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소가 따라와서

미소가 따라와서

 

 

엊그제 마곡사

석가 불 그 미소가

내 꿈속 비좁은

골목까지 따라와서

아이 참, 욕하려 해도

빙그레 웃음만

 

그러게 살던 대로

막 살면 되는 게지

마음속에 부처는

왜 모시자 욕심 부려

아이고, 이제 큰일 났네

욕도 한 번 못하고

 

 

2019. 3. 6

posted by 청라

서해의 저녁

서해의 저녁

 

 

바다의

비린내를

노릇노릇 구워놓고

지는 해

노른자처럼

소주잔에 동동 띄워

마신다.

귀가 열린다.

물새들의 속삭임에

 

기우는

하루해를

잡아서 무엇 하리.

잔 부딪칠

사람 하나

있으면 그만이지

파도로

어둠 흔들어

잠 못 드는 밤바다

 

 

2019. 2. 17

posted by 청라

첫눈 오는 날

첫눈 오는 날

 

 

사색의 파편破片인가

시간의 대화對話인가

깜빡 든 잠 속에서

한 점으로 일어서서

온 세상

빗질하려고

부스대는 날갯짓

 

가고 오는 인연들이

정결하게 씻기는데

저 큰 붓질 한 번에

인간사 다 지워지고

깨다 만

꿈결 속에서

머언 산만 솟는다.

 

 

2018. 12. 27

posted by 청라

떼거리

떼거리

 

 

매미들

목청 높여

떼거리 쓰고 있다.

 

벤치에

앉아 쉬던

할머니 일어서며

 

힘없는 늙은이가 뭐

피해야지 별 수 있나.

 

 

2018. 11. 1

posted by 청라

각원사 청동대좌불

각원사 청동대좌불

 

 

어떻게 살아가면 저리 고운 모습일까

서편 하늘 걸린 눈빛 중생衆生들 복을 비는

입가의 따뜻한 미소 봄 벚꽃이 피어나네.

 

사랑도 집착執着이라 훨훨 벗어 버리려도

작은 아픔에도 몸이 먼저 타올라서

마음은 향불 올리는 잔정에도 짠하다

 

 

2018. 9. 29

문학사랑126(2018년 겨울호)

posted by 청라

산마을

산마을

 


횃소리

닭울음에

산이 와르르 무너져서

 

집집 골목마다

송홧가루 덮인 마을

 

아이들 놀이소리도

빤짝 켜졌다 지는 마을

 

 

2018. 9. 28

posted by 청라

여름을 보내며

여름을 보내며

 

 

목백일홍 꽃빛에

졸음이 가득하다.

한 뼘 남은 목숨을

다 태우는 매미 소리

친구야, 술잔에 담아

한 모금씩 마시자.

 

 

2018. 9. 9

posted by 청라

딸 바보

딸 바보

 

 

아빠랑 꽃밭에서

사진을 찍었어요.

 

사진엔

내 얼굴만 가득가득 담겼네요.

 

아빠는

어떤 꽃보다

내가 제일 예쁘대요.

 

 

2018. 8. 11

posted by 청라

가시연

가시연

 

 

예쁘고 고운 것은

눈만 흘겨도 쉬이 아파

 

물 저만큼 터를 잡고

완고한 장창처럼

 

가시를

세운 후에야

자줏빛 저 환한 웃음

 

 

2018. 8. 2

posted by 청라

여름날 오후

여름날 오후

 

 

먹 오디 빛 호박잎 그늘

실잠자리 깊이 든 잠

 

빈 고샅 혼자 걷다

적막에 물릴 때 쯤

 

반쯤 연 사립 안에서

나직하게 암탉 소리

 


2018. 7. 5

 

 

 

 

posted by 청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