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리스트
시/제6시집 당신의 아픈 날을 감싸주라고에 해당되는 글 110건
- 2020.07.03 유성온천
- 2020.06.30 세한도歲寒圖에 사는 사내2
- 2020.06.21 스승의 날에
- 2020.06.11 연꽃 같은 사람 - 장덕천 시인을 보며
- 2020.05.30 장미 빛깔의 말
- 2020.05.21 둑길에서
- 2020.05.05 비밀
- 2020.05.01 안부
- 2020.04.19 들꽃
- 2020.04.17 강가에서
글
유성온천
나그네여
그대 삶의 발걸음 하루만 여기 멈추게.
오십 도가 넘는 라듐 온천에
때처럼 찌든 삶의 피로를 씻어내고
조금 남은 근심의 찌꺼기는
만년교 아래로 던져 버리게.
여기는
시생대 말기부터 지구의 심장에서 분출하던
뜨거운 피로
마음의 상처마저 치료해주던 곳
맛 집을 찾아 점심을 먹고
이팝꽃 마중 나온 거리
한 바퀴 돌고 와서 족욕足浴을 하면
그대의 인생 십 년은 젊어지리.
끓어오르는 알칼리성 열탕에서
섭섭함을 모두 풀어버리게.
사랑하는 사람과 밤새 정을 나누면
영원히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으리.
2020. 7. 3
『e-백문학』3호(2020년)
글
세한도歲寒圖에 사는 사내2
세상이 부르면 문이 없어도 나와야 한다. 네그루의 옛 솔과 옛 잣나무, 작은 집 하나, 선비는 적막으로 몸을 닦고 있다. 찾는 이 없어 눈길은 깨끗하다. 세상이 당신을 버릴 때에 당신도 세상을 버렸지만 둥근 창으로 넘어오는 바람 같은 소문, 세상은 갈등으로 타오르고 옳은 것과 그른 것이 뒤바뀌어 사막이 되어가고 있다.
선비는 귀를 막고 있다. 몇 겹의 창호지로 막아도 끊임없이 울려오는 천둥 같은 소리. 입으로 정의를 앞세우는 자는 불의로 망하리라. 세상은 먹장구름으로 덮여있다. 양심 있는 사람은 입을 열지 않고, 부자들은 돈을 쓰지 않고, 아이들은 더 이상 노인을 존중하지 않고, 젊은이들은 아이를 낳지 않는다, 세상이 너무 캄캄해서 씨를 뿌릴 수가 없다.
고도孤島의 저녁은 파도소리로 일어선다. 세상은 그믐인데 달로 떠 비춰줄 사람 보이지 않는구나. 선비는 더 꽁꽁 숨어 그림자도 비치지 않고 다향茶香만 높고 맑은 정신처럼 떠돌고 있다. 사람의 집에 사람은 오지 않고 봄비로 쓴 편지에 먼 데 있는 친구만 곡우穀雨의 향기를 덖어 마음을 보낸다. 뜨거운 차를 마셔도 선비의 가슴은 언제나 겨울이다. 학문과 경륜은 하늘에 닿았는데 선비의 마음 밭엔 언제나 눈이 내린다. 사람의 말을 잃고, 사람의 웃음을 잃고 등 돌린 마을의 그리움도 무채색으로 잦아들고 있다.
선비여, 이제 나와라. 나와서 세상을 갈아엎어라. 귀를 막아도 들려오는 하늘의 소리. 나와라. 어서 나와라. 인간의 마을이 무너지는데 마을 밖 작은 집에서 솔빛의 기상만 닦고 있을 참이냐? 가꾸던 겨울을 집어던지고 제일 먼저 와 동백으로 피는 제주의 봄을 숙성시켜 팔도에 옮겨 심어라. 그대의 겨울에 이제 덩굴장미를 심고, 소나무 잣나무 위에 새 몇 마리 불러와서 사람의 마을을 사람의 마을답게 가꿔야 한다.
『대전문학』89호(2020년 가을호)
2020. 6. 30
글
스승의 날에
이팝나무에
아이들 얼굴이 조롱조롱 피어난다.
그 사람 지금
어디서 무얼 할까.
그리워할 이름 많아서 좋다.
아이스크림 한번만 돌려도
세상을 다 가진 듯
좋아하던 아이들
체육대회에서 꼴찌를 해도
미친 듯이 응원하던
그 흥은 아직 남았을까.
보고 싶은 사람이 많다는 것은
미워할 사람이 많은 것보다
얼마나 고마운 삶인가.
날마다 드리는
간절한 나의 기도가
제자들의 앞길을
꽃길로 바꿔주었으면 좋겠다.
이팝 꽃으로 환하게 웃고 있는
얼굴들을 향해
뻐꾸기 노래로 박수를 보낸다.
2020. 5. 15
글
연꽃 같은 사람
장덕천 시인을 보며
당신은
새벽을 열고 피어난
연꽃 같은 사람
도시의 아픔은
그대 널따란 잎새에 앉았다가
아침 이슬로 걸러져
대청호 물빛이 되고
연향에 취해있던 호수의 바람은
향기의 지우개로
온 세상 그늘을 지워주러 간다.
영혼이 너무 따뜻해서
삶의 꽃술 하나하나가
시처럼 아름다운 사람
오늘도 대청호는
그대 한 송이 피어있어서
찰싹이는 물결소리에서도
향내가 난다.
2020. 6. 11
『문학사랑』133호(2020년 가을호)
글
장미 빛깔의 말
무슨 꽃이냐고
어제도
그제도 그끄제도 묻지만
환하게 웃으면서
장미꽃이라 대답합니다.
백 번 천 번을 물어도
지워진 백지에
다시 도장이 찍힐 때까지
장미 빛깔의 말로
대답할래요.
“사랑”이라고
2020. 5. 30
『시문학』2020년 8월호
글
둑길에서
반듯하게 걷지 않아도 좋다.
삶의 굽이만큼
구부러진 꼬부랑길
민들레꽃이 피었으면
한참을 쪼그려 앉아
함께 이야기하다 가도 좋고
풀벌레 노랫소리 들리면
나무로 서서 듣고 있다가
나비처럼 팔랑거려도 좋다.
달리지 않아도
재촉하는 사람 하나 없는 세상
내가 좋아하는 것들은
모두 둑길에 모여 있다.
2020. 5. 21
글
비밀
보고 싶다는 말을 삼키는 것이
만남보다 큰 기쁨일 줄을
이제야 알았습니다.
사랑한다는 말을 감추는 것이
사랑보다 큰 행복일 줄을
이제야 알았습니다.
당신에게 보낼 편지를
밤마다 적어놓고서
서랍에 차곡차곡 쌓아놓습니다.
당신을 생각만 해도
내 마음 양 볼엔
복사꽃이 피지만
혼자만 가슴 속에 사랑을 키우는 것은
몰래 사랑하는 것이
드러난 사랑보다 더 달콤한 까닭입니다.
비밀 하나 갖는 것이
설렘일 줄은
이제야 알았습니다.
2020. 5. 5
글
안부
시 몇 달 못 보면
“죽었나?”
또랑또랑 눈 뜬
시 한 편 보면
“음, 살았네.”
2020. 5. 1
글
들꽃
나 들꽃이라 무시하지 마라.
못난 꽃이라고
모든 사람들이 다 외면할 때도
나는
거친 땅에서 싹을 틔워
어두운 들을 밝힐 꽃대를 세운다.
폭풍이 불어
모든 꽃들 다 누워 일어서지 못할 때도
허리를 굽히지 않는다.
불의不義에 맞서
고개를 꼿꼿이 들고 일어선다.
밟을수록
더욱 끈질기게 일어나
꺾여진 옆구리에서 꽃을 피운다.
꽃을 피워
어두운 세상 환하게 덮는다.
2020. 4. 19
『문학사랑』132호(2020년 여름호)
글
강가에서
저 물 흐르는 것처럼
위에서 아래로
자연스럽게 더 자연스럽게
막히면 돌아가고
둑이 있으면
채우고 또 채워 넘어가는
강가에 서 있으면
세상 살아가는 바른 도리가
보일 듯도 하다.
작은 미움에도 갈기를 세워
분노의 물거품 일으키며
때로는 폭포로 떨어지던
산골 물소리 같은 젊음을 흘려보내고
이제는 하늘도 산도 가슴에 품고
아, 작은 잠자리 그림자
풀꽃들의 향기도 품으며
바람이 속삭이다 가는
시간의 어느 굽이를
어쩌다 이만큼 흘러왔는가.
바다가 보이는 삶의 하류에서
미운 것도 예쁜 것도 섞여서 잔잔해지는
깨어지지 않을 평화를 보았네.
2020. 4. 17
『대전문학』88호(2020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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