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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목숨
저 그늘 외로운 길
햇살 따라 가다 보면
수줍게 입을 벌린
진달래꽃 한 이파리
한겨울 딛고 일어선
여린 목숨 하나.
산 빛 아직 익지 않은
초 삼월 바람 속에
목청 돋워 봄 부르는
등대로 피었느냐
한 모금 물빛 향기로
세상 밝히는 목숨 하나.
글
기다림
막차는
휭 하니
바람만 뿌리고 지나간다.
가슴속에서 무너지는
섬광 하나
건너 뜸 개 짖는 소리
몸을 떠는 늦저녘 달
글
눈 내리는 마을
세상으로 나가는 문들은
닫혀 있었다.
흰 산도라지 꽃 몽롱한 산자락마다
마지막 푸른 목청이 덮이고,
강물은 더 깊은 울음으로 우는데
솔가지 부러지는 산울림 끝에 심지 하나 박고
촛불을 켠다.
살갗마다 일어서는 빛이랑, 외로움이
붉은 포도주 한 잔에 녹아나고,
산마을 밖 두고 온 그리움 눈 속에 묻으면서
참나무 울타리 잎새 떨며 우는 바람에
아우성치는 세간의 정들 먼지처럼 날리리라.
칭얼대며 유리창 두드리는
송이 눈에
어제 일들 깨끗이 털어버리고,
혼자 마시는 술잔 가득
아직도 남아 있는 얼굴 목구멍 속에 구겨 넣어도
잠깐 취기처럼 아득한 세사의 뿌리들이
덮어도 덮어도 지울 수 없는 댓잎으로
돋아나는데
아무도 넘어오지 않는 회재 고개 너머로
오늘 잠시 떼어놓은 이름표를 달고
내일은 또 고개를 넘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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