 학교 길 징검다리

건너뛸 수 있는데도 물에 첨벙 빠진 후에 새침떼기 복자에게 살며시 다가가서 등 살짝 내밀며는 능금모양 낯붉히고 엎혀오던 징검다리

오십 년 후딱 지났어도 그 자리에 서면 금방 핀 풀꽃처럼 언제나 싱싱한 설렘이여!


2014. 1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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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화

시조 2014. 11. 29. 16:13

운동화


소 뜯기러 뒷산에 갔다 놀란 소 때문에 새신 찢어먹고

가슴이 콩닥콩닥 얼굴은 화끈화끈  쇠줄 집어던지고 산등성이 왔다 갔다

죄없는 등걸 발길로 차며 벼락같이 소리도 지르다가 해 다 기울도록 산 못

내려오는데, 마중 나온 아버지 보고도 못 본 척하고

댓돌에 운동화 한 쌍, 눈물 왈칵 쏟게 하던 아침 등굣길.



2014. 11. 29

posted by 청라

낙화2

시조 2014. 11. 26. 14:32

낙화2

 

아름답게

이별하고 있다.

진종일 지는 벚꽃잎들은

 

찰나를 불태우고서

바람에 날개 달아

 

가볍게 날아 떠나는

저 분분한

이별

이별......

 

2014. 11. 26

posted by 청라
속울음으로 곡을 하다
         - 엄기환 화백의 죽음을 슬퍼하며


부음訃音은 안개처럼
내 마음을 헝클어놓았다.

사는 것 
하나하나가
그림 같던
멋진 아우

고향에 아우가 있어
해질 무렵엔 가고팠는데......

붓질 한 획마다
살아나던 눈부신 세상

층암절벽
왕소나무
천 길 폭포
물소리

그림을 그리다 말고
왜 그리 서둘러 가셨는고.


2014. 1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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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임退任 이후

시조 2014. 11. 2. 22:29

퇴임退任 이후

 

 

한 삶에서

벗어나 다른 삶으로 건너가기는

이웃마을 마실가듯

편한 일은 아니다.

익숙한 옷들을 벗고

눈발 아래 서는 일이다.

 

남의 눈에

띄지 않게 밤으로만 비틀거리며

지난 세월 실을 뽑아

새 날의 그물을 짜며

또 한 발

못 가본 바다에

의 기를 세운다.

 

 

2014. 11. 2

posted by 청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