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꽃과 아내

시/제3시집-춤바위 2008. 2. 11. 14:29
 

난꽃과 아내


난향(蘭香)은

있는 듯 없는 듯 그윽하다.

창틀 위에 난초꽃 한 송이만 피어있어도

온 집안 비었어도 가득하다.


아내는

있는 듯 없는 듯 따뜻하다.

주방 도마에 칼 소리만 또각거려도

온 집안 비었어도 가득하다.

posted by 청라

원가계

시/제3시집-춤바위 2008. 2. 2. 08:38
 

   원가계



   봉우리마다 구름이 너울처럼

   산의 얼굴을 가려주고

   골짜기마다 안개는 나삼(羅衫)이 되어

   산의 알몸을 가려주네.


   기봉(奇峰)은 날아서

   학이 되고

   폭포(瀑布)는 떨어져

   은하수가 되네.


   옛날에 신선도(神仙圖)를 보고

   관념 속에서나 볼 수 있는

   세상이라 생각했더니

   원가계에 와서 보니

   그림이 오히려 산수를 다 그리지 못하였네.


   폭포 소리 녹아

   솔향 더욱 그윽한 곳에서

   술 한 잔 기울이면


   속진(俗塵)이 말갛게 씻겨

   나도 신선이 되리.


2008. 1. 29

posted by 청라

똥을 묻으며

시/제3시집-춤바위 2008. 1. 28. 20:25
 

똥을 묻으며


똥을 덮는다.

낙엽을 긁어모아

내 삶의 부끄러움을 덮는다.


아무리 묻고 묻어도

지워지지 않는 냄새처럼

묻을수록 더욱 살아나는

지난 세월의 허물들


이순의 마을 가까이엔

담장을 낮추어야 한다.

감추는 것이 없어야 한다.


무더기 큰 똥일수록

햇살 아래 드러내어

바삭바삭 말려주어야 한다.


posted by 청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