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마을

시/제3시집-춤바위 2011. 4. 24. 07:43

빈 마을

 

심심한 까치가

호들갑스레 울다 간 후

 

느티나무 혼자 지키고 선

빈 마을의 적막,

 

바람의 빗자루가

퀭한 골목을 쓸고 있다.

 

사립문 굳게 닫힌 골목의

마지막 집에


하염없이 머물다 가는

낮달의

창백한 시선


보아주는 사람도 없는

살구꽃 꽃등은 타오르는데…….

 

2011. 4. 24

 

 

 

 


posted by 청라

대보름달

시/제3시집-춤바위 2011. 2. 20. 22:19

 

대보름달



껍질을 깎을 것도 없이

날 시린 바람의 칼로 한 조각 잘라 내어

아내의 생일상에 올려놓고 싶다.


한 점 베어 물면

용암처럼 뜨겁고 상큼한 과즙(果汁)이 솟아나리.


이순의 문턱에서

검버섯으로 피어난 속앓이를 씻어줄

대보름달 같은 웃음을 보고 싶다.



2011. 2. 18

posted by 청라

버려진 그릇

시/제3시집-춤바위 2011. 1. 26. 21:23

 

버려진 그릇

-도천 선생 그릇 무덤에서

 


바늘 자국만한 흠 하나로도

나는 온전한 그릇으로 설 수 없었다. 


삼천 도의 불가마에서

온 몸이 익어가는 통증 속에서도

다향으로 목 축일

작은 꿈 하나 있어 정신을 놓지 않았다. 


가마를 나와 탯줄도 자르기 전에

눈 뜨고 응아 한 번 울지 못한 채

산산이 부서져 무덤에 버려졌다. 


찻물 한 모금 담아보지 못하고

그릇도 아니고 흙도 아닌

제 살 조각도 맞출 수 없는 존재가 되어.  


사람들은 지나가며

안쓰런 눈으로 바라본다. 


지나가는 사람들 뒷모습에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이는

수많은 흠들 


저 많은 흠을 두르고

어찌 사람이라고 살아가나? 


아, 하느님은

도공보다 너그럽다.


2011. 1.25


 


posted by 청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